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요약]임기환, 4세기 고구려의 낙랑․대방지역 경영
- 최초 등록일
- 2012.11.06
- 최종 저작일
- 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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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임기환, 4세기 고구려의 낙랑․대방지역 경영(1995) 논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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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구려가 낙랑?대방지역을 지배해 가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4?5세기 고구려사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하다. 고구려가 낙랑?대방군을 축출한 이후 그 토착 호족세력의 독자적 세력 기반이 상당 기간 유지되었기 때문에, 4세기 말까지도 이곳의 고구려 세력의 침투가 용이하지 않다고 이해하고 있다. 안악3호분의 묵서명에 보이는 冬壽와 덕흥리고분의 흑서명에 보이는 유주자사 鎭, 이들과 고구려정권의 관련성을 통해 이 시기 고구려의 낙랑?대방지역 지배방식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안악3호분은 봉토석실분이며, 피장자 동수는 요동군 평곽현 출신으로 전한 모용씨의 휘하에서 고위 관직을 역임하다가 내분에 의하여 336년에 고구려로 망명하였고, 375년에 사망한 인물이다. 동수의 망명 이후 342년에 전연은 고구려를 침입하여 국내성을 함락시키고, 미천왕의 시신과 왕모 주씨 등을 인질로 잡아갔다. 고국원왕은 이듬해 왕제를 전연에 보내어 미천왕의 시신은 돌려받았으나 왕모는 귀환시키지 못해서 그 뒤 전연과의 관계 개선에 애를 쓰고 있었는데, 이 때 전연 출신인 동수 등을 중개자로 활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고구려는 낙랑?대방지역을 차지한 후 적극적으로 이 지역의 지배에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장수산성은 산성의 형태와 축조방식이 전형적인 고구려식 산성이며 그 규모 또한 거대하기 때문에, 이 산성을 축조하기 위해서는 주변 일대 주민들에 대한 대규모의 노동력 징발과 통제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또한 4세기 중엽 이후에 고구려는 백제와 본격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서북 지역에 대한 통제력 역시 강화되어 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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