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교회사 학기말 소논문고딕 건축의 이해..*고딕의 어원*중세 후기 서유럽에서 회화. 조각. 건축. 음악 등 예술 전반에 걸쳐 번성했던 예술양식. 로마네스크에서 발전하기 시작해 12세기 중반부터 일부 지역에서는 16세기말까지 지속되었다. 원래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중세 건축을 야만족인 고트(Goth)인이 가지고 온 것이라고 비난한 데서 유래된 미술사 및 비평 용어이다. 영국에서 'Gothick' 이란 단어는 '재미없는', '기묘한' 혹은 고전적 규범과 반대되는 것이란 의미로 17세기와 18세기 작가들이 사용해 왔다. 그러나 영국 골동품 애호가들이 중세 기념물에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점차로 경멸적인 의미에서 벗어났다. '고딕'이란 용어는 건축에서 특히 성당 건축에서 그 평가를 받게 되지만, 거기에 함께 형성된 장식, 조각, 회화,공예에 이르기까지 총괄적으로 확산되어 적용되었다.*고딕건축의 일반*회화나 조각같은 다른 시각예술의 맥락에서 불 때 건축적인 실체가 가장 주도적인 것으로 여기에서 인식될 수 있다. 로마네스크시대에는 3가지 건물형태-수도원교회. 순례 교회, 그리고 제국 교회-로 특징지워지는 반면 고딕시대는 한 가지 주된 형태만이 발전되었는데 이것이 도시 성당이다. 성당은 작품 으로서의 건축이며 도시 성당은 작업 으로서의 건축 혹은 배경적 건축이다*고딕건축의 특징*고딕이라는 양식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건축에서이다. 건축은 고딕 예술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독창적인 형식이다. 고딕 건축은 수평성 보다는 수직선의 효과를 강조하여, 지상적인 안정감보다 천상으로 향하는 신상심을 강조한 것이다. 고딕 건축구조의 중요한 특징들은 무거운 돌로 만든 사이가 넓은 볼트(vault)를 지탱할 방법을 꾸준히 연구한 중세 석공들의 노력의 결과로 생긴 것이다. 문제는 무거운 돌로 만든 전통적인 원통형 볼트(barrel vault)나 교차 볼트(groin vault)가 아래쪽과 바깥쪽으로 엄청난 힘을 주게 되며, 이 힘이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벽들을 바깥쪽으로 방향으로 미는 힘을 크게 줄여주었고, 무게의 작용점을 볼트의 무게가 잇닿아 있는 벽 가장자리가 아니라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여러 개의 점 (리브)으로 옮겼기 때문에 두꺼운 별 대신 띄엄띄엄 있는 수직 기둥(pier)만으로 리브를 지탱해도 무게를 이길 수 있었다. 또한 원통형 볼트의 둥근 아치대신 뾰족한 첨두 아치{) 첨두형 아치 (Pointed Arch) -고딕양식 이전의 사라센 건축양식에서 이미 사용. 아치의 반지름을 자유로이 가감 함으로서 아치의 정점의 위치가 자유로이 변화. 반원형 아치에 비해 하중지지 능력이 증가를 써서 아치 꼭대기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힘을 여러 방향으로 분산시켰다. 리브와 기둥을 결합한 덕분에 기둥 사이에 있는 수직 벽들은 볼트를 떠받쳐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나 전보다 훨씬 얇아질 수 있었고 벽을 터서 커다란 창문을 내거나 아름다운 유리를 끼울 수도 있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리브를 댄 볼트 천장의 추력이 네이브(nave)의 외벽을 타고 내려와 외벽에 붙어있는 버팀벽을 통한 뒤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 플라잉 버트레스 (Flying buttress) - 날개모양의 부벽.신랑상부의 리브 보울트와 측랑의 부축벽을 연결하는 반 아치 형태의 부재 신랑상부 리브 보울트와 리브에 작용하는 횡압력을 수직력으로 변환시켜 측랑의 부축벽을 통 하여 지상으로 전달하는 역할 부축벽 상부에 소첨탑을 첨가하여 부축벽의 자중을 증가시켜 횡압력에 대한 저항 력을 증가시킴 플라잉 버트레스가 리브 보울트의 횡압력을 분담함으로서 신랑의 열주는 단지 수직하중만을 지 지 신랑의 열주가 로마네스크 양식보다 하중부담이 적어져 가늘어지고 높아질 수가 있었음 플라인 버트레스와 기둥이 하중을 전담하므로 벽체가 하중으로부터 해방되어 개구부 면적이 증가함.라고 부르는 반원형 버팀벽을 지나 바깥쪽에 서 있는 기둥으로 전달된다는 점이었다. 플라잉 버트레스는 네이브 외벽 상부에 기대어 있으면서 천장의 바깥 방향 추력에 대항하도록 되어 있고, 네이브 옆 양 아일(a한 모든 구조적 요소들이 결합하여 하나의 통일된 양식으로서 고딕 건축이 처음 나타난 곳은 파리 근처의 일드프랑스{) 현재는프랑스 중북부 파리분지 중앙부를 이루는 주.(일드프랑스주) 프랑크왕국 시대에는 카페가(家)의 영지(領 地)로 987년 카페가가 프랑스 왕위에 오른 이래 왕가의 직령지(直領地)로서 왕국 형성의 바탕이 되었다. 파리를 중심으로 일찍부터 선진 농업지대로서 근교농업이 번성하였다.였다. 그 도시에 사는 부자들은 많은 재산을 갖고 있어서 고딕 양식을 집약시킨 커다란 성당들을 지을 수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고딕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140년경에 짓기 시작한 파리의 성 드니(St. Denis) 수도원{) 생 드니 사원은 고딕 성당의 특징들을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서쪽 정면은 장미창이, 서쪽 현관에는 신학 의 교과과정이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다이다. 볼트와 벽을 따라 정확하게 줄지어 창문을 내는 구조법은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1163 착공)과 랑 대성당(1165 착공)에서 시작되었다. 이 무렵에는 건물의 내부기둥과 리브들을 여러 개의 다발로 묶은 것처럼 만드는 방법이 유행했다. 성당은 안은 4개의 층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1층 아케이드 위에 한 층이나 두 층의 복도(트리뷴·트리포리움)가 있고, 그위에 나란히 창을 낸 클리어스토리라고 부르는 층이 있었다. 이 서로 다른 여러 층을 떠받치는 둥근 기둥과 아치는 엄격하고 힘차게 되풀이되는 기하학적 모양을 이루었다. 창문의 트레이서리(tracery: 창을 여러 갈래로 나누는 장식창살)도 스테인드글라스{) 색유리를 창이나 천장에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7세기경 중동지방에서 비롯되었으며, 이슬람건축에는 대리석판에 구멍을 뚫어서 유리 조각을 끼워, 채광과 장식을 겸하는 방식을 많이 이용하였다. 서구(西歐)에는 11세기에 이 기법이 전해졌으며, 12세기 이후의 교회당 건축에서 이 예술은 본격적으로 발달하였다. 특히 고딕건축은 그 구 조상 거대한 창을 달 수 있으며, 창을 통해서 성당 안으로 들어오는 씬 더 인상적이어서 넓은 정면에 수많은 창문과 첨두 아치들이 이어져 있으며 매우 튼 입구, 우뚝 솟은 2개의 거대한 탑을 갖추고 있다. 성당 바깥쪽의 기다란 옆 벽은 기둥과 플라잉 버트레스(←그림 참조 노트르담 날개부벽)가 복잡하게 얽혀 늘어서 있다. 이러한 고딕 건축의 기본 형태는 차츰 독일과 이탈리아·영국·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스페인·포르투갈까지 퍼져갔다.{영국의 초기 고딕 양식(1200~1300경)은 독자적인 특징(이것은 솔즈베리 대성당(←그림참조)에 잘 나타나 있음)을 갖고 있으며, 특히 초기 영국 고딕 양식 으로 알려져 있다. 이 양식은 링컨 대성당 (1192 착공)의 네이브와 성가대석에서 처음으로 원숙한 모습을 보였다.이 양식으로 지은 교회들은 프랑스 고딕 양식과는 여러 가지 점에서 달랐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별 차이가 없는 두껍고 무거운 벽, 내부의 아치 가장자리를 연속무늬로 강조한 것, 폭이 좁고 긴 예첨두창(銳尖頭窓)을 많이 사용한 것, 밝은 색 돌기둥들을 한가운데에 세우고 그 주위에 검은 퍼벡 대리석으로 만든 가느다란 기둥을 둘러친 것 등이 그 당시 영국 교회의 특징이었다.초기의 영국 교회들은 일반적인 영국 고딕 양식 중에서도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높이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길이를 길게 한 것, 내부 벽면의 수직선과 수평돌림띠의 수평선을 거의 똑같이 강조한 것, 건물의 동쪽 끝을 반원형으로 만들지 않고 네모반듯하게 마무리한 것, 플라잉 버트레스를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 평면을 단편적이고 비대칭으로 처리한 것 등이다. 영국의 초기 고딕 양식을 뚜렷이 보여주는 건물은 웰스 대성당(1180~1245경)의 네이브와 서쪽 정면, 로체스터 대성당의 성가대석과 트랜셉트(transept) 부분이다.〔전성기 고딕 양식〕-차륜창(Wheel Window) 또는 장미창(Rose Window)이 외관상의 특징고딕 건축의 2번째 단계는 고딕 양식이 대륙의 레요낭(Rayonnant) 양식(1200~80)과 영국의 장식 고딕(Decorate프랑스 대성당들의 서쪽 정면을 장식하고 있는 커다란 원형{장미창(薔薇窓)(←그림참조)이다. 창문 한가운데에서 방사상으로 퍼져나가는 독특한 무늬 때문에 이 새로운 건축양식은 레요낭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레요낭 양식의 또 다른 특징은 기둥이 가늘어지고 창문이 커지면서 트리포리움 회랑과 클리어스토리가 하나로 결합한 결과 벽은 중간 문설주(창문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는 수직창살)와 유리가 뒤섞인 트레이서리와 다름없는 칸막이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진했던 스테인드글라스의 색깔도 점차 밝아져 트레이서리의 무늬가 더욱 돋보였고 더 많은 햇빛을 실내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레요낭 양식으로 지은 가장 유명한 건물은 랭스 대성당, 아미앵 대성당, 부르주 대성당, 샤르트르 대성당, 보베 대성당(1288년에 보베 성당의 볼트가 붕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이유는 피어간의 간격이 너무 넓었으며 기둥과 부축벽이 하중을 지지하기에는 너무 가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궁극을 향한 고딕시대의 노력은 구조적 가능성을 앞질렀기 때문이다. 결국 기술은 형태를 제한하는 중요한 인자로서 작용한다.) 이다.한편 영국의 장식 고딕 양식은 돌로 만든 정교한 트레이서리가 널리 사용되면서 나타났다. 초기 영국 고딕 양식에서 상용된 예첨두창 대신 가로 세로가 큰 창문이 만들어졌고 밝게 색칠한 이 창문의 유리는 수직창살로 2~8개 부분으로 나뉘었으며 각 부분은 트레이서리로 더 작게 분할되었다. 트레이서리는 처음에는 3~4개의 꽃잎무늬가 아치와 원과 한데 결합하여 그물 같은 무늬를 이룬 것이 기본이었으나 나중에는 S자 모양 곡선을 바탕으로 한 물결무늬나 불꽃무늬가 생겨났다. 아름다운 장식 고딕 양식은 웨스트민스터 대수도원의 안뜰 회랑(cloister: 1245~69)과 링컨 대성당 (1256 착공)의 동쪽 끝에 있는 에인젤 성가대석, 요크민스터(1260~1320)의 네이브와 서쪽 정면에서 잘 드러난다.〔후기 고딕 양식〕-화염식 스타일의 창이 외관상의 특징적 요소1280년경 레요낭 양식은 프랑스에서 한층 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