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사기
- 최초 등록일
- 2009.11.12
- 최종 저작일
- 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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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갈때 생겨난 분청사기의 시대적 배경과 특징. 무늬.제작 기법까지 총체적으로 분청사기에 대해 다루고 있다.
목차
서론
본론
1 분청사기의 시대배경
2 분청사기의 시대구분
3 분청사기의 제작기법
4 분청사기의 문양
5 분청사기의 특징과 의의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분청사기(粉靑沙器)는 고려시대의 청자에서 조선시대의 백자로 변화하는 시기에 유독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적인 도자기로서 조선시대 전기의 그릇을 대표하는 것이다. 분청사기라는 명칭은 청자에 백토분장(白土粉粧)을 하여 표면이 백색을 띄며 유약을 바른 후 전체 색조가 회청색을 보여 미술사학자셨던 고유섭선생이 이름붙인 “粉粧灰靑砂器”의 줄임말이다. 이 말처럼 분청사기는 원래 청자만을 말한다 할 수 있으나 조선시대에 만들었다는 시대적 개념과 문양이 조선적이라는 점을 고려하고, 시문기술이 고려청자와는 차이가 있어 총체적으로 고려청자와 구분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에서는 분청사기가 우리 역사에서 중요하게 특징을 갖는 것을 알기 위하여 분청사기에 대하여 기초적으로 알아보고 이로부터 알 수 있는 분청사기만의 특징과 의의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Ⅱ. 본론
ⅰ. 분청사기의 시대배경
고려말 혼란한 정치와 금속기 사용 금지 정책에 따라 목기사용 증가, 국가가 운영하던 자기소의 붕괴로 인한 도공들의 자기소 이탈현상 그리고 그에 따른 도공들의 자발적인 소규모 가마에 의해 제작이 이루어졌다는 것들이다. 분청사기는 고려 후기 청자에 그 연원을 두고 있는데 고려후기 14세기에 이르러 신진사대부의 등장은 고려사회가 추구하던 관념자체를 뒤흔들게 된다. 이들 사대부들은 유교의 가르침을 따라 세상을 보게 되는데 이 유교라는 것이 불교와는 달리 내세보다는 현세에 더 충실을 가하자는 것으로 매우 현실적인 종교였다. 그래서 무덤에 묻는 내세지향적인 그릇보다는 현세의 생활에 널리 쓰여질 수 있는 그릇들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들은 유교의 선비정신으로 무장하여 질박하고 검소한 것을 으뜸으로 여겼다. 14세기 중국의 대량생산되는 도자기들을 본 유학자들은 자신들이 세력을 잡아감에 따라 현실적인 대안에 치중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전국에 가마를 만들게 하고 미적으로는 조금 떨어지는 면이 있다 하더라도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일상 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대접이나 접시위주의 생활용기를 만들게 하였다.
참고 자료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 - 윤용이
조선시대 도자기 - 김영원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