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와 동서양 )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전개된 민족주의와 탈민족주의의 논의에 대해서 서술하시오. 중국의 신문화운동 시기에 아나키즘이 전개된 양상에 대해서 서술하시오. 일본에서 상징천황제가 도입된 배경에 대해서 서술하시오.
- 최초 등록일
- 2021.03.04
- 최종 저작일
- 2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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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전개된 민족주의와 탈민족주의의 논의
2. 중국의 신문화운동 시기에 아나키즘이 전개된 양상
3. 일본에서 상징천황제가 도입된 배경
4. 출처 및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전개된 민족주의와 탈민족주의의 논의
전쟁과 그에 따르는 각종 범죄는 언제나 끔찍한 일이지만, 특히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벌어진 나치의 참혹한 학살은, 범국가적인 트라우마를 낳은 비극이었다. 그 상흔이 후세대에게까지 이어져, 세계대전이 끝난지 한참 뒤에 태어난 오늘날의 아이들이 ‘나치’라는 단어에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 ‘학살자’라는 모욕의 의미를 담아 사용할 정도다.
그러나 우리는 ‘나치’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독일에서 왜 그런 집단과 사상이 각광을 받았는지, 그리고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이 그 잔재로부터 벗어나 유럽에 통합되기까지의 일을 이해하려면 독일의 민족주의와 탈민족주의 담론에 대해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산업혁명, 민주혁명, 그리고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세계적으로 많은 ‘근대국가’들이 탄생했다. 그리고 한 나라가 소위 ‘근대화’ 될 때에, 그 과정에서 민족주의가 배태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국가 안의 다양한 사람들은 규합시키는 데 주로 쓰인 것이 ‘민족’이라는 통일된 정체성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시민들에게 애국심과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기에 대단히 효과적이었으나, 동시에 타 문화 및 인종에 대한 멸시와 배타라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근대 이전 여러 지역으로 분열되어 있던 독일이 민족 정체성을 각성시킨 계기는 프랑스의 시민혁명과 그 뒤 이어진 나폴레옹의 정복전쟁이었다. 앞서 근대화된 주변국들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민족의 통일이 필수적이었고, 이는 민족주의 정치 세력이 독일 내에서 부상하는 이유가 되었다. 이후 독일도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적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었으며 고양된 민족의식은 세계 대전에 불씨를 지폈다. 그렇게 1930년대에 정권을 잡은 나치당은 말그대로 극단적인 민족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다. 나치는 위대한 독일 제국의 건설을 위해 ‘순수한 아리아인’이라는 관념에 집착하고 유대인과 집시 등을 열등한 종족으로 간주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일으킨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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