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 사람의 심상이 투영된 결정체
- 최초 등록일
- 2014.10.16
- 최종 저작일
- 20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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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각 나라별 학생들에게 세계지도를 그려보라고하면 제각각 다른 결과가 나오지만 자국의 영토와 인접지역은 크고 자세하게 그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에게 사료하면 글자라는 인식이 떠오르지만 이처럼 지도는 사람의 생각을 의도하지 않아도 표현되는 또 하나의 글자인것이다. 따라서 우리 조상들이 남긴 고지도도 살펴보면 그들 의식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지역을 그린 고지도는 아쉽게도 조선시대 이후의 지도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조선시대 고지도에서 17세기를 경계로 나눌 정도로 많은 차이점이 나타난다.
필자는 어머니의 고향인 충주를 대상으로 하여 조선중기 지도들을 살펴본 후에 조선후기의 지도에는 어떻게 표현했는지 확인하고 김정호의 역작인 [대동여지도]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알아본후에 조선중기와 후기의 지도는 무엇이 다른지 비교·분석해보겠다.
붉은 직사각형 안에 표현된 고을이 충주이고 남쪽에 진산인 대림산이 보인다. 왼쪽 상단에 그리다 그만둔 산이 정말 간략하게 표현하고 대충 표현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필자가 제시할 조선중기지도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부록에 들어가 있는 지도를 바탕으로 만든 목판본 지도로 1600년 이전의 상황을 표현한 지도이다. 조선중기 대표적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정보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관찬지도로서 각 도별로 표현된 도별도이며 부목군현과 자연환경이 간략히 그려져있다. 각 부목군현을 네모난 직사각형에 이름을 표기하여 위치만 표현하였으며 해당군현 뒤에 진산을 표현하였다. 충주의 경우는 주산이 밑에 있는 대림산이 주산이다. 이외에 지도에는 강정도만 표시하는 걸로 끝이 날정도로 매우 단순한 지도다. 이러한 이유는 지리지의 부도적인 성격인 이유도 있지만 국방상의 이유로 타국에 정보를 유출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며 지도로서의 구실보다 해당지역의 위치를 파악하는 목적의 관찬지도이므로 간단히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17세기 이후 여러 사찬지도와 군현지도들이 나옴으로서 많이 정밀해졌다. 필자가 살펴볼 후기 지도로는 각각 1736년에서 1767년 사이와 175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지도]와 [해동지도]가 있는데 부목군현을 자세하게 표현한 지도이다.
참고 자료
국립중앙박물관, 2007, 박물관에서 대동여지도를 만나다, 열린박물관
민족문화추진회,1985, 국역 신증동국여지승람. 2, 민족문화추진회
이중환 저, 이익성 옮김, 2004, 택리지, 을유문화사
전종한 저, 2008, 인문지리학의 시선, 논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