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 사이 명칭을 혼용해서 쓰고 있었으며 180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과거 울릉도의 이름으로 사용한 다케시마(竹島)를 독도의 명칭으로 확정하고 울릉도를 마쓰시마 ... 울릉도와 그 부속도서인 독도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어 독도의 존재를 인지하기 시작하였으며 조선과 쓰시마 번의 치열한 외교적 공방전 끝에 일본 측은 당시 다케시마(울릉도)와 그 부속도서인 마쓰시마
조사 후 제출된 보고서 ' 조선국 교제시말 내탐서(1870년)에는 다케시마(竹島 : 울릉도)와 마쓰시마(松島 : 독도)가 조선에 부속이 된 경위 ' 라는 제목으로 울릉도와 독도에 ... 이 보고서는 일본이 마쓰시마, 즉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보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1877년 일본 태정관의 기록 내무성은 약 5개월에 걸쳐 당시의 조선과 일본 양국 간의 외교교섭 관련
. - 다케시마 ( 울릉도 ) 와 마쓰시마 ( 독도 ) 및 그 외 양국 ( 이나바와 호키 ) 에 속하는 섬은 없습니다 . ... ) 도해면허’를 취소하고 도해를 금지했어요 . - 6 - ▶ 「 원록구병자년조선주착안일권지각서 (1696) 」 此道中 竹嶋松嶋有之 이 도 ( 道 ) 내에 다케시마 ( 울릉도 ), 마쓰시마 ... ( 막부 / 쇼군의 ) 지시가 나왔으니 그 뜻을 헤아릴 것 . ▶ 개정일본여지노정전도 (1778) 竹島 一云磯竹島 松島 見高麗猶雲州望隱州 다케시마 ( 울릉도 ) 일명 이소다케시마 마쓰시마
일본은 옛날부터 다케시마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다케시마는 일본에서 일찍이 ‘마쓰시마’로, 반대로 울릉도가 ‘다케시마’나 ‘이소다케시마’로 불렸음. ... 다케시마와 울릉도의 명칭에 대해서는 유럽의 탐험가등에 의한 울릉도 측위의 잘못으로 일시적인 혼란이 있었으나, 일본이 ‘다케시마’와 ‘마쓰시마’의 존재를 옛날부터 인지하고 있었던 것은
그 후는 약 200년 동안 마쓰시마에서의 일본인 어업은 기록에 없으며 마쓰시마에 상륙했다는 기록도 없다. ... 이렇게 뒤늦게 마쓰시마 어업이 시작된 것은 많은 장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마쓰시마에는 80석짜리 정도의 작은 배로 갈 필요가 있었다. ... 일본 정부는 가와카미 겐조(川上健三)의 연구를 바탕으로 에도막부(江戶幕府)가 다케시마(竹島)=울릉도 도해면허처럼 마쓰시마(松島)=독도 도해면허도 발행하고 마쓰시마 를 경영했기 때문에
이 금지령에 마쓰시마(松島, 독도)의 이름은 없었지만 금지령을 내린 경위를 생각하면 “다케시마 근처의 마쓰시마”도 도해가 금지된 것이다. ... · 마쓰시마는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 이 인식에 근거해 내무성은 다케시마 · 마쓰시마를 일관해 일본영토 밖으로 하는 관찬지도 를 작성했다.
기함 마쓰시마가 정원함(定遠艦)에 대해 발포를 시작했다. 이에 대항해 북양함대는 제1유격대를 향해 사격했다. ... 고조 소장이 이끄는 4척의 전함, 즉 기함 요시노, 다카치호, 아키쓰시마, 나니와 함의 순으로 앞에 섰고, 이어 연합함대 사령장관인 이토 스케유키가 지휘하는 6척의 전함인 기함 마쓰시마
우산은 즉 왜가 말하는 마쓰시마다.”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일본의 학자들은 이 문장이 날조된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 안용복은 다케시마(울릉도)와 마쓰시마(독도)가 강원도에 속한다고 진술하였고, 오키 섬 관리와 심문한 관리는 반박이나 항의를 한 흔적이 없었다고 한다. 1696년에 안용복 일행이 돗토리번에
그러는 중에 ‘마쓰시마’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한 일본인이 마쓰시마를 개척할 수 있도록 정부에 요청하였습니다. ... 우리나라 문헌에는 1906년 울도 군수 심흥택의 보고서에서 처음 보인다. (2) 일본 일본 국내에서는 예로부터 내려온 ‘다케시마’, ‘마쓰시마’에 관한 지식과 그 후 서구에서 지어진 ... 정부의 그 섬의 명칭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1880년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개척청원 과정에서 '마쓰시마‘라 불리던 섬이 울릉도임을 확인하였습니다. -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