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병자호란
- 최초 등록일
- 2011.10.31
- 최종 저작일
- 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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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중기의 국제정세변화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목차
(1)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2) 정묘호란·병자호란
(3) 북벌론
본문내용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1)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16C 들어 조선은 연산군(燕山君: 1494~1506)대에 김종직(金宗直)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이
발단이 된 무오사화(戊午士禍)와 연산군의 어미인 폐비윤씨(廢妃尹氏)와 관련한 갑자사화
(甲子士禍), 중종(中宗: 1506~1544)대에 조광조(趙光祖)를 제거한 기묘사화(己卯士禍)
명종(明宗: 1545~ 1567)대에 외척 간의 권력다툼으로 말미암은 소윤(小尹)이 대윤(大尹)을
공격한 을사사화(乙巳士禍) 등 4대사화와 명종대 외척인 소윤의 윤원형의 세도와 선조(宣祖:
1567~1608)대에 들어서면 붕당(朋黨)이 사작 되며, 내부적으로 혼란한 시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 시기에는 동북아 국제정세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었는데, 명은 환관정치 등 정치
권의 혼란으로 무너져가고 있었고, 명의 혼란을 틈타 만주에서 여진(女眞)이 세력을 키우고
조선의 변경을 침입하기도 해 힘들게 막아내는 실정이었다. 일본(日本) 역시 16세기 초반
전국의 다이묘(大名)들이 할거하는 전국시대였으나, 후반기 들어 직전신장(織田信長)이 세력을
키워 통일이 가까워지고, 결국 그 뒤를 이은 풍신수길(豊臣秀吉)에 의해 통일을 이루었다.
일본은 혼란한 시기를 넘어 통일로 국력이 모아지고 있었
고, 봉건제(封建制)에 익숙했던
일본은 더 많은 봉토와 얻기 위해, 그리고 혼란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불만이 있던 봉건영주
들의 관심을 해외로 돌리고자 했다. 이에 풍신수길은 가장 먼저 조선을 치고자 했는데, 임진
왜란(壬辰倭亂)의 발단이 된다. 이렇듯 조선은 북쪽의 여진과 남쪽의 일본 등 떠오르는 세력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