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코프는 이 첩보가 공개문서로 돼 있어 의심스럽다고 평가했다. 6월 21일, 스티코프는 스탈린에게 김일성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 이 계획은 1개월 기간으로 3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6월 20일, 스티코프는 모스크바에 북한군의 수륙양용작전용 선박공급과 수련군 수병을 함께 제공할 수 있는지 여부를 문의했다. ... 즉, 6월 12일부터 북한군은 38선 이북 10~15km 지역으로 재배치되기 시작했고 6월 16일에 소련대사 스티코프는 북한군 총참모부가 작성한 침공작전계획을 모스크바에 보고했다.
침공작전 계획을 모스크바에 보고했다. 6월 21일, 스티코프는 스탈린에게 김일성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 조선인민군은 전쟁 준비를 마무리해 갔으며 6월 12일부터 인민군은 38선 이북 10~15km 지역으로 재배치되기 시작했고 6월 16일에는 소련대사 스티코프는 북한군 총참모부가 작성한
「스티코프 비망록」, 『중앙일보』 1995.5.9.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단과 중앙상무위원회 선거」, 『함람로동신문』1949.6.30. 전명혁,(2004). ... 좌익 세력들은 우익 청년단과 경찰의 테러공격에 시달렸고, 남로당은 사실상 불법화되었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 이후 1948년 7월 박헌영은 김일성, 스티코프와 회견이후 소련
자크하로프에게 보낸 전문 북한군이 남침했음을 보여주는 문서는 1950년 6월 26일 북한주재 소련대사 스티코프가 소련의 일반참모 1차장인 자크하로프에게 보낸 1950년 6월 26일 ... 명하여 전투명령 제 1호를 전방 사단장에게 하달하여 1950년 6월 23일 12:00시 까지 그들이 국군을 무찌를 수 있는 만반의 태세를 갖출 것을 지시했다. 5) 북한주재 소련대사 스티코프가
북한 주재 소련대사 스티코프(Shtykov)는 6월 26일 소련군 부총참모장인 자하로프(Zakharov)에게 보낸 비밀보고에서 개전 상황을 이렇게 썼다. ... 이와 같은 김일성의 생각에 소련 군사고문단도 동의, 남침공격 계획은 6월 16일 당시 북한 주재 소련대사 스티코프를 통해 스탈린에게 보고되었으며, 스탈린 역시 이 계획에 동의하였다.
소련군 총정치국장 I.V.쉬키도 스티코프와 동일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 ... 여러 경로를 통해 남한 정세에 관한 정보를 접한 스티코프는 확신에 찬 판단을 가지고 상부에 박헌영 지지를 건의했다. ... 그런데 스티코프가 내린 정치적 판단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 소재지를 서울에 남겨 두자는 것이었다.
이처럼 스티코프 소련대사조차도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남한 좌익들과 합세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 스티코프 대사는 스탈린에게 정보보고서를 올렸다 "남한 내에 남조선로동당(남로당)은 1948년 기준으로 90만 명의 당원이 24만 명으로 감소됐으나 좌익단체들은 여전히 활동을 수행할 ... “라고 말했다. 1949년 8월 12일 김일성과 박헌영이 북한 주재 스티코프 소련 대사를 설득할 때도 "공격이 개시되면 이승만 정권에 대항하는 대규모 인민봉기가 남한에서 분출될 것이다"라고
스티코프 보고서에서 거론된 빨치산은 수백만 명의 독자들을 감동시켰다는「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주인공 들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토르쿠노프 지음, 구종서 옮김, 2003년 서울, 에디터 사)에 의하면, 북한주재 소련대사 스티코프는 1949년 9월 14일 스탈린에 타전한 한반도 정세보고에서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 스티코프는 이 회신에서 어느 지역에선 빨치산이 현지 주민으로부터 군경에 관한 정보를 얻고 의류나 식량 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교전경험과 무기탄약의 부족으로 빨치산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는
김일성이 50년 2월 4일 스티코프 평양주재 소련대사를 통해 스탈린에게 보낸 긴급 암호전문에서도 북한의 남침증거를 찾을 수 있다. ... 귀하의 성공을 기원함” 이 내용은 스탈린이 직접 친필로 작성한 것으로 평양주재 대사 스티코프를 통해 김일성에게 보내 중국군의 참전결정을 알린 것이다. ... 그리고 6.25가 개전되기 직전 구 소련의 주북한 대사 스티코프가 50년 5월 30일자로 스탈린에게 보낸 비밀전문에서는 “다음 사항을 김일성에게 전해주기 바람.
이에 고무된 김일성은 1949년 8월 12일 일시 귀국하는 스티코프 대사에게 대남 선제공격을 준비해야겠다고 제안했다. ... 그는 선제공격 계획에 관한 승인을 얻기 위해 1950년 1월 17일 스티코프 소련 대사에게 스탈린과의 회담을 주선해달라고 요청했다. ... 소련은 이미 제2차 미·소 공동위원회가 개최되었을 때부터 스티코프 소련대표를 통하여 제기해온 미·소 양군의 한반도 철수 문제를 서두르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