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정벌
- 최초 등록일
- 2009.10.12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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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마도 정벌에 대한 한일간의 시각입니다.
목차
1. 흔치 않은 공격전, 대마도 정벌
2. 세 차례의 대마도 정벌
3. 조선 우위의 한일 관계로 가는 전기
4. 대마도 정벌에 대한 한일간의 시각에 관한 小考
본문내용
학자들 간의 의견을 살펴보면, 우리 측의 견해는 기해동정의 원인에 대해 대부분 ‘왜구의 약탈을 송두리째 뽑아버리기 위해 그 근거지인 대마도를 정벌하였다’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고, 이와는 달리 그 원인을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 곧 조선이 대마도를 공격한 것은 명의 대왜정벌론과 대북정론의 시각에서 명의 조선 침공의 위험성을 사전에 방지하고, 이와 아울러 우리 남방의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한 이중의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 였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조선은 명의 대왜정벌론에 지지를 표명하고 이를 이용하여 명의 군사적 행동을 사전에 방비함으로써 명의 래군에 따른 전화를 막기 위해 대마도를 공격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로써 조선은 명과 왜라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대마도 정벌을 전쟁사적 시각에서 탈피하여 조선과 명의 외교관계 속에서 파악한 논리이다.
한편, 일본학자들은 이 사건에 대해 ‘대마도 토호나 민중들이 기근을 면하기 위해 조선이나 명에 해적 행위를 하다가 그 보복을 받은 것’으로 단순히 생각하고 있다. 심지어는 대마도 정벌을 일본 사료인 『조선통교대기』에서 “아군 1500명을 죽이고 배를 불살랐다”라는 기사에 근거해 조선이 패한 전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기사는 박실의 패전에 국한한 것이지 결코 전체적인 전쟁의 결과를 설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조심할 것이 있다. 대마도 정벌의 승리에만 도취하여 마치 이것이 일본과의 전면전에서 승리한 듯한 시각을 가져 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그 원인은 어떻든 간에 조선은 왜구의 노략질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를 보낸 것이고 일본과의 전면전을 시도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조선 정부는 정벌 전에 이미 대마도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던 큐슈절도사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고 그의 사신 정우 등에게 이미 넌지시 대마도 정벌의 의사를 밝혔다는 데에서 알 수 있다. 왜구를 한일간의 적도로 규정함으로써 대마도 정벌이 일본의 침공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켰고 역사는 그 당시의 사실을 그대로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대마도 정벌 당시 무로마치 막부를 비롯한 일본 지배층의 동향에서도 알 수 있는데 그들은 이 사건을 마치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것처럼 받아 들여 변경 지역이나 국경지역의 급박함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에게서도 왜구는 한갓 귀찮은 골치덩어리였던 것이다. 또 당시 일본은 중앙집권적 국가권력이 없었기 때문에 대마도를 조선이 공격한다는 데에 큰 거부감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이 일본의 반독립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던 여러 호족과 다각적으로 교린정책을 썻던 것은 이를 증명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참고 자료
박선식, 한민족 대외정벌기
한일관계사학회 관련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