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제1군단장, 김백일장군의 전사와 그 의미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11.10.12
- 최종 저작일
- 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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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6.25전쟁당시 혁혁한 전공을 올린 김백일 장군을 중심으로 동족산잔의 비극인 6.25전쟁에 대해 고찰해보고, 김 장군의 전사와 그 의미를 함께 고찰하고자 한다(총 6장)
목차
Ⅰ. 국군 창설의 주역으로 활동
Ⅱ. 6․25 직전, 여순 및 옹진 탈환전에서의 전공
Ⅲ. 남침의 대응과 성공적인 기계․안강 고수작전
Ⅳ. 북진의 맹장으로서 원산 점령
Ⅴ. 흥남철수작전에서 피난민 10만여 명 구출
Ⅵ. 대관령에서 조국의 수호신으로 산화
본문내용
김백일(金白日) 장군은 일찍이 여수의 반란을 소탕 하고 또 6․25의 남침이 있을 때 제1군단으로 동해안 일대에서 반격하여 38선을 넘어 풍운과 같이 몰아 멀리 혜산진까지 진격하였다가 중공 침입으로 강릉에 철수하고 또다시 반격하여 최선단에서 작전지휘 중 1951년 3월 28일 항공사고로 현령 34세로 순직한 6․ 25전쟁의 영웅이다.
김 장군은 1917년 1월 30일 북간도 연길현 국자가에 서 김창근의 넷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그의 원래 고 향은 함경북도 명천군 서면 삼향동이었다. 조부 김영 학 선생이 국가가 일제의 학정에 들게 되자 독립운동 을 위해 애국지사들과 함께 간도로 이주하게 됨에 따 라 그곳에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 간도에서의 생활은 당연히 궁핍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1930년 국자가 소학교를 졸업한 후 용정에 있는 은진중학교를 1년을 수료한 후 다시 단신으로 고국으로 돌아와 서울 보성중학교를 독학으로 졸업하였다. 그 후 그는 다시 만주로 건너가 길림고급중학교를 거쳐 1940년 봉천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군내의 한인특설부대 중대장으로 근무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맞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