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 단군과 기자의 때는 아마득히 거칠고 소략하여 상고할 수가 없고, 신라 말에 孤雲 崔致遠이 당나라로 들어가 과거에 급제하여 文名이 크게 드러났다. ... 고려 초에는 崔承老가 글을 올려 나라의 폐단을 진술하니 그 글이 볼 만하였다. 중엽에 이르러 鄭知常, 金克己, 李奎報, 李仁老, 林椿, 陳?
저자가 최치원(崔致遠)이라는 설과 김척명(金陟明)이라는 새로운 설도 있으나, 박인량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 *수삽석남* 石枏枝 新羅崔伉, 字石南. 有愛妾, 父母禁之, 不得見數月. 伉暴死, 經八日, 夜中伉往妾家. 妾不知其死也, 顚喜迎接. ... 석남지 신라의 최항(崔伉)은 자가 석남(石南)이다. 애첩이 있었는데 부모가 금해서 수개월을 보지 못했다. 항이 갑자기 죽어 8일이 지나, 밤중에 첩의 집으로 갔다.
그는 문학이 객관적 정세악화에 부딪친 1931년 이후부터 동반작가의 의미는 거의 상실되기 시작하였다. ②동반자 문학 한국의 경우, 엄밀한 의미에서는 최서해(崔曙海) ·주요섭(朱耀燮) ... 얼마 후 이종명·김유영·이효석이 탈퇴하고, 박태원(朴泰遠)·이상(李箱)·박팔양(朴八陽)이 가입하였으며, 다시 유치진·조용만 대신에 김유정(金裕貞)·김환태(金換泰)로 교체되어, 항상 ... 경성농업학교에 영어교사로 취직. 1933년(27세) 김기림(金起林), 이종명(李鍾鳴), 김유영(金幽影), 유치진(柳致眞), 조용만(趙容萬), 이태준(李泰俊), 정지용(鄭芝溶), 이무영
인물 풍속을 살펴보고 각 시대 기풍의 변화를 알아볼 수 있게 하였다. 4) 동문수(東文粹) 신라 이래 조선 초기까지 우리나라의 문인이 지은 문장을 가려 뽑은 명문 선집으로, 최치원(崔致遠 ... 그 소견은 역시 천박하구나) 이글에서 김종직이 말하고 있는 것은 도문일치론(道文一致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