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형동검은 석관묘보다는 지석묘에서 대부분 출토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 묘제는 과도기에 해당하는 시기의 유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지석묘 외의 무덤들 즉, 석관묘, 토광묘, 옹관묘 들들 이 한 묘역에 군집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전기 묘제의 영향화에서 ... 이 시기 이후에 송국리형 문화의 영향을 받은 지석묘를 비롯한 무덤들은 하천변이나 충적지, 구릉말단부 등 다양한 입지변화를 보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반식 지석묘에서 상석 아래 개석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석을 세워서 조립하나 석곽묘는 괴석을 쌓아 만든다. 셋째 유물에 있어 석곽묘에서는 후기청동기를 많이 매장하나. ... 이처럼 상석을 중심으로 지상의 구조형상과 지하의 매장주체시살의 형상을 결합하여 지석묘의 형식을 분류한다. ... 과거에는 대구 대봉동 지석묘의 하부구조로서 이와 같은 석곽이 다수 발견된 바 있어 일부에서는 같은 석관묘의 4형으로 다룬 일이 있으나 내용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선사시대의 묘제 (1) 토장 (2) 적석총 (3) 지석묘 (4) 석관묘 (5) 석곽묘 (6) 옹관묘 (7) 토광목곽묘 3. ... 우리나라에서는 고인(支, 撑)과 돌(石)로 되어 있어 고인돌을 지석묘라고도 하며 민간에서도 고엔돌, 굄돌, 되무덤, 도무덤 등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 묘의 주인을 알 수 있을 때 능, 원, 묘로 나뉘며, 주인을 알 수 없을 때는 총이나 분으로 구별된다.
그런데 지석묘 행렬과 10여 채의 주거지 사이에서는 또 하나의 독특한 시설이 발견됐다. 폭 5m, 너비 29m에 달하는 기둥 구멍들의 흔적이다. ... 청동기 시대의 원형 주거지와 대형 고상가옥, 그리고 갖가지 부장품을 지닌 지석묘, 이 마을을 통해 늑도 교역을 주도했던 세력의 규모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 그렇다면 늑도의 교역을 주도한 세력은 주변의 육지에서 벼농사를 짓던 이들이 아닐까하는 예상이 가능하다. 1998년, 사천 기능대학 건립 예정지에서는 고대인들의 대규모 주거지와 지석묘
청동기시대의 묘제 -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무덤 양식, 즉 묘제는 석관묘, 지석묘(고인돌), 토광묘, 옹관묘 등이 있으며, 보통 이 중 석관묘와 지석묘는 청동기시대 후기의 것으로 이해되고 ... 봉분의 재료에 따른 분류 : 토장묘, 지석묘, 적석총, 석총, 토총, 전축분 3. 유구의 재료에 따른 분류 : 석관묘, 석곽묘, 목관묘, 옹관묘, 도관묘 2. ... 지석 사연 있는 이름이 붙여지기도 하였다.
崔夢龍, 1978, 「전남지방 소재 지석묘 형식과 분류」,『歷史學報』78집. 최성락, 2000, 「영산강유역 고대사회의 형성배경」(역사문화학회 국제학술심포지엄). ... 이 일대의 옹관묘는 수적 개체 밀집도 뿐만 아니라 양적 규모에서도 특징적인 고고학적 지표로 인정된다. 이러한 옹관묘들은 나주시 潘南面? ... 또한 『三國志』 魏書 東夷傳 되면 가야와 전북지역에서 이미 나타나있던 수혈식석곽묘와 더불어 橫穴式石室墓가 등장하는데, 적어도 전기의 석실묘들은 분구의 규모나 지상?
산기슭에 위치한 지석묘는 평야지대나 산악지대의 산 말단부에 분포되어 있다. 지석묘군의 석실배치는 산의 방향과 일치하고 있다. ... 평지에 위치한 지석묘는 대부분 주변의 하천이나 강과 평행하게 열을 지어 배치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구릉상에 분포된 지석묘는 대부분 산에서 뻗어내린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 지리적 분포와 입지ㆍ군집상태 지석묘가 분포되어 있는 지형은 평지, 구릉, 산기슭 등으로 대별해 볼 수 있다.
널길에 왕과 왕비의 지석 두 매가, 그 위에 오수전 한 꾸러미가 얹혀 있었다. 지석 뒤에는 석수가 무덤 밖을 향해 남쪽으로 우뚝 서 있었다. ... (방위표를 나타내는 간지도 표기로 당시 방위에 대한 개념은 상당히 정확했을 것이라 추정) 위치적으로 왕릉 동북쪽의 공산성 자리를묘에 관한 한 미치지 못한다는 뜻으로 오직 매지권의 내용에 ... 특히 눈길을 끄는 유물은 왕릉의 주인공이 무령왕과 왕비임을 알 수 있게 한 지석(가로 41.4cm, 두께 5cm로 앞뒷면 모두 글자)이다.
이렇게 우리가 살고 있는 전남지역에 고인돌(지석묘)가 많이 분포되어 있다. ... 여기에는 1995년 3월부터 5월까지 무안 성동리 안군 에서 발군된 지석묘도 전시되어있다. ... 또, 고인돌은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고 있지만 공동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 의식을 행하는 제단으로 사용되었던 흔적들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석묘라고
길장지구는 서단산문화가 시작되면서 비파형동검 외에 지석묘가 등장하였다. 화장을 이용한 장례 풍습은 화전현 서황산둔, 길림 모아산 유적 등에서 확인되었다. ... 정가와자 유적은 모두 14기의 장방형 토광수혈묘가 조사되었다. ... 그 중 가장 큰 규모에 속하는 6512호 목곽묘의 주인공은 수장층이며, 50~60세의 노년 남성으로 현대의 몽골인 및 퉁구스인과는 다른 동아시아 몽고인종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3.
고식 와질토기 ▲주머니호 -김해박물관 촬영 ▲쇠뿔잡이항아리 -김해박물관 촬영 강 유역에는 기존의 지석묘나 석관묘와 다른 목관묘가 여기저기 조성되기 시작했다. ... 목관묘 ▲통나무관(목관묘) -김해박물관 촬영 5. ... 목곽묘 ◀김해 양동리 162호 목곽묘 유구 -동의대 박물관 출처 8.
조선시대인 1838(헌종 4)에 김학조(金學祚), 김흥일(金興一) 등이 당시 삼척부사 이규헌(李圭憲)에게 삼척김씨 시조의 유적과 지석(誌石)을 찾아보겠다고 간청하여 발굴하였더니 출토품으로 ... 묘 앞에는 명주군왕 김주원묘(溟州郡王 金周元墓)라고 새긴 묘비가 있으며, 좌·우에는 망주석, 문인석, 동물석상이 한 쌍씩 세워져 있다. ... 명주군왕 묘은 앞·뒤 2기로 되어 있고, 긴 사각형의 돌을 두른 봉분으로 만들어져 있다.
우선 분포권에서 산간지역과 평지지역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며 매장시설은 지석묘와 적석묘관묘로 다르다. ... 지석묘와 적석목관묘는 장축방향과 두향 선정 기준도 상이하며 공반 유물에서도 형식학적 연관관계를 찾을 수 있는 유물이 거의 없다. ... 비파형 동검의 발원지와 중심지 비파형동검은 고인돌(지석묘)과 돌넘무덤(석관묘)에서 나왔는데, 한반도 남부 끝인 전남 보성강 유역과 여수 남방식 고인돌에서 여러 점의 비파형동검이 출토되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