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시조묘(始祖廟) 의례가 지닌 또 다른 기능을 이해할 수 있다. 제 2대 남해왕(南解王)은성하지 못하였다. ... 사로육촌(斯盧六村)의 계급구성 사로 6촌이 촌락(村落)사회단계에 있던 시기의 계급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석묘(支石墓)가 주목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시조묘(始祖廟)를 세워 제사를 올렸다. 예컨대 고구려에서는 시조 고등신(高等神)을 시조묘에 모시고 제사를 올렸다.신당을 재건하였다. ... 토지묘(土地墓) 등이다. 봉건제 지배자는 천을 지상최고의 것으로 인식하고 일체를 지배하는 것은 상제로 인간 제왕도 천명을 이어받아 백성을 지배한다는 것을 구실로 하였다.
남해왕 3년(AD6) 봄에는 시조묘(始祖墓)를 세웠는데 그 제의식의 주제자는 왕의 여동생인 아로(阿老)였다고 기록하고 있어서 왕의 집안이 무가(巫家)였음을 알 수 있다. 4. ... 이상과 같이 무당(巫堂)은 오늘날 기껏 잡신(雜神)에나 들려 푸닥거리나 하는 그런 류의 부류가 아니라 큰 의미를 가진 널리 인간에게서 신성시되 규모에 걸친 신맞이 굿이다. ... 무당과 단군과의 관계 무당의 시조(始祖)가 단군(檀君)이라고 하면 이게 무슨 소리냐고 다소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실은 무당(巫堂)이라는 본연의 소임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