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막동 제사유적(고고학,역사학,미술사학,보존과학)
- 최초 등록일
- 2012.12.13
- 최종 저작일
- 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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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죽막동 제사유적에 대한 리포트 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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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반도의 제사유적은 원삼국시대에 철기문화가 형성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원삼국시대 사람들은 주로 식량의 획득이나 교역에 유리한 해안지역에 살면서 바다를 통한 물자나 사람의 이동과정에서 뱃길의 안전과 풍부한 수확을 기원하였는데, 이 때문에 해안지역에는 다양한 형태의 제사를 지낸 흔적이 남게 된다.
많은 제사유적지 중 죽막동 제사유적지는 한반도 최대 규모의 제사유적지로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죽막동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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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 인근 주민들이나 어부들
은 해신과 그의 딸 8자매 신을 정성껏 모시고 있다. 매년 음력 정초에 격포마을에서는 삼색 실과 술
과일·포 등을 차리고 제사의 주장이 되는 사람을 뽑아 정성껏 제사지낸다. 제일(祭日)은 정월 초사흗날인데, 근동 어민들이 모두 모여 정성스럽게 치성을 드린다. 당 안에 무신도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불타 없어졌다. 상량(上樑) 상량 : ①집을 지을 때에 기둥에 보를 얹고 그 위에 마룻대를 올려놓음 ②마룻대
에 기록된 것에 의하면 이 집의 건립연대는 1850년(철종 원년) 이전부터 신당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1864년(고종 원년)에 3차로 중수한 것으로 보이며, 1940년에 4차로 중수하였다. 옛 원형은 찾아볼 수 없고, 지금의 신당은 1973년에 중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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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주머니 모양의 원저단경호가 있는데, 둥근 바닥부와 항아리 모양의 구연부가 특징이다. 이 외에도 곧은목항아리, 발형기대, 통형기대 등 원삼국시대의 토기류들이 다량 출토되었다. 각종 금속류로는 쇠창과 물미, 철검과 쇠도끼 같은 무기류와 말띠드리개와 안장꾸미개 등의 마구류도 발견되었는데, 금속유물이 대부분 무기와 마구류가 출토되고 있는 것을 볼 때, 군사적 성격을 지니는 제사의례의 장소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갑옷과 낫, 도끼와 거울, 칼과 같은 석제모조품 등도 출토되었다.
참고 자료
박물관 속의 한국사(유물로 읽는 우리 역사 이야기), 최형철(2007)
부안 죽막동 제사유적, 국립전주박물관(1994)
부안 죽막동 제사유적 연구 : 개관 오주 년 기념 학술 심포지움 논문집, 국립전주박물관(1998)
http://www.emuseum.go.kr(문화관광부 이뮤지엄)
http://heritage.go.kr/(국가문화유산종합정보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