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고려는 불개토풍의 원칙을 적극 활용하여 역사와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고려에 필요한 중국의 제도, 유교 문화를 수용하였다. Ⅴ. ... 몽골 바람에 맞선 불개토풍 Ⅴ. 국가의 개조와 유교적 문명사회의 지향 Ⅵ. 맺음말 Ⅰ. 머리말 고려시대는 한국의 전통시대 중 가장 ‘역동적인’시대로 평가된다. ... 몽골 바람에 맞선 불개토풍 원은 중원의 완전정복을 위해서 유교의 국교화 등의 한화정책을 추진하였으나, 이에 더불어 몽골의 고유 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것 또한 병행하였다.
세조구제에는 고려의 의관과 복식을 고치지 않는다는 불개토풍의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고, 양국이 강화를 진행하던 초기에 원은 고려 원종의 불개토풍 요구를 수용했다. ... 쿠빌라이가 승인한 불개토풍과 그 속에 담긴 국가 및 본국의 풍속유지라는 큰 틀은 바뀌지 않았다. ... 따라서 원과의 관계에서 불개토풍의 원칙은 국가의 자주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항 논리로 사용된 것이다. 3.
‘불개토풍’이 위의 사료에서 나온 것과 같이 풍속의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정치체제의 유지까지 포괄했다는 것은 李穀의 표현에서도 나타난다. ... 때 고려에서는 세조가 이미 祖風은 시비를 묻지 않고 옛 것을 그대로 두도록 허락했다는 점을 들어 강력히 반대함으로써 활리길사의 의도를 좌절했을 뿐만 아니라 입성책동에 대해서도 ‘불개토풍 ... 그의 견해는 크게 3단계로 나뉘는데, 쿠빌라이와 원종이 강화를 체결하고 ‘불개토풍’을 인정받고 6事를 강요받았을 단계에는 쿠빌라이의 원 성격이 대몽골 울루스의 성격이었으나, 이후 제국이
이에 쿠빌라이가 불개토풍 이라는 약속을 함으로서 고려는 당시 원의 영토 확장 속에서도 나라를(왕조를) 지킬 수 있었다. ... 불개토풍(不改土風) : 고려 원종이 원의 쿠빌라이(세조)로부터 받아낸 약속으로서 당시 고려의 존속과 함께 고려의 제도와 풍속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세조구제’라고도 한다.
삼별초의 진압으로 무인정권이 거의 완전히 축출되다시피 한 이후 원 간섭기에 이르러서는 ‘불개토풍’)에 의존한 부단한 외교활동으로 入質)을 제외한 다섯 가지는 허용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 이전에도 중국은 한반도에게 압도적인 선진국이었지만 불개토풍이라는 정책에도 불구하고 일반 민들 사이에서는 몽고풍이 유째는 분석된 음절의 하위 요소에 문자소(grapheme)를 어떻게
아직 태자였던 원종(元宗)은 1259년 강화를 위해 쿠빌라이를 만나는데 이때 쿠빌라이는 고려의 제도와 풍속을 존중하겠다는 대고려정책, 이른바 불개토풍(不改土風) 의 원칙을 밝힌다. ... 이 불개토풍의 원칙은 이후 원이 고려에 내정간섭과 개입을 할 때마다 막아낼 수 있었던 유효한 지침으로 작용하는데, 고려인의 끈질긴 대몽항쟁이 이러한 관계를 맺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실리와 공존, 줄타기 외교전술 I. 고려왕조기 대외정세 개관 1. 대분열의 시대에 건국되다. 1 고려왕조가 건국될 무렵인 10세기 초 중국 唐나라의 멸망은 동아시아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2 동아시아 세계의 중심 국가인 당나라가 무너지면서 당시 세계는 대분열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