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의 시대적배경과 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03.06.20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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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저서를 통한 논쟁은 어떤 의미에서 권력간의 분쟁을 반영한다. 13세기에 교회는 지상의 권위로서 그 영향이 최고점에 달해 있었다. 교황권은 정치적으로 세속화 되어 있었다. 국왕보다도 교황이 이 지상의 삶에서 더 큰 권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그 당시를 연구한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내릴 수 있는 단언이었다. 사회에 만연된 이원론은 중대한 딜레마들을 야기시켰다. 지상에서의 삶이 사후의 영원한 삶을 위한 눈물 동산이라는 개념에서 떨어져나가 어떤 다른 목적을 지닐 수 있을까?
철학은 그것을 구성하는 사회의 구조를 따르게 마련이다. 13세기 교회와 국가는 둘 다 강력한 전제성을 띠고 있었다. 그래서 정신과 사물의 모든 힘들이 전능하신 하느님에 의해서 지배된다고 본능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게 대두되었다. 그러나 하나의 사회는 수직적으로 분리되어졌기 때문에 사회는 정신과 물질간의 갈등, 종교적 관념과 이성적 논리간의 갈등으로 사로잡히게 되었다.
단테는 이러한 이슈를 향하여 간접적으로 접근해 갔다. 즉, 전제 군주국이 아닌 도시 국가의 문제로서, 전문적인 철학자가 아닌 교육을 잘 받은 비 전문가의 입장으로서, 그리고 시를 통하여 그 문제들을 제기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규명해갔던 것이다. 결국 그는 수 많은 당시의 지적문제점들을 접하였고, 예술가들이 으레 그렇듯이 그것들을 철학적 사상가들의 통찰력과는 다른 직관과 상상력에 의해서 표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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