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나 여진족의 침입으로 많은 사상자와 포로가 생기자 지휘관으로서의 책임을 물어 첫 번째 백의종군을 명(命) 받는다. ... 정유년에 심한 고문을 받고, 백의종군을 당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들의 죽음을 맞이하는 등 인생의 한 면으로 봐서는 불행한 일들의 연속이었는데도 그 힘든 상황을 견뎌내고, 12척의
자신이 이때 동안 조선이라는 나라를 위해서 목숨 걸고 싸웠는데 그에 대한 보상이 고문과 백의종군이라니... 왕에 대한 원망이 많았을 것이다. ... 임진왜란에서 엄청난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쓰레기 왕으로 인해서 고된 고문과 백의종군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장수로서 치욕스러울 것이다. ... 그래서 백의종군을 감당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 대단할 수밖에 없다. 영화의 전반부에 고뇌에 찬 이순신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나타냈는데 그 모습이 애처롭고 안타까웠다.
임진왜란에서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임진왜란을 종료시킬 수 있었는데 그러한 장수를 백의종군 시킨다는 것은 미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 조선의 왕인 선조는 나라와 백성을 버리고 도망을 갔는데, 장수로서 군인으로서 이순신은 백의종군을 당하는 수모를 참으면서 왜구들과 싸웠다. ... 백의종군 중에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지 못한 이순신의 마음은 억장이 무너질 것이다. 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순신은 조선을 생각했다.
조선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 대가로 백의종군을 시켰으니 말 다 한 것이다. ... 그것도 백의종군으로 인하여 장례를 치르지도 못했다. 왕이 원망스러울지도 모른다. 나 같았으면 반란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 상유십이척 미신불사, 필사즉생 필생즉사(명량 영화감상문) 무모한 전투 즉, 아군을 모두 다 사지에 몰게 한 전투를 하라는 선조의 명을 거역했다는 이유로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의 길을
이순신 장군은 멍청한 왕인 선조의 시기를 사서 백의종군까지 한 장수다. 조선을 지킨 공로로 받은 것이 백의종군이었다. ... 이순신은 백성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백의종군 전 당시에 3만 여명 정도의 수군이 있었다. 그러나 원균이라는 멍청한 장수가 왜구의 꾐에 넘어가서 모든 병력을 잃게 된다.
이순신 장군은 무능한 왕인 선조에 의해서 온갖 고문을 다 당하는 것은 물론 백의종군을 하고 장수로서 다시 복귀한 것이었다. ... 죽음을 선택 할 만큼 장수로서의 치욕인 백의종군을 꿋꿋하게 견디고 그는 다시 수군통제사로 복귀했지만 칠천량 전투에서 원균이 이끄는 수군이 전멸하면서 배도 12척밖에 남지 않았다.
원균의 모함으로도 삼도수군총제사의 직위를 상실했음에도 권율장군 휘하에서 백의종군하며 국가에 헌신함으로써 진정한 국가에 대한 충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 충성의 예를 살펴보면, 왕의 옷을 입고 대신 죽은 신승겸 장군, 위국헌신의 표상이 안중근 의사, 백의종군하며 국가에 충성한 이순신 장군 등이 있다. ... 편집여백 : 위쪽 15, 아래쪽 15(꼬리말 10), 왼쪽/오른쪽 15, 줄간격 160 (절단선) 단 번 : 0000 성 명 : 0 0 0 □ 실천사례 우리 모두는 백의종군하며 국가에
그래서 백의종군을 받기보다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 죄가 없음에도 백의종군을 하는 것을 보면 내가 만약 이순신 장군처럼 백의종군의 명을 받았다면 과연 그 명을 따랐을까 생각해본다. 이순신 장군도 군인이기 전에 사람이다. ... 죽는 것보다도 비참한 백의종군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순신 장군.
이순신은 당시 모든 해군의 병권을 가진 장군이었다가 모함을 받고 모든걸 다 잃고 다시 일개 병사로 시작하는 백의종군을 2번이나 겪는다. ...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는 장군의 위치이지만 자신을 백의종군하여 온갖 고문을 하다가 전쟁이 긴급하게 돌아가자 다시 전쟁터로 떠밀어 보낸 임금에게 절대적인 존재이지만 냉소적인 이순신의 시각이
책은 이순신이 의금부로 압송되어 백의종군이 되는 시기부터 그가 전투에서 전사하는 노량해전까지 그의 모습을 그렸다. ... 백의종군이 끝난 시점에서는 알고 있듯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해 의금부로 압송되기 전 그가 만들어 논 해전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해군은 한순간에 없어지고 단 12척의 배만이 그를
그러나 불행 중 다행히 그는 28일간의 투옥 끝에 모진 고문까지 당 했지만 풀려나 백의종군의 길에 을랐다. 그는 결코 자포자기 하지 않았다. ... 이충무공의 일생 일대를 통하여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간은 4개월여의 제2차 백의종군 때와 통제사로 발령된 직후의 함대 재건시 겪은 정신적, 육체적 수난이 었을 것이다. ... 심지어 정유년에는 서인들과 원균의 모함으로 이순신장군이 사형을 받았다가 정탁의 구원을 받아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백의종군 하였다. (3) 백성과의 관계 정유년에 명나라 해군제독 진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