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유럽농업사 500-1850년-요약과 서평
- 최초 등록일
- 2002.11.19
- 최종 저작일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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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슐리허 반 바트의 서유럽농업사에 관한 요약과 서평입니다.
총 17페이지에 해당하는 긴 글이지만, 꽤나 요긴 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여기에 올립니다. 요긴하게 쓰시길..
목차
제1부 직접적 농업소비시대(500-1150년경)
제1장 봉건제와 자연경제
제2장 장원제
제3장 중세 초기의 농업
제2부 간접적 농업시대(1150-1850년경)
제1편 인구
제2편 가격과 임금
제3편 중세 후기의 농업과 농촌(1150-1550년경)
제1장 생산에 대한 소비의 영향
제2장 장원제에서 소작제로의 이행
제3장 개간과 간척(12-13세기를 중심으로)
제4장 14-15세기의 농업불황
제5장 중세 후기의 농업
제6장 농민전쟁과 농민반란
제3부. 서 평
본문내용
봉건 유럽이 어디에서나 똑같은 정도로 봉건화되지는 않았고, 동일한 리듬으로 전개되지도 않았으며, 어떤 곳에서도 완전한 형태로 성립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유념하면서 이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자연경제의 중심은 무엇보다 카롤링 제국 내에 있었다. 카롤링 제국 내에서 지배적이었던 특별한 경제제도는 사회체제에도 반영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봉건제로 카롤링 제국에서 완전한 발전을 보았다.
봉건제는 봉토제와 장원제로 구분될 수 있다. 원래 게르만족의 종사제도가 이후 두 당사자, 즉 주군과 종신이 서로간에 충성을 맹세함으로써 유대관계를 맺는 프랑크 왕국의 종신제가 성립되었다. 이것은 대등한 입장에서 상호 관계를 가지는 사람들의 결합체로써 종신은 토지나 가끔 관직으로 된 베네시움(녹봉, 은전, 봉토)를 수여받았다. 초기에는 종신이 그의 주군에게 봉사하기 때문에 봉토를 받았으나, 후기에는 종신이 봉토를 가졌기 때문에 그의 주군에게 봉사했다. 주군에 대한 충성과 봉사가 더 이상 가장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하고 봉토가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다. 봉토제는 자연경제의 한 산물로 봉주는 그의 봉신들과 관리들에게 화폐로 보수를 지급할 처지가 못되었기에, 토지나 그 토지의 생산물로 보수를 지급해야 했던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봉주는 특히 그를 위해서 군사봉사를 수행하는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맺었다. 봉신은 그의 봉주를 충언과 행동으로써 도와야 했다. 봉주는 화폐가 부족한 사회에서 자신과 봉신과 성직자들을 먹여 살여야 했기에 이를 장원제를 통해서 실현했다. 장원제는 토지 소유주가 직접 그 자신의 관리 아래 보유하거나 때로 장원관리인에게 위임하여 관리하는 영주지 부분과 농노들에게 배분되어 농노들 스스로가 경영하는 나머지 농민보유지 부분으로 구분되는데, 농노들은 현물 형태로 생산물을 장원에 공납할 의무를 지며, 장원에 부역을 제공해야 했다. 뒤에 농노들은 상속 및 결혼과 관련해서 제한을 받았고, 장원 영주나 그의 대리인의 재판권의 지배를 받았다. 영주는 농노들이 조달하는 물품을 장원 현지에서 소비했다. 중세 초기엔 대부분의 제후들은 항구적인 거주지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아, 장원에서 장원으로 돌아다니면서 소비생활을 영위했다. 또 다른 소비제도는 생산물을 영주의 고정된 거처지로 수송하는 것이었다. 이 수송부역을 지는 건 농노였다. 또한 농노들은 영주지에 정적부역이나 정기부역의 형태로 쟁기질 작업, 수확작업, 탈곡작업과 같은 부역을 수행해야 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