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한나라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3.10.21
- 최종 저작일
- 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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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한나라의 전반적인 역사
2) 정치
3) 사회경제
4) 문화
5) 공예
6) 회화
본문내용
1) 한나라의 전반적인 역사
한 왕조의 창시자는 BC 202년에 항우를 타도하여 황제의 자리에 올라 장안을 수도로 하고 중국을 통일한 진말의 반란 지도자의 한 사람인 유방이다. 한왕조는 기본적으로 진나라의 국가체제를 계승하여 전국통치조직은 군현제를 기본으로 하였다. 한의 군현과 봉건 병치제도를 군국제라고 부르는데 유방의 치세 중에 공신인 왕들은 모두 멸망하고 왕은 결국 유시 일족 출신자에 한하는 것이 한 왕조의 정제가 되었다.
한나라의 봉국을 살펴보면 제후왕은 중앙관제와 유사한 관제를 가지며, 한대 초기에는 자립적 경향이 있었으나 유방이 죽은 뒤 황후 여씨와 그 일족에 의한 궁정정치의 일시적 혼란이 생겼다. 그러나 문제, 경제의 시기에 한왕조의 지배체제가 안정을 되찾게 되고 무제 때에 이르러 제후왕은 봉국에 대한 통치의 실권을 완전히 잃어 군국제는 내용면에서는 군현제와 똑같은 것이 되어, 한왕조의 중앙집권적 전제통치의 체제가 완성되었다.
무제 시대에 한제국은 대외적으로 크게 영토를 확대하였다. 북방의 흉노에 대하여 여러차례 원정을 실시하여 그 세력을 고비사막 이북으로 물리쳤고, 동방으로는 한반도에까지 진출하였으며, 서방에서는 장건의 원정을 계기로 서역제국을 복속시키고 중국과 서방과의 교통로인 ‘실크로드’가 개척되었다.
이와 같이 무제의 치세는 사상 최대의 대제국이 건설된 전성기였으나 반면에 제국의 모순이 표면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대규모 원정, 토목사업, 궁정의 사치 등으로 국가 재정의 파탄을 초래하자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증세, 화폐제도 개선 등의 재정정책이 취하여졌다. 이 정책은 재정의 불균형을 해결할 수는 있었으나 농민에게 과중한 부담이 되어 사회적 모순이 심화되었다. 따라서 소제나 선제 시대에는 재정의 안정에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