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조선인(자이니치)의 아픔
- 최초 등록일
- 2012.07.25
- 최종 저작일
- 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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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재일 조선인(자이니치)의 아픔
목차
1. ‘황국신민’으로부터
2. 내면화된 아픔
3. 조선 문화를 걷는다
4. 집게손가락의 자유
5. 분단사회에 살다
본문내용
1. 본문 내용
1) ‘재일’이라는 말 - ‘재일 조선인’ 등의 호칭과 따로 떨어져 쓰이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후반
2) 재일 조선인의 대부분 - 1910년 일본의 한국 병합 후 생활 수단을 찾아, 혹은 노동력으로 연행되어 온 사람들
3) 15년 전쟁 말기 오사카시는 서울에 이어 세계 2위의 조선인 거주지
4) 많은 차별을 받음
5) 일본인에게 있어 ‘조선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함
6) 오림준의 말 - 일본인은 전쟁이 끝나고 모든 가치관이 변했다고 활기에 차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재일 조선인, 조선에 관해서는 완전히 외면당했다.
<중략>
<집게손가락의 자유>
1. 본문 내용
1) 재일 1세 한종석 1929년 경북에서 태어나 8살에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이주한 재일 조선인. 지문 날인 거부사건은 1989년 최고재판소에서 무죄 선고
의 지문 날인 거부 - 동화정책 본국 또는 지배민족이 식민지의 원주민이나 또는 국내의 소수민족을 자기의 문화에 동화시키려는 정책
의 대상으로 보려는 발상에 거부
2) 최창화 1930~1995. 평안도 출신. 재일 대한기독교 오쿠라(小倉) 교회 목사로서 70만여 명에 이르는 재일교포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반평생을 바쳤다
목사의 지문 날인 거부 - 노예 관리처럼 조선인을 관리 하는 것에 거부
3) 외국인등록령(1947.5.2) - 재일 조선인은 일본 국적을 가진 채로 외국인으로 간주됨
4) 외국인등록법 1952년 4월 시행. 일본 거주 모든 외국인에게 외국인등록 시 지문을 날인할 것을 의무화.
- 재일 조선인은 일본 국적을 잃고 외국인이 되어 등록증명서를 상시 휴대하게 됨
<중략>
1) 직업: 단지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채용을 거부하는 회사도 있음. 재일조선인을 뽑은 전례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아르바이트를 거부당하는 경우도 있음
2) 대출: 법적으로 재일 조선인이 대출을 받으면 안 된다는 사항은 없지만 번번히 거절당함. 결국 금리가 더 높은 외국계 은행에서 대출 받기도 함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