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시대와 평안시대의 문화적 특성과 국풍문화가 미친 영향 검토
- 최초 등록일
- 2010.07.08
- 최종 저작일
- 2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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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나라시대와 평안시대의 문화적 특성과 국풍문화가 미친 영향 검토
목차
Ⅰ. 서론
Ⅱ. 나라시대의 문화적 특성
Ⅲ. 평안시대의 문화적 특성
Ⅳ. 국풍문화가 미친 영향
Ⅴ. 결론
※ 참고자료
본문내용
Ⅰ. 서론
894년 일본에서 견당사 파견이 중지되자 먼저 유입되어 있던 당 문화를 일본의 고유문화로 동화시켜 일본의 색체가 짙은 문화로 발전시켰다. 이는 도래계 씨족이 역사 속에서 희미해지고 율령체제 속에서 몇 대를 거쳐 가는 과정에서 도래계라는 의식이 희박해졌으며 당의 문화에서 자기의 문화로 관심이 이동한데 기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형성된 국풍문화는 현재 일본 우익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 이 보고서에서는 나라시대와 평안시대를 거쳐 국풍문화가 형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알아보고 국풍문화가 현재의 일본 우익에 미친 영향에 대해 검토해보도록 하겠다.
Ⅱ. 나라시대의 문화적 특성
대화개신 이전의 수도는 유력한 호중 중 제1인자인 천황의 거주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율령체제가 갖춰진 이후로 수도는 천황의 절대적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어야 했다. 즉 천황이 중심이 되는 문화의 중심지여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지통천황 때인 7세기 말 아스카에는 당나라 수도의 모습을 본 딴 등원경이 만들어 졌으나 나라 북쪽에 새로이 평성경을 축조하게 된다. 평성경은 약 70년간 수도로 발전하게 되며, 수도가 평성경에 있던 이 시대(710~784)를 나라 시대라 한다.
평성경은 현재 나라 현 북부에 해당하고 8세기가 당이 최전성기를 맞아 서아시아와도 교류하며 국제색이 풍부한 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대화 조정은 7세기에서 9세기에 걸쳐 견당사를 파견하여 당 왕조의 선진문물을 수입했다. 당시 대화왕조에서 당으로 갈 때에는 견당사, 유학생, 선원 등 매번 4척 정도의 선박을 이용했으며, 항해도중 난파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참고 자료
한국대외관계사 수업내용 中
최영호, 『현대한일관계사』, 국학자료원, 2002.
유상종, 『한일관계사를 통한 일본을 바로알자:일본왕가의 뿌리는 한국』, 학문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