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중국사(명조의통치체제와 정치)
- 최초 등록일
- 2013.09.22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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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명조 통치체제의 성립
1. 태조의 전제권 강화
2. 영락제의 전제권 확립
Ⅱ. 황제권의 양륜(兩輪) : 내각과 환관
1. 내각제도의 발전
2. 환관의 정치개입
3. 수보 장거정의 전권정치
Ⅲ. 전제적 중앙집권화에 대한 신사의 대응
1. 동림운동
2. 복사운동
본문내용
<머리말>
1) 황제지배체제
- 황제를 정점으로 하고 고도의 관료제 운영을 동반함
- 진한제국 이후 청말까지 2천 년 이상 유지된 정치체제
→ 각각의 시대변화를 흡수하며 변화 발전
- 장기적인 추세는 ‘황제권의 절대화’→ 명조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보장!
2) 관료제
- 황제권의 절대화와 병행하여 시대가 지날수록 고도로 발전
- 치자의식(治者意識) : 사대부 관료가 천하통치를 자신의 책임으로 하는 의식!
⇒ 황제지배체제는 황제와 관료와의 긴장관계와 힘의 균형 하에 효과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제도!
3) 명 중기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화
- 관료예비군적 지식인의 수적 확대, 이갑제의 해체
→ 신사층이 향촌사회에서 국가통치의 대행자로서, 향촌여론의 대변자로서 역할!
⇒ 신사층의 사회지배! 이는 중앙에 대한 분권성!
명 후기로 갈수록 심해짐(국가통제의 약화와 상공업, 상품경제의 발달과 더불어)
⇒ 명대 중앙집권적 성격의 황제전제권 ↔ 신사의 분권적 대응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명대 정치사를 추적해 갈 것임!
<중 략>
- 신종은 황태자 책립문제를 일찍이 확정짓지 않음으로 이것이 삼안사건으로까지 연계됨!
→ 신종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수 없었던 것은 그만큼 사회상황이 변하여 공의의 영향 력이 확대된 것을 반영함
4) 엄당의 결성
- 희종 초 동림당 인사는 수선서원 건립하고 동림파 대학사 엽향고 아래 등용된 조남성, 추 원표 등을 통해 정국을 주도하여 삼당의 인사 모조리 탄핵!
→ 반동림파 삼당은 환관 위충현과 결탁하여 엄당 결성!
- 엄당은 왕문언의 옥사를 확대하여 동림당에 대한 대규모 탄압 가하기 시작!
→ 동림지도자 거의 탄압됨, 대신 빈자리를 차지한 것은 엄당!
⇒ 동림 비동림 당쟁은 위충현으로 하여금 더욱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게 하는 계기가 됨
- but 의종 즉위 후 엄당에 대한 탄핵이 비등 → 위충현 자살.. 엄당 삭적!
→ 동림당 인사 등용, 명예회복!
- 하지만 또다시 전겸익, 온체인, 주연유 등이 전의 관절 사건을 들고 나와 전을 면관시킴
→ 동림파 관료들 또 다시 파직, 이어서 설국관이 수보가 되는 비동림파 내각이 계속됨!
- 이러한 시기 강남지역의 소장파 신사들을 중심으로 한 복사가 동림을 계승하여 정치활동 전개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