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시전 계열의 상업에 종사하는 자들 중에는 ‘여항소시’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시전 행랑에 가까이에서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중 ‘여항소시’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전업적인 ... 다만 자연발생적 유통기구인 ‘여항소시’만은 도성민들의 편의를 위해 거주지 어디든지 개설할 수 있었다.
여항소시로 표현되는 영세상인들 상당수는 농민들이었다고 추측된다. 고객 ⊙고객의 대부분은 개경에 거주하는 주민들이었다. ... 개경의 시장 위치 남대문 (십자가) 오정문 광화문 숭인문 여항소시 개경의 시장거리는 시전이 가장 밀접해 있던 남대가와 자전• 마전의 예에서 보듯이 전체적 으로는 십자가를 중심으로 일정거리
어떤 날 용인에 있는 산사에서 산아래 백리안의 여항에서 하는 일을 친히 보듯이 알아 맞추었다고 한다. 「정북창비결」「정북창동기」등의 참서가 있다. 5. ... 의령에서 나서 소시에 신승을 만나 비결을 받았다 한다. 천문 , 지리, 풍수, 복 , 상법 등 각반의 법술에 통달하여 이인의 칭호를 들어 고금에 이름이 있다.
더욱이 명리에 얽매인 사대부보다 여항인들에거서 공시지사 가 다출된다고 하여 위항문학의 의의와 가치, 그리고 예술성의 우위를 역설했다. ... 일찍이 그는 삼당의 최경창과 이달을 평하여 소시에만 전념하여 근원학문이 부족해 끝내 고인들처럼 크게 떨치지 못했다 고 애석해 했는가 하면 예로부터 배우놀이도 그 예술적 미만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