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 이익
- 최초 등록일
- 2012.11.14
- 최종 저작일
-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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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호 이익에 대한 과제입니다.다양한 자료와 문헌을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차
Ⅰ. 성호이익의 생애와 저서
Ⅱ. 성호이익의 사상체계
1. 시대 상황적 배경
2. 성호이익 사상의 특징
3. 개혁사상
Ⅲ. 성호학파
Ⅳ. 결론
본문내용
Ⅰ. 성호이익의 생애와 저서
1. 성호이익의 생애
성호이익은 아버지 이하진의 귀양지인 평양도 운산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전통적인 남인가계에 속하며 그가 태어날 당시는 남인이 정계에서 제거되어 급속히 몰락하여 가고 있었다. 언관의 총수인 대사헌 벼슬을 하던 그가 남인의 거두 허목(許穆)과 행동을 함께 하다가 숙종 6년 서인들이 정권을 잡고 남인들이 밀려나게 되자 진주목사로 좌천되었다가 다시 평안도 운산(雲山)으로 귀양가는 몸이 된 것이다. 더구나 그가 태어난 다음 해에 부친이 유배지에서 55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나 버려서 더한층 집안의 쇠락을 재촉하였다. 홀로 된 그의 어머니는 자식을 데리고 고향인 안산의 점성촌으로 돌아왔다. 그의 어머니 권씨는 부친의 후처로 자신의 소생인 2남2녀뿐 아니라 전처 소생의 3남 2녀까지 양육하면서 어떻게든 양반가의 체모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의 호를 성호(星湖)로 지은 것은 첨성리의 성호장에서 살았다고 하여 스스로 붙인 것이며, 그의 자는 자신(自新)이었다. 늘 앓아누운 탓에 그는 글공부를 시작도 못하다가 열 살이 넘어서야 나이가 스물 남짓이나 차이가 지던 둘째 형 이잠에게서 글을 배웠는데, 이익은 형을 몹시도 좋아하여 따랐고 스스로 분발하여 배우기에 힘쓰며 종일토록 앉아 공부하기를 쉬지 않았다. 그토록 열심히 공부하였건만 25세 되던 해에 증광시(增廣試)에 응시했다가 낙방하고 말았다. 26세 때에는 그의 학문적 스승이었던 둘째형 이잠이 원세자의 생모인 장희빈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상소를 올렸다가 역적으로 몰려, 모진 형벌 끝에 옥에서 죽게 되었다. 아버지와 형의 정치적 수난을 목격한 그는, 이를 계기로 당쟁으로 말미암은 부정과 부패에 대한 회의로 일생동안 관직에 나아가기를 포기하고 학문연구에만 열중하게 되었다. 이는 그의 일생에 첫 번째 전환기가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