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군의 제3차 공세와 유엔군의 철수작전 교훈과 의의
- 최초 등록일
- 2012.01.18
- 최종 저작일
- 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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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여기서는 이러한 치열한 전투였던 중공군의 제3차 공세와 유엔군의 철수작전의 전개과정 및 특징 등을 자세히 살펴보고 그 의의를 재조명하고자 한다.(총 9장)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중공군의 제3차 공세작전의 배경
2. 피 ․ 아 상황 / 작전계획
3. 작전경과
4. 중공군의 제3차 공세개시와 유엔군의 철수 명령
5. 유엔군의 계획된 철수와 중공군의 추격 중지
6. 유엔군 철수작전의 특징
7. 유엔군 철수작전의 교훈과 의의 - 4가지
Ⅲ. 결 론
본문내용
중공군의 제2차 공세 이후 전선은 한동안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으나, 1950년 12월 마지막 날부터 다시 제3차 공세(신정 공세)를 개시하면서 격전이 전개되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17:00경 단시간의 공격준비사격을 실시한 후에 약 200km에 걸친 전 전선에서 공세를 개시하였다. 이때 중공군은 문산 우측의 국군 제1사단과 동두천의 국군 제6사단 등 한국군 부대를 집중적으로 공격하였다. 국군은 계획된 대로 준비된 진지에서 최대한 적을 저지하였으나 중공군 주공부대의 집중적이 목표가 되어 병력의 열세를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중공군 제3차공세(`50.12.31∼1.15)는 유엔군이 38도선 부근으로 철수하여, 임진강하구―연천―춘천 북방―양양을 연한 38선방어진지을 점령하고 있을 때, 서울을 점령하고 유엔군을 한반도에서 축출할 목적으로 주공을 서울방향에 두고 실시된 중공군의 공격작전이다. `51년 1월 1일을 전후하여 실시되었다는 뜻에서 일명 신정공세라고도 한다. 이 공세로 유엔군은 `51년 1월 4일 재차 서울에서 철수하여 평택―제천―삼척선으로 물러났으나, 이 선에서 보급제한 때문에 공격 작전한계점에 다다른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유엔군은 기습적인 중공군의 대공세를 맞게 된 충격으로부터 점차 벗어나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전력을 재정비하여 공세이전하여 반격할 수 있는 여력을 축적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