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일기〉 등 각 개인의 일기?문집도 편찬 자료로 이용되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비변사등록〉?〈일성록〉도 자료로 사용되었다. ... 이 때 시정기 · 승정원일기 · 각아문등록 · 가장사초 등이 자료로 이용되었다. 사평(史評)은 가장사초를 근거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 당나라의 귀족문화와 원나라의 세계문화를 종합하고 우리의 토착문화를 가미하여 우리의 독창적 문화를 건설한 국가였다.
이 이외에도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대대로 우리 왕조는 기록을 통해 후세에 공정하게 쓰인 역사와 그에 따른 교훈을 남기는 것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 분명 그러한 요인 이외에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등 삼사라고 불리는 기관을 둠으로써 왕권을 견제하며 상소 제도나 신문고 등 수많은 백성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끔 하는 여러 제도들
승정원일기: 「승정원」은 조선 정종대에 창설된 기관으로서 국가의 모든 기밀을 취급하던 국왕의 비서실이라 할 수 있는 곳으로, 1623년(인조1) 3월부터 1894년(고종31) 6월까지 ... 「승정원일기」는 조선왕조 최대의 기밀 기록인 동시에 사료적 가치에 있어서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비변사등록과 같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자랑할 만한 자료이며, 또한 세계기록유산으로 ... 272년간 승정원에서 처리한 국정 기록과 승선원, 궁내부, 비서감, 규장각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1910년(융희 4)까지 총 3,243책의 기록이 남아 있다.
의궤도 좋은 자료 이지만,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된 《조선 왕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을 살펴보아도 역사의 기록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 또한 조선시대 선비들의 일기문화를 살펴보면 그 성실함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 특히 유만주의 《흠영》은 21세부터 33세까지 13년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쓴 144권의 일기다.
이후 영조대에 화재로 또 한번 가 불에 타자, 일기청을 설치하고 개수작업에 들어갔다. ... 그러나 임진외란과, 이괄의 난으로 초기 가 타버리는 등 수난이 계속 되었다. ... 는 연대기 형식으로 국왕의 동정, 정치의 주요 현안이 되는 자료나 중앙이나 지방에서 올린 상소문의 원문을 거의 그대로 수록하여 무엇보다 1차 사료로서의 가치가 돋보인다.
예를 들면, 조선왕조실록, 직지심체요절, 훈민정음해례본, 승정원일기, 조선왕실의궤 등이 대표적인 기록물이다. ... 그러므로 영구보존 할 가치가 있다. 1-2-2-1 일기 노트 중학교 시절 적은 일기이다. ... 군대 시절에 이병 때부터 적은 일기이므로 군대 시절 전체를 아우르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에 남아 있는 금속 활자로 인쇄된 책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2001년 9월 4일 《승정원일기》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 이로써 우리나라는 1997년의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 2001년의 직지심체요절과 승정원일기, 그리고 2007년의 해인사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 조선왕조의궤와 함께 총 7건의 세계기록유산도 ... 원나라에서 받아온 불조직지심체요절의 내용을 대폭 늘려 상·하 2권으로 엮은 것이다.
승정원 일기승정원은 조선 정종 때 창설된 기관으로 국가의 모든 기밀을 취급하던 국왕의 비서실이라 할 수 있는 곳 이다 . ... 일성록 일성록은 1760 년 ( 영조 36) 에서 1910 년 ( 융희 4) 까지 151 년 동안의 국정 운영 내용을 매일매일 일기체로 정리한 국왕의 일기라 말할수 있다 . ... 한국의 기록 유 산 중국의 문화유산 자금성 흔히 자금성 ( 紫禁城 ) 으로 더 잘 알려진 고궁박물원은 명 · 청대 500 여 년에 걸쳐 24 명의 황제가 살았던 중국 최대의 궁전이다
고종 때 중건된 경회루의 공사 과정에 대한 참고 자료로는 《경복궁영건일기》, 《일성록》,《승정원일기》등이 알려져 있다. ... 《경복궁영건일기》에 의하면 이미 고종 2물(향교, 사당, 제사공간) 등에 채택되었다. 3-2-4. ... 고려시대의 재상 이규보의 라는 글에 내반원(왕이 쓸 붓, 벼루, 먹의 공급, 대궐열쇠관리, 대궐 뜰의 설비관리), 수정전(집현전이 있던 곳, 궁궐 일반사무 관리)등이 있다.
금호문 창덕궁 돈화문의 서쪽에 있던 문으로, 승정원의 서행랑문이기도 했다. ... 정조 27권, 13년(1789 기유 / 청 건륭(乾隆) 54년) 1월 19일(병자) 승정원이 병조 당상관의 당직 교체 일로 인하여 금호문(金虎門) 출입 표신을 내줄 것을 청하니, 전교하기를 ... 체통이 막중한 대신과 대신(臺臣)의 체통이 근래 궁인(宮人)들이 출입하는 문이라고 하는 요금(曜金)·통화(通化) 두 문도 구애되지 않고 출입하였던 사실을 《당후일기(堂后日記)》를 보면
임금에게 허균이 이런 중대한 일은 비밀리에 계를 올려 알려야 하는데 남들이 볼 수 있는 편지로 보내왔다고 조사하라는 청을 하고 있다. 10월에는 또 승정원에서 의견을 밝혀, 중국에 ... 조선왕조를 폄하하고 임진왜란을 잘못 설명하며 광해군을 비방하는 등의 내용으로서 정통 문제에 신경이 항상 곤두 서 있던 광해에게 여간 민감한 일이 아니었다. 10월 8일의 실록에는 승정원에서 ... 그가 반역자라는 관점은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의 사관들의 묘사가 대표적이다.
즉 한국 고대 고분속의 기록에서부터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등 국가의 역사기록을 철저히 남겼고,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등 공공기관의 기록 또한 마치 ... 뿐만 아니라 미암일기, 난중일기 등 전란의 와중에서도 개인에 의하여 기술된 기록물가지도 참으로 상세하다. ... 마지막으로 3단계가 국가기록원의 역할이다.
있어 호피 또한 표범가죽이라는 명칭으로써 명에 바쳐졌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자료의 증거로 충분하다 하겠으며, 뿐만 아니라 조선후기 이후의 승정원일기의 자료에서도, ----------- ... 【대간(臺諫)·시강원(侍講院)·예문관(藝文館)의 전수가 다 참여하였는데, 시강원은 세자가 《소학(小學)》을 마쳤으므로 참여한 것이다.】 ... 광해군일기의 몇몇 사료로 예를 들자면, 사료10) 호랑이와 표범을 혼용하여 범 또는 虎라고 불리는 습관이 주를 이루었으며 이에 따라 표피를 호피로, 때로는 호피를 표피로 부르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