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체호프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열 명의 주요 인물 및 내면에 자신만의 갈매기를 품고 살아가는 이들 간의 복잡한 관계를 통해 ‘어긋나는 사랑의 다양한 양상’을 포착한다. 한편 ‘새로운 형식과 예술을 추구하는 세대’와 ‘기존의 형식을 고수하며 기득권을 누리고자 하는 세대’ 사이의 갈등과 충돌을 표현하고 있다.
갈매기, 시간이 안 맞는 관계로 아빠와 함께 토요일에 따로 관람했다. 처음에는 내가 언뜻 나비로 들어서 도대체 어찌 갈매기를 나비로 들은 건지 지금도 이해가 안가지만 왠지 호랑나비, 역시 우리나라 정서에 호랑나비는 왠지 코믹한, 그런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동극장 홈페이지를 찾아가보니 원작은 꽤나 지루한듯 싶었다. 하지만 잘 각색해서 희곡적 요소를 가미했다니 그래도 원작의 지루함을 깰수 있을까 하는 마음을 품고 정동극장에 도착했다. 아빠와는 극장에서 만나기로 한 것인지라 어두운 덕수궁 돌담길을 혼자 걸으니 왠지 울쩍해졌다. 토담이라는 정동극장에 딸린 작은 찻집에서 국화차를 마시고 있는 아빠를 발견. 함께 갈매기를 보러 들어갔다.
처음에는 왠 남자들이 많이 나와서 이렇게 윗옷은 벗고 뭘 두들기는지. 왠 뽀뽀는 이리도 많이 하는지. 꼬스챠 훤하니 잘생겼군. 집중하며 보기 시작했다. 방학 때 속해있는 동아리도 연극을 해서 학교와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했던 터라 연극에 대한 눈이 좀 트인 것인지 인물하나하나를 분석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원래 아무 생각 없이 보는 것이 더 좋으련만 역시 사람은 미련한 동물이다. 열정적인 배우의 모습을 보며 옷 하나하나, 표정, 실수까지 모두 짚어내려는 어쩌다 이런 면을 가지게 되었지?
먼저 작품의 감상을 위해 안톤체홉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그의 작품세계를 보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한결 수월하게 하는 필요조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사실주의보다는 낭만주의 작품 쪽에 더 흥미를 느꼈던 터라 셰익스피어의 요정이나 왕의 등장에 호기심이 간 것이 사실이였다. 러시아 인상주의 문학의 대표인 안톤체홉의 작품에서 보다 심층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그의 가치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19세기 말의 러시아에 체홉은 처음에 같은 시대의 사람들에 의해서 과소평가 되었다. 그들은 체홉극의 특이성에 주목하였으나 그 특이성이 살아있는 극적인 인물들을 계속적으로 만들어낼 만한 능력을 체홉이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의 비평가들은 지루함, 무대 기교의 결핍, 불충분한 행동, 플롯의 미약함을 못마땅해 하였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그는 리포트를 쓴다`, ‘그는 무대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을 저버리고 있다`, `그는 자신의 견해를 말하지도 않고 아무 생각도 없이 우연히 사진과 같은 그림들을 제시한다.` 라고 체홉을 비난했다. 그 후 스타니 슬라브스키와 단첸코는 처음으로 체홉극에서 회부의 산문체적인 에피소드들과 개개 인물들의 대사 속에 숨겨진 지속적이고 깊이 있는 서정시의 흐름을 파악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전력을 기울여서 이 서정적인 흐름을 연출하려고 했다. 그 후로 체홉의 극은 특수한 `분위기의 극`으로 규정되었고 비평가들은 드라마 작가로서의 체홉의 부적격함에 대해서 거론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 체홉의 극 자체가 인정받기까지의 과정들은 순탄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명언집이라던가 공책 끄트머리에 쓰여 있던 멋진 구절로 흔히 볼 수 있는 이 한 문장을 교육관에 대해 생각해 볼 책에서 다시 한 번 보게 됐다.
어릴 때는 그저 높이 날고 싶은 갈매기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교육학’에 대해 배우는 두꺼운 책들보다 오히려 더 교육관에 대해 생각하게 해줬다.
조나단은 어선 옆에서 먹이를 달라 울부짖다 배부르게 먹으면 그것이 행복이라는 다른 갈매기들과는 다르게 높이 날기 위해 먹이도 포기한 채 어떻게 하면 더 빠른 스피드로 높이 날 수 있는 지에 대해 꾸준히 연습한다.
하지만, 갈매기 세계에서 그것은 추방당해 마땅한 행동이므로 가족들과 헤어지게 되지만, 자신과 뜻이 같은 갈매기들을 만나고 그 무리 속에서 자신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는 갈매기 ‘추앙’을 만나면서 더 많은 걸 배우고 ‘나를 위해서’의 개념을 넘어 ‘나처럼, 내가 그랬던 것처럼’ 높이 날고 싶은 다른 갈매기들에게 그가 배우고 터득한 것을 전하려는 마음을 가진다.
이렇게 새로운 무리에서 나와 자신과 같은 갈매기를 찾게 되고 그들에게 배움을 주며 또 다른 자유를 향해 날아간다.
오직, 하루하루 배를 채우며 사는 것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갈매기 떼들은 ‘난다’는 것을 ‘높이’난다가 아니라 ‘먹기 위해’ 라고 말한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배우는 게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라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접하기 어려울 것만 같은 아름다운 세상. 하지만 그 아름다운 세상은 그리 멀리 있지 않는 것 같다. 현실 속에서 느끼기 힘들 것 같다는 이 아름다움을 이 책을 통해 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자기 자신을 알고 무한한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으로도 나에게 있어 커다란 아름다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 바로 이 이름이 이 책을 이끌어 나갈 주인공이다. 조나단은 다른 갈매기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갈매기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먹이를 구하는 것이었지만, 조나단은 나는 것을 사랑했다. 그래서 항상 무리들과 떨어져 비행연습을 하곤 했다.
굶주리면서까지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였다. 그러나 조나단은 항상 행복한 마음으로 연습을 하였다. 어쩌면 그는 나는 연습을 통하여 자신의 굳은 의지와 도전 그리고 인내심을 시험해 보았을지 모르겠다.
조나단은 다치면서까지 비행연습을 하였지만 하찮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 고기잡이 배와 해변사이를 단조롭고도 변함없이 오고가는 행위가 아닌 진정한 삶의 목적은 다른 것에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의 생활을 삶으로써의 풍부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 무한한 한계에 도전할 수 있는 날으는 것에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굽히지 않고 가면 갈수록 더욱 날기 연습에 몰두했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날기”. 날기 집착의 이유는 세상에는 더 나은 것이 있을 것이라는 호기심, 그 호기심을 충족하여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과 방법이라 하겠다. 바로 조나단은 그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무리의 갈매기들은 먹기 위해 태어난 우리들에게서 조나단의 행동은 무책임하다며 그를 추방시키려 하였다. 하지만 조나단은 그들에게 산다는 것의 의미와 생활에 대해서 더 숭고한 목적을 찾고 갈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외쳤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이번 교육학 레포트를 통해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예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 가졌던 느낌과는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감명 깊게 읽었었던 책이었기 때문에 더 재밌게 느껴지기도 했겠지만 아무 생각 없이 읽었던 중학교 시절과 지금 대학생이 되어 예비교사의 길을 걷고있는 나에게 이 책은 분명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주인공 갈매기 조나단은 다른 갈매기들과는 달리 단지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 나는 것을 원치 않고 나는 것 그 자체를 사랑하는 갈매기이다. 날 수 있는 자유를 표현하여 자유로이 나는 것을 원하며, 멋지게 날기를 원하는 조나단은 진정한 자유와 자아실현을 위해 고단한 비상의 꿈을 꾼다. 조나단은 꿈을 이루기 위해 먹이를 구하는 일 조차 포기한 채 혼자서 나는 연습을 한다. 하지만 오랜 관습에 저항하는 것으로 여겨져 다른 갈매기들로부터 따돌림당하기 되고 결국은 그 갈매기 무리로부터 추방당하게 된다. 추방당한 곳에서도 동료들의 배척과 자신의 한계에도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는 자기수련을 통해 완전한 비행 기술을 터득한 조나단은 마침내 멋지게 날 수 있는 자유를 느끼게 되어 초현실적인 공간으로까지 날아올라 꿈을 실현하게 된다. 이렇게 무한한 노력을 통해 꿈을 실현한 조나단은 자기만족에만 그치지 않고 동료 갈매기들에게도 자신이 터득한 자유를 전수하기를 원해 그들을 이끌게 된다.
조나단 리빙스턴! 그는 여느 갈매기들과는 행동과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보통갈매기들은 생존 자체가 삶의 목적이였다. 바다는 그들의 생존의 터전이다. 그렇지만 조나단 에게는 먹는 것보다 멋지게 나는 것이 문제였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은 먹고 사는 것이 최대의 과제이고 이 그이상의 세계는 거부한다. 뿐만 아니라 다르게 생각하는 갈매기들은 아예 공동체에서 추방시켜 버린다. 여기서 나는 조나단 이라는 갈매기를 각자 자신의 꿈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가지고 배움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라고 생각하겠다. 우리의 생존의 터전인 이 지구에서 우리는 대부분의 갈매기들과 비슷하게 놀고, 먹고, 잠자는데 만족하지 못하고 각자 자아실현을 위해 교육을 받고 교육을 하는 길을 택했다. 교육에 대해 등한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바다를 먹는 것만 찾아 헤매는 생존의 터전처럼 생각하는 갈매기들 떼와 다를 것이 없다. 갈매기떼와 같은 생각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교육이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데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앞으로 교육자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우리들은 깨어있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후배중에 한명도 대부분의 갈매기떼의 생각과 비슷하게 교육보다는 지금당장 멋지게 놀고 비싼 음식 먹고 좋은 옷 입고 삐까뻔쩍한 오토바이 타는 것이 좋아서 교육의 터전인 학교를 그만두고 클럽에서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지금 한참 젊었을 때야 좋겠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었을 때 학교도 그만두고 교육의 길로 가는 것에 마침표를 찍었을 때 얼마나 후회 하겠는가! 이런 뒤늦은 후회하지 않고 여느 갈매기떼처럼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피가 끊어오르고 젊은 기운이 쏫아오를 때 희생을 감수하고 각자의 꿈을 위해 열심히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조나단은 여느 갈매기들과는 다른 인생의 목표를 가지게 했고 다르게 행동하게 된다. 이런 조나단을 갈매기떼는 갈매기 공동체에서 매우 위험스러운 행동으로 간주되었으며 갈매기 집단의 위엄과 전통에 먹칠하는 것으로’ 비추어졌다. 그래서 갈매기떼는 조나단을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쫓아버렸다. 여기서 조나단은 매우 슬픈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글에서 나온 말을 인용하자면 그들이 눈앞에 훤히 보이는 영광스러운 비행술을 믿으려 하지 않는, 마치 눈뜬 소경처럼 눈 앞에 훤히 보이는 그 영광을 애써 외면하려 하는 자신의 동료들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교육에 열심히 전진한다면 인생에서 영광스러운 순간이 오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의 편함과 안이한 생각으로 지금 우리 앞에 다가온 교육의 기회를 애써 외면하려 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러시아어과 전공 교수님중의 한 분은 과거 철 없었을 적에 놀만큼 놀고 방황하시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셨다고 하시면서 그렇게 놀아봤자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며 우리들에게 정신 번쩍 차리고 공부하라고 항상 강조하시고 일깨워주시려 하신다. 더 큰 것을 얻기 위해서 작은 것은 희생할 줄 알아야한다고.... 아마도 교수님께서도 여느 갈매기떼같이 먹고 노는 것 에만 최대 인생목표를 삼았었지만 인생을 겪으시면서 교수님도 깨달으시고, 그 깨달은 것을 우리에게 교육자로서 참된 사랑의 실천을 베푸고 계신 것 같다. 조나단이 다른 갈매기들에게 온전한 비행을 가르쳐서 자유에 이르게 한것과 같이 교수님께서도 우리에게 더 멋지고 더 큰 꿈을 가지고 살라고 일깨워주시고 교육하시는 것 같다.
처음으로 보게되는 연극이라 기대반 걱정 반으로 두근두근 했다.
사실. 뮤지컬도 본 일이 없기 때문에. 기대치가 무척 컸었다.
또한 이 연극은 좋은 휴식이 되어 주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어디 제대로 놀러 나가지도 못하고, 맘이 불편해 이도저도 못했 던 나에게 맘 놓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좋은 핑계 거리가 생긴 셈이다.
정동극장을 찾아가기까지 참 헤맸다. 알고 보니 시청 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는데 괜한 발품만 팔고 돌아다녔다. 한두 번 오는 곳도 아닌데 말이다. 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땐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어쨌든 늦지 않게 찾았으니 다행이었다.
도착해서 팸플릿을 자세히 읽어보았다.
등장인물들이 어디에선가 한번씩 볼 수 있었던 낮이 익은 배우들이었다.
우리는 그 등장인물들이 출연한 TV프로그램들을 나열시키며 들 뜬 마음에 떠들기를 얼마 후, 공연이 시작되었다.
솔직히 이 연극에 대해 미리 알고 간 사실이 거의 없다.
이 희극의 작가가 ‘체홉’이라는 사실도 잘 몰랐으니 말이다. 조금 알고 갈 껄 하는 후회도 있었지만 팸플릿을 보며 ‘아 그래’ 하며 위안을 삼았다.
배우들의 연기에 소름이 돋았다.
‘아……. 연극이란 이런 건가?’ 하고 새삼 느꼈다. 아까도 말했듯, 단지 TV에서만 접했지 이 정도 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관객들 모두 숨죽이며 관람하는 것도, 조그만 소리조차 감히 내지 못하겠는 점도, 배우와 관객이 이렇게 가까운 것인가? 하는 것도 말이다. 새로웠다.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 이 책의 제목을 들었을 때 판타지 소설이거나 동화책이라고 생각했다. 결론은 약간의 판타지를 가미한 어른이 읽는 동화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갈매기 하면 조나단의 이미지가 강력하게 떠오른다. 나의 예상과 다르게 여기서의 갈매기는 생존을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갈매기 였다.
이 소설과 대체적으로 비슷한 이미지로 떠오른 영화는 97년도 제작된 미국영화 <아름다운 비행>이다. 영화 속 에이미는 방황하던 중에 야생 거위 알을 발견하고 부화 시킨다. 소설 속에 소르바스가 켕카의 알을 부화 시키는 것과 같다. 소르바스가 방황하지는 않았지만. 에이미가 거위들을 키워가면서 상처를 치유 하듯이 소르바스도 자신이 어릴 적 가출한 기억을 갈매기를 돌보면서 치유하는 것 같았다.
사람의 행동은 자신의 어릴 적 상처나 경험에 유래하는 경우가 많다. 소르바스가 갈매기를 버리거나 잡아먹지 않고 키우는 것은 어릴 적 엄마의 사랑을 기억하지만 가출로 인해 적게 받았다는 보상심리 일 것이다. 에이미도 엄마를 교통사고로 잃고 10년 만에 처음 보는 아버지와의 재회는 거위라는 다른 돌파구를 필요했을 것이다. 거위를 보살피는 에이미의 행동 역시 보상심리로 볼 수 있다.
거위들은 에이미를 엄마로 알고 갈매기, 아포르뚜나다도 소르바스를 엄마로 안다. 엄마인 에이미와 소르바스는 거위와 갈매기를 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한다. 에이미는 들판을 뛰어다니며 거위 흉내를 내면서 새끼 거위들을 가르친다. 거위들이 비행기를 따라가지 않자 자신의 경비행기를 만들어 거위들과 따뜻한 남쪽으로 비행을 한다. 도중에 혼자 비행하는 위험도 있었지만 에이미는 멋지게 성공해 말 그대로 아름다운 비행을 한다.
소르바스는 에이미처럼 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사벨로또노나 꼴로네오, 세끄레따리오와 백과사전을 읽어가면서 갈매기에게 나는 연습을 시킨다. 아포르뚜나다가 자신들의 힘으로 날게 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안 소르바스와 고양이들은 금기사항을 어겨가면서 아포르뚜나다를 위해 사람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래서 결국 갈매기 아포르뚜나다가 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 갈매기 그 새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책을 읽는 동안 그 궁금증이 떠나지 않았다. 트레플레프가 쏘아 죽인 새 ‘갈매기’, 그리고 사랑스러운 니나가 자신을 부르던 말 ‘갈매기’ 그 안에는 어떠한 의미가 숨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생각이 들었다. 갈매기는 트레플레프와 니나의 젊음과 순수함 그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 젊음과 순수함이 점점 사라져갈 때 즉 트레플레프가 세월이 지나도 자신의 중심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 그리고 젊고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니나가 트리고린과의 사랑으로 그 옛날의 순수함을 잃은 것 바로 꺾여버린 갈매기. 아마 그것이 이 희극에서의 갈매기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다. 희곡은 처음 읽을 때부터 끝날 때까지 ‘어렵다’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대사 하나하나에서 풍기는 어떠한 철한적인 의미와 수많은 고민들 그것들이 날 어렵게 했다. 특히 젊은 트레플라프의 옛것은 버리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창작의 고민, 한 여인에 대한 뜨거운 사랑, 자신의 재능에 대한 고민 이런 것들이 이 희극을 더욱 진지하게 만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희극이 완전히 이해된 것이 아니다. 외국의 희곡을 번역한 것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많은 등장인물들의 생각들과 의견들 때문이었는지 희곡을 다 읽고 난 다음에도 희곡에 대한 감정이나 느낌이 쉽게 정리 되지 않았다. 약간의 고민 끝에 등장인물들을 나누어서 생각해 보았다. 먼저 젊은이들 트레플레프와 니나 그리고 미샤와 메드베첸코를 비교해서 생각해 보았다. 이들 네 젊은이들도 다 같지 않았다. 그 중 트레플레프와 니나는 이상이주의자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고민도 생각도 많은 철학자들 같았다. 그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고 계속 고민하고 끝없이 생각했다. 둘 다 자신들이 되고자 했던 작가와 배우가 되었으나 그 것들은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고 그들 역시 그 역할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 반면에 미샤와 메드베첸코는 현실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 역시 한 때는 이상을 쫒으며 철학을 논하기도 하고, 표현할 수 없는 사랑에 가슴아파하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살아가기 위해 이상과 꿈을 사랑을 버리고 현실에 순응해 버렸다. 이러한 네 명의 젊은이들의 삶의 방식을 보면서 그 어느 쪽도 행복하다고 혹은 어느 쪽이 더 나은 삶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나눈 인물들이 기성세대들이다. 아르카지나와 트리고린 그리고 샤므라에프와 그의 아내 그리고 도른이다. 이들 중 아르카지나와 트리고린은 너무나 교만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담임선생님께서 어느 날 조용히 부르시더니 책 한권을 주시며 말씀하셨다. 선생님이 시간이 안 되서 그러는데 이 책 좀 읽고 선생님한테 말해주지 않겠냐고 하셨다. 나는 선생님께 책을 받아들어 읽기 시작했다. 갈매기가 나오고 시속이 몇 킬로에 높이가 몇 피트 등 어린 시절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내용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나는 선생님께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이야기인데 너무 어려워서 잘 알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웃으시며 나중에 조금 더 크거든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말해 달라고 하시고는 그 책을 선물해 주셨다. 그 이후 난 이 책을 몇 번 더 보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선생님께 다시 드릴 말씀이 없었다. 나에게는 그저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이야기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대학에 들어와서 정말 내 미래에 대해 고민했던 시절이었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아무 이야기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 우연찮게 책장에서 꺼내봤던 이 책이 처음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머릿속에만 맴돌았던 한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꿈을 이루는 이야기로 보였다. 사람이 그저 먹으려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살아가는 것임을 보여준다.
조나단은 평범한 갈매기 이었다. 그러나 그는 생각이 다른 갈매기 이었다. 다들 먹이에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조나단은 먹이를 찾지 않고 비행연습을 하곤 했다. 그의 부모가 그를 설득하여 평범한 갈매기처럼 지내보려 했으나 나는 것에 대한 열정으로 그럴 수 없었다. 조나단은 비행연습을 하면서 자신의 삶의 목적을 찾기 시작했다. 조나단은 나는 것이 가장 행복했으며 그를 아름답게 해주었다. 그가 열심히 연습하여 어느 날 역사상 가장 빨리 나는 갈매기와 곡예비행을 한 갈매기가 된다. 그는 다른 갈매기들도 단순히 반복되는 삶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무리에 돌아갔으나 그들은 조나단을 추방했다. 그는 갈매기 무리에서 떠나 높은 벼랑에서 홀로 살아가며 여러 가지 비행기술을 연마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