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저서〈목민심서〉, 〈경세유표〉,〈흠흠신서〉가 정약용 저술은 유배가 끝나고도 계속되었다. 그는 75세 타계할 때까지 저술을 이어갔다. ...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을 밝혀 실용성을 높인 목민심서(牧民心書), 경험과 분석으로 저술한 형법, 흠흠신서(欽欽新書), 행정 긴 개편과 관제·토지제도·부세 제도
·자하도인(紫霞道人)·철마산인(鐵馬山人)·문암일인(門巖逸人),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이며, 시호는 문도(『흠흠신서』·『목민심서』의 일표이서를 통해 제시되고 있다. ... 이는 1817년(순조 17)에 『경세유표(經世遺表)』, 1818년(순조 18)에 『목민심서』, 1819년(순조 19)에 『흠흠신서(欽欽新書)』를 계속 펴낸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산 정약용의 흠흠신서를 들 수 있다. 정약용은 교화도 중요하지만 법은 아주 정확하게 시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 인간의 윤리적 측면, 도덕적 성품을 잘 교화할 것을 강조했다. 1)소론 정원용-정조 입장 지지 2)노론 홍원섭-정조 입장지지 3)남인 정약용(흠흠신서)- 도덕적 교화는 인정하지만 그것이
다산 동상 유적지 왼편에 위치한 기념관에는 목민심서 , 흠흠신서 , 경세유표 , 마과회통 사본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 문화관에서는 정약용의 학문적 성과와 생애를 만나볼 수 있고 유명한 저술 중 하나인 목민심서부터 흠흠신서 등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볼 수 있습니다 . 2. 다산 기념관 3.
(二書)는 천하와 국가를 위함이라 주장하며 여기서의 일표와 이서가 바로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라고 한다. ... 그 중 3대 저서는 바로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로, 정약용 자신이 회갑을 맞아 직접 저술한 제 일대기를 담고 있는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에서 일표(一表)와 이서
다산의 저서인 목민심서와 흠흠신서는 조선 후기 실학의 완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저서가 완성된 것만으로 오늘날에도 학문적인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 다산이 다산초당에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심서 등 600여 권의 저서를 남긴 것에는 18제자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