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인물 중 이순신의 장남인 이회의 이야기도 있는데, 소설 속 이회는 아버지 이순신에 대해 ‘무관이 되는 순간부터 아버지는 어머니의 남편,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백성들의 남편, 백성들의 ... 이회는 아버지와 함께 보낸 어린 시절 기억이 거의 없고, 이회가 아주 어릴 때는 이순신이 무과를 준비했고, 조금 커서는 급제하여 타 지역에 근무하느라 집에 있지 않아 집안의 대소사는 ... 나는 이순신과 이회 부자와는 달리, 아직 부녀 간의 정을 나눌 기회가 있으니 후회하지 않게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본당에는 이회의 초상화가, 좌우에는 이회의 처첩과 벽암대사의 초상화가 봉안되어 있다. 한국전쟁 당시 분실되어 현재의 초상화는 새로 만든 것이다. ... 이회가 참수당할 때 그의 목에서 매가 날아 나와 사람들을 노려보는 기이한 일이 있어 조사를 다시 해보니 무죄가 밝혀져 이회와 처첩의 넋을 달래기 위해 지은 사당이 바로 청량당이다. ... 이회는 남한산성 축성 당시 성의 동남쪽을 담당한 공역 책임자였다.
팔도도 1402년에 이회가 제작 조선시대?최초의 전국 지도 현재 전하지는 않음 우리나라?최초의 농서는 농사직설입니다.? 농사직설은 세종 대에 간행된 우리나라? ... 최초의 전국 지도는 팔도도는 1402년에 이회가 제작한 조선시대?최초의 전국 지도입니다. 팔도도는 이후 세종 대에 지도를 제작할때에 많이 참조를 하게 됩니다. 조선시대?
화이회는 빨리 창을 들고 대적을 와서 이원은 뛰어 필마를 모아 먼저 달아나고 화이회는 또 뒤를 따라 도망쳤다. 其殘敗兵馬, 被這數千紙打昏了。 ... 화이회는 의연하게 화를 내면서 말했다. “오늘은 죽음만 있고 살지 못하고 진격만 있고 후퇴는 없다!” 於是李遠心中決一死以殉國。 ... 이원이 이 광경을 보고 부득불 화이회와 중군 백여기병을 데리고 서남쪽을 향하여 달아났다. 早見旌旗招, 兩員大將當先, 大呼:“休放走了李遠!”
수축 당시 이회가 세웠다는 이 문은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성안으로 들어온 문이며, 강화도로 가기 위하여 문을 나섰다가 추위로 인해 강화도 행을 포기하고 다시 들어온 곳이기도 하다. ... 암문(暗門) 남한산성은 현재 남아 있는 암문이 모두 16개로서 우리나라의 성 중에서 암문이 가 까닭은, 그가 이회와 함께 남한산성을 나누어 축조하였고, 또 병자호란이 발발하였을 때는 ... 청계당이라 부르는 것은 벽암대사 김각성 스님도 함께 모시고 있기 때문이며, 매당 또는 응당이라고도 부르는 것은 수어장대에 있는 매바위 전설로 인하여 청량당에 모신 이회의 혼령을 매당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