춘추전국시대 정치·사회·경제
- 최초 등록일
- 2014.12.03
- 최종 저작일
- 2014.01
- 1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Ⅰ. 서론
Ⅱ. 춘추전국시대의 정치·사회·경제 특징
Ⅲ.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사상
1. 유가(儒家)
2. 묵가(墨家)
3. 법가(法家)
4. 도가(道家)
Ⅳ. 한 대의 경학의 완성과정
Ⅴ.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동주(東周)의 왕조가 어렵게 유지해 왔던 정권은 기원전 8세기 말부터 쇠퇴하여, 질서는 혼란하고 기강은 퇴폐하여 오랜 동란기가 시작되었다. 그 처음 시기를 춘추시대(기원전 722~기원전 453)라 부른다. 이 무렵 중원(中原)의 대소 제후국들은 지방정권으로서 난립하여 복잡한 항쟁에 몰두하였기 때문에, 양자강 유역에 있었던 초나라가 북상하여 약소국을 잠식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춘추의 1대 패자(覇者)인 제환공(齊桓公, B.C.685~643 재위)이 존왕양이 [尊王攘夷]의 명분 아래 왕실을 대신하여 제후들을 호령하고 초나라의 침략을 방지하였다. 왕자(王者)에 대신하여 실력을 갖고 제후들의 수장이 되는 자를 패자(覇者)라 부르는데 그 후에도 패업(霸業)을 지향하는 자가 속출하여 춘추시대의 하나의 특징을 이루었다. 덧붙이자면 이 칭호는 전국시대 유가(儒家)가 편집하여 공자의 저작이라고 선전하였던 『춘추(春秋)』가 이 시대의 여러 사건을 간단하게 기록한 데서 유래한다.
춘추전국시대의 근본적인 사회적 전환의 계기는 철제농기구의 사용, 우경이나 관개 수리시설 등등의 도입에 의한 농업생산력의 급격한 증가에 의하여 마련되었다고 하겠다. 이런 농업생산력의 급격한 증가의 결과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소수의 봉토소유자들은 주위의 영지국가들을 무력으로 통합하여 갔다. 특히 기원전 4세기 이래 강력한 대 제후국, 말하자면 ‘만승지국’(萬乘之國:전차 만 대의 병력을 보유한 국가)들은 당시의 전면적인 전쟁 상황에서 그들의 세력 강화를 위하여 각각 나름대로의 철저한 국가적인 사회개혁, 즉 변법(變法)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강해진 국력들은 필연적으로 엄청난 규모의 대전쟁을 치르면서, 개별적인 전쟁승리와 관계없이, 쇠잔해지고 혹은 강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역사필연적으로 긴박한 전쟁상황 속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전쟁들의 내용은, 『春秋左傳』, 『國語』,『戰國策』,『史記』등등에 광범하고도 극명하게 기술되어 있다.
참고 자료
강길중,박종현,정재훈, 『중국 역사의 이해』, 경상대출판부, 2009.
벤자민 슈월츠, 『중국고대사상의 세계』, 나성 역, 살림, 1996.
金谷治, 『중국 사상사』, 조성을 역, 이론과실천, 1990.
조원일, 「漢唐) 經學史에서 본 孟子學 硏究)」,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2012 pp.215-237.
이강수,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 사회사상개관」, 중국철학회, 1992, pp.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