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백제-금동관의 역할과 기능
- 최초 등록일
- 2011.03.11
- 최종 저작일
- 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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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임용고시 준비를 위해 4학년 여름방학 때 했던 스터디 시간 중에 작성한 파일입니다.
국편 한국사와 고고학적 발굴 결과를 토대로 만들었습니다.
목차
1. 백제 금동관 분포 지도
2. 서산 부장리 고분군과 백제 금동관
3. 온조왕 대 마한과 관련된 사료 내용삼국사기 권 제15 고구려본기 제3 - 태조대왕/70년
4. 국편 한국사 6권에서 설명하는 백제 초기 상황
본문내용
4. 국편 한국사 6권에서 설명하는 백제 초기 상황
<백제국과 목지국>
마한의 여러 國 중 하나였던 백제국은 한강 하류지역, 현재 서울시 강남구와 송파구 일대를 중심으로 삼았다. 송파구 석촌동 일원에 분포하는 목관묘계통의 유적이 당시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이 무덤들이 북방계인 백제국 최고 지배세력의 무덤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온조왕 대에 이미 영토를 뻗쳐 마한과의 경계를 정하고 곧이어 마한을 공격하여 병탄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때의 마한은 마한 전체라기 보다는 목지국을 중심으로 결집된 일부 세력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삼국사기> 온조왕조 기사에 반영된 백제와 마한과의 관계는 한강 하류지역에서 성장한 백제국 중심의 연맹과 기존의 선주민사회를 바탕으로 성장하여 온 목지국 중심의 연맹간의 관계로 이해된다. 여기서의 패하는 현재의 임진강, 대해는 서해, 주양은 춘천에 해당되며, 웅천은 안성천으로 보는 견해와 금강으로 보는 견해로 대립되어 있다. 이 기사에 표현되어 있는 영역관은 당대의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기 보다 후대의 사실이 소급, 부회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중 략>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