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을 읽고; 여기를 봐주세요. 우리는 모두 아파하고 있습니다.
- 최초 등록일
- 2012.10.19
- 최종 저작일
- 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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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두천에 대해 저자가 느끼는 `아픔`에 초점을 맞춰 작성한 발표문 입니다.
목차
들어가는 글
우리는 모두 아파하고 있습니다.
나오는 글
본문내용
들어가는 글
1980년의 끄트머리에 태어나 90년대와 2000년대의 대한민국을 보고 자란 나로서는, 6· 70년대의 대한민국을 떠올리는 것이, 그리고 동두천東豆川이란 낯선 지명의 도시를 상상해 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처음 시집을 읽고 작가의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림잡아 느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아픔’이었다.
70년대는 ‘청년’이란 이름의 한 세대가 비로소 대중문화라는 말을 만들어 내던 시기였다. 박정희 식의 개발독재가 온 나라를 위압적으로 통치할 때, 청년들은 청바지, 통기타, 장발 등의 동질의 표현으로 서서히 저항의 여론을 형성하면서 잠재력을 키워가고 있었다. 한대수, 김민기, 송창식 같은 대중음악의 기수들은 노래를 통해 청년문화를 한 궤로 엮어 내었고. 영화감독 하길종은 「바보들의 행진」이란 영화를 통해 ‘바보’ 라는 한 단어로 시대를 조롱하면서 저항의 폭발력을 시험하던 시기였다. 이달균, 「동두천에서 부르는 부활의 노래」, http://blog.daum.net/moonnj
그러한 ‘꿈적도 않는 세계’속에서, 작가는 말한다. “그러나 아직도 시간은 밤이고 춥고 막막한 암중 모색이 의식될 때마다 나는 언제나 한밤에만 핀다는 그 무슨 풀꽃 이름을 다시 떠올려 보곤 한다.”(동두천, 自序) 그런 것이다. 그 때 그의 곁에는 ‘벌거벗던 내 누이’, ‘태어나서 죄가 된 고아들’, ‘한 마리 아직도 어린 고래’들만이 있는 춥고 막막한 시간이었지만, 그러한 상황 속에서 시인은‘흙먼지 속 먼먼 나라’의 ‘평등, 사랑, 자유’라는 이름의 풀꽃을 떠올리곤 했던 것이다.
시인은 말한다. “내 초년의 시들은 실존의 참담함과 그 조건들의 불가해성에 닿아보려는 성찰의 한 방편으로 쓰여졌다. 첫 시집 ‘동두천’에는 내 고향 영동의 자연과 그 속으로 부유했던 성장기의 쓰라림,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내 성숙의 조건들이 된 시대의 간난들이 삶의 파편처럼 아프게 각인되어 있다.”, “시의 감동은 계몽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체의 드라마를 거느리고 있으며, 논리를 뛰어넘어 마침내 폐부를 깊숙이 찔러오는 어떤 개입과 변화를 이끌어 낸다. 그리하여 거기에는 어떤 진실과도 어울리는 자연스럽고 전율스러운 감동의 배합이 확인된다.” 김명인, 『소금 바다로 가다』(문학동네, 2006), 74.
그런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시 세계에서 캄캄한 세상을 밝히려는 등불이 되려고도, 그러한 부조리한 세계를 고발하려는 열에 들뜬 고발자가 되려고도 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이 가르쳤던 동두천 학교의 교내 웅변대회에서 모두를 울게 했던 혼혈아의 그 한마디를 기억하는, 모두가 울던 그 속에서 같이 울었던 한 사람이 되어 담담히 이야기를 적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