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이해] 에드바르드뭉크와앤디워홀
- 최초 등록일
- 2002.10.18
- 최종 저작일
- 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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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애드바르드뭉크와 앤디워홀의 작품과 인생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필름을 보고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목차
Ⅰ. 뭉크의 절규 그 끝나지 않는 울림(stereo)
1. 뭉크의 행적 따라잡기
2. 뭉크에 대한 짧은 감상
Ⅱ. 20세기 뉴욕의 신화 앤디워홀과 팝아트
1. 앤디 워홀의 행적 따라잡기
2. 애디 워홀에 대한 짧은 감상
Ⅲ. 뭉크와 워홀의 공통점
본문내용
1. 뭉크의 행적 따라잡기
1) '노르웨이'에서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는 1863년 노르웨이에서 군의관이며 기독교신자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뭉크는 6세에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사망하였고, 14세에는 누나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마도 이때부터 뭉크의 내면은 죽음의 공포와 불안으로 내성적 성격이 되기 시작한 것 같다.
뭉크는 아버지의 희망으로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가, '오슬로 국립공예학교'에 입학하여 그림과 판화를 배웠으며 "예술가의 집"에서 주최하는 전시회에서 첫 작품인 "병든아이"로 데뷔하였다.
당시 북유럽에서는 기존의 가치와 기독교적인 관습에 저항하여 여성해방과 자유연예를 주장하는 "보헤미안 운동"이 한창이었고, 뭉크는 기독교 신자인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그랜드 로텔 까페'에서 한인게르트, 입센등과 교류하였다. 그 영향으로 뭉크는 몇몇의 여성과 교제하였지만, 여성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으로 여성을 작품활동의 방해물로 보아 평생독신생활을 하였다.
2) '파리'에서
뭉크는 1889년 파리에서 유학생활을 하였다. 당시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행사와 에펠탑의 완성, 박람회 등으로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 찬 파리"를 경험하였고, 초상화로 유명하며 보수적인 "레옹보나"의 제자가 되었으나 새로운 그림을 그려보려는 뭉크를 탐탁치 않게 보게 되었다.
19세기말 파리는 산업혁명이후 도시에 모여든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의 횡포에 내몰려 비참하게 지내는 모습과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 다윈의 진화론, 니체의 무신론 등의 기존의 질서에 대항하는 '신 이론'으로 혼돈을 이루고 있었고, 예술가들은 니체처럼 전통문화와 단절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자 하였고, 이때 뭉크는 세기말의 인간의 혼돈에 대한 자신의 예술관을 정립시켰다. 그리하여 1890년 뭉크는 "생클루 선언"에 의해 인간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