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 및 낙중 퇴계학파와 연경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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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등록일
- 2015.03.25
- 최종 저작일
- 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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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ㆍ발행기관 : 영남퇴계학연구원
ㆍ수록지정보 : 퇴계학논집 / 11권
ㆍ저자명 : 홍원식
목차
1. 여는 글
2. 연경서원 설립
3. 이황의 서원설립운동과 연경서원
4. 낙중 퇴계학파와 연경서원
5. 맺는 글
한국어 초록
硏經書院은 退溪 李滉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 아래 그의 대구지역
제자인 梅巖 李叔樑과 溪東 全慶昌이 중심이 되어 1565년에 세운 대구
지역 최초의 서원이다. 이후 鄭逑의 寒岡學派가 대구지역으로 진출함으
로써 연경서원은 조선 중기 이황에서 정구로 이어지는 洛中學의 중심지
가 되었으며, 1601년 영남의 首府가 된 대구지역의 학술과 문화를 선도
하였다. 곧 연경서원의 유현들은 낙동강과 금호강 가 여기저기에 齋舍와
樓亭을 지어 자신의 강학처를 마련하는 한편 강을 오르내리면서 서로 교
유하여 樓亭文化와 船遊文學을 꽃피웠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八公會盟’을 하고서 국난 극복에 나서기도 하였다.
영어 초록
Yeonkyeong Academy is established by Yi Hwang’s disciples,
Maeam Yi Sukryang and Gyedong Jeon Gyeongchang under the
active interest and support of Yi Hwang in 1565’s, and is the
first in Daegu. Since then, as Jeong Gu’s Hangang school
advances to Daegu, Yeonkyeong Academy became the center
of Nakjunghak, and led learning and culture of Daegu which
became capital of Yeongnam in 1601’s. Sonbi of Yeonkyeong
Academy are building Jaesa(齋舍, a dormitory of Sonbi) and the
Arbor(樓亭) around Nakdong river and Geumho river, and set
up their lecture room, going up and down the river, flourished
the Arbor culture and the Boating literature by making friends.
When Imjinwaeran(壬辰倭亂) happened, they made Palgong
League(八空會盟) and then tried to overcome the national
crises.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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