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동서양고전의이해 신채호 4장 조선상고사[과제명]
교재 『동서양 고전의 이해』 1~15장 각각 장의 마지막에는 ‘3. 원문 읽기’가 있다. 이 중 인상 깊게 읽은 고전 원문의 장과 제목을 밝히고, 자신이 ‘이 고전의 원문을 인상 깊게 읽은 이유와 감상’을 서술하시오.
목차
1, 저자 및 작품 소개2, 이 고전의 원문을 인상 깊게 읽은 이유와 감상
본문내용
1, 저자 및 작품 소개신채호(申采浩, 1880년 12월 8일 ~ 1936년 2월 21일)는 일제 강점기의 독립 운동가이자 언론인, 민족주의 사학자이다. 단재가 저술한 <조선상고사>는 기존의 사대주의적이고 유교적인 사관에서 벗어나 우리민족의 자주적 관점으로 서술된 주체적인 사서이다.
단재(丹齋) 신채호는 충청도 대덕군 정생면 익동 도라산리에서 가난한 농부였던 아버지 신광식과 어머니 밀양 박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고령 신씨로 신숙주의 18대 손이었지만 가문은 일찍이 몰락하고 조부 신성우(申星雨)는 1867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사간원 정언, 사헌부장령 벼슬을 역임했지만 1899년 관직을 버리고 고향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귀래리 고두미 마을로 옮겨와 일찍 아버지를 여읜 단재는 이때부터 할아버지의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 19세에 성균관에 추천으로 입학하여 김연성, 조소앙, 류인식, 변영만 등과 수학하면서 신사조와 신학문에 대한 관심으로 밤새 토론과 학습을 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1904년에는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성토하는 성토문이 성균관 유생들에 의해 작성되자 이에 연명하기도 했다.
신채호가 태어난 1976년은 일본의 간계로 강화도조약이 체결되고 그 직후 조일수호조약이 체결되면서 조선은 서서히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하는 단계로 진입한 때였다. 이 시기 신채호를 비롯한 뜻있는 학우들은 민족의 자주성과 국권을 지키기 위해 불평등한 일본과의 조약 파기를 주장하고 새로운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기울어가는 국운을 바로 세우기 위해 고민했다. 성균관에 있으면서도 수시로 독립협회에 나가 적극적으로 독립협회 활동에 참여했고 만민공동회의 간부로도 활동하며 잠깐 옥살이를 한 적도 있었다.
26세인 1900년에 성균관 박사로 임용되었지만 바로 사직하는데 나라 안팎의 엄중한 상황과 전형적인 학자로 안주하지 않으려는 단재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으로 추후 단재의 행보에 상당한 시사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