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장신구 문화
- 최초 등록일
- 2014.04.17
- 최종 저작일
- 20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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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머리말
Ⅱ. 금관과 금동관
1.금관
2. 금동관
Ⅲ. 관모와 관식
Ⅳ. 귀걸이
1. 굵은고리 귀걸이
2. 가는고리 귀걸이
3. 황룡사지 귀걸이
Ⅴ. 허리띠 장식
1. 삼엽문 허리띠 장식
2. 누암리형 허리띠 장식
3. 황룡사형 허리띠
Ⅵ. 목걸이와 가슴걸이, 팔찌와 반지
Ⅶ. 금동신발과 장식대도
Ⅷ. 맺음말
본문내용
신라의 유물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수많은 장식이 달린 화려한 금관이다. 세계 각지에서 출토된 금관은 십여점이 조금 넘는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이중에서 5점이 신라의 금관이다. 금관뿐만 아니라 귀걸이, 허리띠 장식, 목걸이, 팔찌, 반지 등 많은 종류의 금제 장신구가 신라의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다. 신라의 화려한 금제장신구문화를 반증하듯 일본서기에서는 신라를 ‘눈부신 황금의 나라’로 표현하고 있다.
신라에서 언제부터 금이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연대는 현재 알 수 없다. 3세기경에 쓰인 삼국지의 위서동이전에 “구슬을 귀하게 여겨 옷을 꿰매어 장식하기도하고 목이나 귀에 매달기도 했지만 금은과 비단을 보배로 여기지는 않았다”는 구절이 나온다. 더불어 신라의 3세기경의 유적에서도 유리구슬만 다량으로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3세기경의 신라에서는 금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4세기 후반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월성로 가-13호분에서 금그릇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4세기 후반 전부터 금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신라가 어디서 금을 가져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가 황금의 나라로 불리었고 경북내륙지방, 특히 상주에 금광과 금맥이 집중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 자체에서 금을 생산해내었을 것으로 보인다. 4세기 후반의 신라는 대내적으로는 김씨의 왕위독점적세습이 이루어지고 마립간의 칭호를 사용하는 등 왕권의 강화가 이루어지던 시기였으며 대외적으로는 중국은 5호16국의 혼란기였고 고구려의 세력권이 확장되던 시기였다. 신라가 고구려의 세력권에 속하게 되면서 고구려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데 고대 유목민족의 황금으로 치장하는 풍습이 고구려를 통해 신라로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신라로 들어온 황금문화는 장인들의 뛰어난 기술로 만들어진 장신구에서 빛을 보게 된다. 삼국 중에서 가장 찬란한 황금문화를 가진 신라의 황금 장신구가 어떤 양상으로 변화?발전해나갔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한다.
참고 자료
이한상, 『황금의 나라 신라』,김영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