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황순원][김유정][조정래][이문열][이기영][채만식][박완서]소설가 황순원, 소설가 김유정, 소설가 조정래, 소설가 이문열, 소설가 이기영,소설가 채만식,소설가 박완서
- 최초 등록일
- 2013.02.26
- 최종 저작일
- 20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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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소설가 황순원
Ⅱ. 소설가 김유정
Ⅲ. 소설가 조정래
Ⅳ. 소설가 이문열
Ⅴ. 소설가 이기영
Ⅵ. 소설가 채만식
Ⅶ. 소설가 박완서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소설가 황순원
1925년 3월 26일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에서 황찬영와 장찬명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평양 숭덕소학교, 오산중학교, 숭실중학교를 다녔다. 숭실중학 재학 중인 1931년 <<동광>>에 시 <나의 꿈>, <아들아 무서워 말라> 등을 발표하여 데뷔하였다. 1934년 일본 와세다대학 제2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동경에서 이해랑(李海浪), 김동원(金東園) 등과 극예술 연구단체인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립했다. 그해 11월 첫 시집 <<목가(牧歌)>>를 발간했다. 1935년 여름 귀성하였다가, 시집 <<목가>>를 검열을 피해 동경에서 간행하였다 하여 구류를 당했다. 신백수(申百秀), 이시우(李時雨), 조풍연 등이 1934년에 창립한 <삼사문학>에 가담하였다. 1936년 와세다대학 영문과에 입학하고, 동경에서 동인지 <<창작>>에 시를 발표하였다. 1937년부터는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창작>>에 <거리의 부사(副詞)>를, <<작품>>에 <돼지계>를 발표하였다. 1939년 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 첫 단편집 <<황순원 단편집>>을 내었다. 1942년 이후 일제의 한글말살정책에 의해 발표기관이 없어지자, 해방 전까지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고 써두기만 하였다. 이때 씌어진 단편들이 <기러기>, <물 한 모금>, <독짓는 늙은이> 등으로 이들은 해방 이후에 발표되었다. 1946년 월남하여 서울중고등학교 교사로 취임하고, 1948년 해방 이후의 작품들만 모아 단편집 <<목넘이 마을의 개>>를 내었고 계속해서 장편 <<별과 같이 살다>>, <<기러기>>, <<곡예사>> 등의 작품집을 간행 했다. 한국전쟁 기간에는 경기도 광주, 부산 등지에서 피난생활을 하다가, 1953년 휴전이 되자 환도하였다. 장편 <카인의 후예>를 <<문예>>에 연재하다가, 잡지가 폐간되자, 1954년에 중앙문화사에서 출간했다. 이 작품으로 1955년
참고 자료
강미리 / 김유정 소설 문체 연구, 동국대학교, 2011
박필순 / 이문열 소설의 폭력성 연구, 숭실대학교, 2011
유성호 / 견고하고 역동적인 생명 의지 : 황순원의 시, 한국근대문학회, 2011
이경재 / 이기영 소설에 나타난 만주 로컬리티, 한국근대문학회, 2012
이경돈 / 채만식과 사소설의 기원, 반교어문학회, 2007
정종진 / 조정래 3대 소설의 이념 선택에 관한 연구, 청주대학교,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