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페로 분석
- 최초 등록일
- 2011.12.10
- 최종 저작일
- 2010.03
- 8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샤를페로의 작품을분석하고 그속에서의 신화적 요소와 환상성, 각각의 판본을 비교
목차
없음
본문내용
● 샤를 페로 Charles Perrault (1628-1703)
1. 작가소개
작가이며 행정가인 샤를 페로는 1628년 1월 12일 부르주아가정에서 태어났다.1) 아버지의 뒤를 이어 23세에 변호사가 되었으나 25세에 형 끌로드와 공저로 ‘트르와의 벽들, 또는 희가극의 기원’이라는 시를 발표하고 재무 담당관이었던 형 삐에르의 서기가 된다. 26세부터 행정부에 들어가 재상 꼴베르의 신임을 얻어 중요 직책을 맡았고 43세가 된 1671년에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된다. 당시 라 퐁텐느를 대표로 유행하던 우화에 큰 영향을 받고 1675년 ‘운문과 산문으로 쓰여진 다양한 작품집’에 삽입하여 ‘베르사이유 미로’라는 우화를 출간하였다. 44세의 늦은 나이로 19세의 어린 신부 마리 기숑과 결혼하였으나 마리는 6년 후에 죽고 페로는 네 명의 자식과 더불어 혼자 산다. 1687년, 59세의 페로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에서 ‘루이 대왕의 세기’라는 시를 낭독한다. 이 시 낭독사건은 고전주의 문인들의 가치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진보된 주장으로 유럽 전역에 걸쳐 신구논쟁이라는 싸움의 출발이 된다. 페로 측의 승리로 끝나는 이 세기 말의 논쟁과 ‘예술과 과학에서의 신고 대조비교’ 등 그의 저술은 이후 유럽이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로 들어가는 길에 새로운 가치관의 근거를 제시하는 일서가 되고 있다. 1695년, 그의 나이 67세에 발표한 ‘어미 거위의 이야기들’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1697년에는 ‘교훈을 곁들인 옛 이야기들’이라는 제목으로 바꾸어 출간한다. 그는 1699년에 당죠 신부를 위한 서문과 함께 파애른느의 ‘우화’를 번역하고 그의 삶에 대한 회상록을 쓴다. 72세에 22세의 아들 피에르가 군에서 사망하고 3년 후 1703년 5월에 페로도 이 세상을 뜬다. 그는 다정하고 활동적이었으며 특히 예술과 과학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현대적이고 충실했던 고전주의 시대를 대표할만한 지성인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