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 쓰레기 매립지에서 세계적인 디지털미디어 산업클러스트로 (상암동과 그 주변)
- 최초 등록일
- 2021.09.09
- 최종 저작일
- 20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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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정보
학과 |
일본학과, 관광학과, 문화교양학과 |
학년 |
2학년 |
과목명 |
역사의현장을찾아서 |
자료 |
1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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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 |
교재에서 역사의 현장을 다루는 방식을 참고하여 나의 삶에 특별한 공간을 한두 곳 소개하고 그 의미를 서술할 것.
교재에서 역사의 현장을 다루는 방식을 참고하여 나의 삶에 특별한 공간을 한두 곳 소개하고 그 의미를 서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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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기
Ⅱ. 본 문
1. 상암동의 유래
2. 상암동 개발 현황
3. 현장을 찾아서
4. 상암동 개발 관련 현안 사항
Ⅲ. 맺음말
본문내용
1. 상암동의 유래
상암동의 동명은 상암동 154번지 ~ 163번지에 해당하는 지역에 있었던 수상리라는 마을과 산28번지~32번지 일대에 있었던 휴암리라는 마을에서 각각 한 글자씩을 가져와 만들어졌다고 한다. 한편, 수상리는 수색동 앞 넓은 들의 건너편 마을로서 장마 때면 한강물이 이곳 앞까지 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물치, 수색, 수생리라고도 불렸고 현재 수상리가 있었던 상암동 154번지 일대에는 옛 마을 이름을 딴 물치 어린이공원이 있다. 아울러 휴암리는 마을에 부엉이바위라고 불리는 휴암(鵂巖)이 있어 부엉이바위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휴암리라고 불렸다고 한다. 한편 상암동 근처의 한강 변에는 난초(蘭草)와 지초(芝草)가 어우러져 경치가 아름다운 난지도(蘭芝島)라는 섬이 있어 청춘남녀들의 데이트 장소나 영화세트장으로 이용되었으나, 1977년 서울시가 난지도를 쓰레기 매립지로 활용하면서 2002년 월드컵공원으로 복원되기 전까지 난지도는 파리, 먼지, 악취의 삼다도(三多島)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불리며 메탄가스와 침출수가 흐르는 불모의 땅으로 인식되어 왔다.
상암동은 1950년 처음 서울시 조레 제10호로 현재와 같은 상암동이란 명칭으로 불렸으며 이후 1955년 인근의 성산동,중동과 병합되어 성암동이 되었다가 1970년 법정동과 행정동 명을 일치시키면서 다시 분리되어 현재의 상암동이 되었고 1975년 마포구로 편입되었다.
2. 상암동 개발 현황
서울시는 1997년 3월 상암동 509-7번지 일원의 1,629,160m2(492,821평)를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하여 대규모 아파트단지 및 첨단디지털 미디어 산업의 클러스터(집적지)로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상암동 일대에는 1만 가구 이상의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870여 개의 기업 등이 입주한 첨단산업 신도시로 변모하였다.
아울러 2014년 MBC 본사가 여의도에서 상암동으로 이전한 이래 KBS 및 SBS의 미디어센터, JTBC, YTN, 채널A, CJ E&M의 본사 등이 상암동으로 이전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