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14.06.10
- 최종 저작일
- 2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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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역사
2. 일제하 박물관 성립과 그 배경
3. 緖言
4. 최초의 박물관 형성시기
1) 박물관 형성 이전의 시기 : 통감부 이전의 박람회
2) 통감부시절의 박람회
3) 한국박물관의 嚆矢 (창덕궁박물관 혹은 이왕가박물관)
5. 총독부 시절 일제에 의한 박물관 성립시기
1) 조선물산 공진회
2) 물산공진회의 개최가 조선인의 의식에 미친 영향
6. 조선총독부 박물관
7. 이왕가미술관의 성립
8. 結語
본문내용
박물관의 기원은 BC 300년으로 거슬러올라가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궁전의 일부에 무세이온(Museion)을 설치하여 문예·미술의 여신 뮤즈에게 바치는 장소로 하고 여기에서 학문연구를 하였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것은 대학의 기원이기도 하므로, 이와 비슷한 시설이 곳곳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로마 시대 이후 르네상스까지는 귀족·호족(豪族)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가정박물관(家庭博物館), 교회와 수도원(修道院)에 부속된 종교박물관이 있었을 뿐이며, 본래의 박물관 사상이 중절된 시기였다. 피렌체의 메디치 공작을 선구자로 하는 고대정신(古代精神)의 부활과 인간정신의 해방은 무세이온에 이어지는 근대박물관의 부흥과 발전을 가져오고, 인도 항로와 신대륙의 발견, 프랑스혁명·산업혁명 등을 거쳐 처음에는 미술과 역사, 다음에 자연사(自然史), 나중에는 이공학계 박물관이 발달하였다.
<중 략>
광복 후에는 미 · 소 공동위원회, 국련(國聯) 한국위원단 등이 사용, 1950년 6·25전쟁으로 화재를 당한 것을 복구, 1953년부터 국립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가 박물관이 경복궁으로 옮기자 현대미술관에서 사용하다가 문화재관리국이 들어서기도 했다.
1936년 이왕가박물관을 덕수궁에 신축하기로 결정하고 1938년 3월 31일 신축 미술관이 준공되어 창경궁에 있는 이왕가박물관 소장품 중에서 고미술과 공예에 속하는 것 (삼국시대 이래의 조각공예품, 도자기, 회화등)을 이전하고 창경궁의 舊이왕가박물관은 장서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송기형, 창경궁박물관 또는 이왕가박물관 연대기 P189 따라서 1938년 6월 5일 창경궁 ‘이왕가박물관’, ‘덕수궁석조전’, ‘덕수궁에 신축된 이왕가박물관’을 합쳐서 ‘이왕가미술관’이라 칭했다. 이는 귀국한 영친왕의 착상에 의해 영향을 받은 바 있다.
이 건물은 8실의 전시실을 중심으로 수장고(收藏庫) 강당 등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을 참작한 명실상부한 근대식 박물관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창경궁내 이왕가박물관의 1921년 관람기록을 참고해 보면, 동물원의 관람객이 약 24만 명, 박물관이 약 4만 명, 식물원이 약 2만 명인 것을 보면 박물관과 식물원이 동물원의 보조적인 기능에 머물렀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