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사라예보사건
- 최초 등록일
- 2009.05.11
- 최종 저작일
-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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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사라예보사건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3.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사라예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티토가 이끈 유고슬라비아 연방 보스니아의 수도였던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유고 연방이 해체되면서 세르비아 사람과 크로아티아 사람, 그리고 회교도들 사이에 내전이 일어나 지금은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1914년 6월 28일, 일요일. 사라예보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그런데 갑자기 총소리가 한가로운 거리를 뒤흔들었다. 길모퉁이를 돌던 호화로운 승용차 한 대가 잠깐 멈칫거렸다. 그리고 거기에 타고 있던 사람 둘이 총에 맞아 나란히 쓰러졌다. 다름 아닌 오스트리아제국 황태자 페르디난트와 아내 조세핀이었다. 총을 쏜 사람은 열아홉 살 먹은 세르비아 청년 가브릴로 프린시프였다. 프린시프는 곧바로 붙잡혔고 황태자 부부는 15분 남짓 지나 숨을 거두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사라예보사건이다.
2. 본론
프린시프는 폐결핵을 앓고 있던 허약한 젊은이였는데, 자신이 세르비아 사람인데도 오스트리아 국적을 가져야 한다는 현실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한편 페르디난트는 "위대한 오스트리아 제국의 명예"를 한 몸에 짊어진 야심만만한 황태자였다. 그는 이날 가까운 곳에서 열린 육군 훈련을 지켜보고 돌아가는 길에 사라예보에 들렀다. 아내 조세핀은 보헤미아 백작집안의 딸이었는데, 황태자비로는 신분이 낮아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하는 처지였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귀족들은 이 여자를 따돌렸고 왕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나라 황태자가 제 나라에서는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황태자비를 데리고 잔뜩 위엄을 부리면서 보스니아를 찾은 것을 보고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프린시프는 이 같은 증오와 원한을 실어 오스트리아 황태자에게 총을 쏘았다. 그러나 프린시프는 자기가 한 일이 어떤 소용돌이를 몰고 올 것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다만 조국 세르비아가 다른 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랐을 뿐이다. 프린시프가 쏜 총알은 세상을 단숨에 집어삼킬 것처럼 무서운 전쟁으로 번져 나가 스스로 일류 문명세계라고 자랑하던 유럽을 피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