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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 진료소를 읽고
    서정인의 '진료소'를 읽고- 줄거리천미리는 시골 진료소의 소장이다. 그녀는 심부름꾼 소년(추정) 한 명과 진료소를 운영한다. 시골 진료소라 그리 바쁘진 않지만 마냥 한가하지만도 않다. 그녀는 조용한 가운데 스스로 고독해질 수 있는 저녁시간을 즐긴다. 혼자만의 생각을 많이 하는 그녀에겐 조용한 저녁시간이야말로 황금같은 시간이다. 그러나 이 시간은 갑자기 생긴 술취한 환자로 인해 깨어지게 되고, 그녀는 한곳에 떨어진 학교로 외진을 나간다. 그러나 학교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환자가 아닌 술취한 그녀의 아버지다.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와 아무 의미없는 대화를 나눈 후 진료소로 돌아온다.천미리의 아버지 천수건은 딸을 만나러 온 곳에서 두 명의 낯선 남자와 술을 마시게 된다. 학교 결비와 구멍가게 집아들, 이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천수건은 '나'와 '세상'. 그리고 주위 사람에 대한 생각들을 술에 실어 보낸다.- 작품 분석이 작품을 읽으면서 상당히 머리 속이 복잡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진료소라는 제목과는 달리 상당히 관념적이라는 생각과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은 이 글에서 내가 약간의 의심이라도 느꼈던 곳이나 약간이라도 무언가 의미를 찾은 곳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해 나가겠다.그녀가 악당이 되냐, 천수건이 불한당이 되냐? 악한이 된다고 억울할 것은 없었다. 본성은 선한데 어쩌다 실수로 잘못한 것은 사실 잘못이 아니었다. 그녀는 타고난 악역이 되고 싶었다. 세상에는 완벽한 악인도 완벽한 선인도 없었다. 없는 선인 없는 악인을 내세워 눈물을 찔끔거리게 하자니 실제의 뒤틀림이 있었다. 왜곡은 진실이 아니었고, 허위가 주는 감동은 환상이었다.- 중략 -부모를 위해서 다치고 죽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이어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자식의 몫이었다. 신체 발부는 수지부모라 감불훼손이면 효지시야라, 불효 중의 으뜸은 부모 앞에 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에 어긋났다.작품 전반부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부모와 자식. 그리고 그 부 것으로 인해 고민하며 살아가는가? 부모를 위하는 것이 어떤 것일까? 순리대로...자연의 이치에 맞추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선과 악의 진실이 아닐까?"니, 놀라운 땅의 앨리스의 모험들 읽어봤냐? 앨리스가 땅속으로 떨어지는데 옆벽의 책장도 같이 떨어진다. 그녀는 그 책상 선반에서 귤 설탕 졸임 빈병을 꺼낸다. 그녀가 가만있었더라면 책장이 곤두박칠쳤을 것이다. 책장에 지도며 그림들이 있는 것이 보인 것은 그녀도 같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람은 한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가만있으려면 달려야 한다. 다들 달리는데 혼자 가만 있으면 뒤로 물러간다. 밑으로 떨어지던지."작가는 이 말을 통해 무엇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일까? 관성의 법칙? 그것이 아니면 세상의 원칙? 남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자신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퇴보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천미리의 말을 통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세상의 삭막한 이치가 그러하다면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것이 우리가 따라야 하는 진리인가? 선과 악의 말과 결부시켜 보자. 진실은 없다. 완전한 선도, 완전한 악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단지 뒤처지지 않고 제자리에 머무르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야만 하는 걸까? 작품 전반부를 읽으면 읽을수록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고 자꾸만 미궁속으로 들어간다.그녀는 지금 상대적으로 행복했다. 그녀의 마음은 그녀의 환경에 맞춰져 있엇다. 그녀는 그 환경의 변화의 폭에 익숙했다.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변화는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화날때는 야비했지만 보통은 공손했다.상대적으로 행복하다는 말. 여운을 남기는 듯한 느낌이다. 사람들은 행복을 찾는다. 끊임없이 행복에 대한 갈구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사람들은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주인공 천미리는 환경의 변화에 적응했다.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파악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운신의 폭을 찾았다. 사람들의 변화에 맞추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다.그녀는 밥을 먹었다. 밥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수저를 놓고 멍하게 앞하는 행복과는 다르리라. 글 전반부에서 등장하는 말. 고독. 천미리에게 행복은 진정으로 고독한 순간이 아닐까? 숨막힐 듯한 적막. 그리고 혼자 남겨진 시간의 고독 뿐만이 아니라, 혼자 있을 수 없음으로써 느끼는 고독. 그것이 그녀에게는 행복이 아닐까?고등학교 때 그녀는 정식으로 그녀가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야 뭘 해, 빨리 가지 않고?""술 사러 가지 않겠어요, 앞으로 시키지 마세요.""뭐, 뭐야? 야가 시방 뭐라고 허냐?"그녀의 아버지는 술이 확 깨는 모양이었다. 아마 덜 취했다. 어머니는 그들 둘을 번갈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 말이 딸의 입에서 그렇게 술술 나오는 것에 놀라는 것 같았다. 놀라기는 말을 한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그 말을 하기 전에는 그것을 어떻게 꺼낼까 고심했지만, 말을 하고 나니, 말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것은 말을 하기만 하면 되었다.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만을 하기 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일을 위해 자신이 해야할 말을 하지 못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말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부풀려지고 두려움으로 커가는 것이지 입밖에 나오면 그것은 그저 소리에 불과하다. 그것이 미치는 영향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작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많은 사람이 망설인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놓쳐가면서까지..."둘이 잘알아요?""오늘 첨 봤소.""처음 만나서 술 마셔요?""술이 그래서 좋단 말이요. 초면이 구면이요. 이 동네 어떤 사람보다 그 사람을 더 잘알게 되었소.""이 동네 사람들 그 사람 몰라요.""오 년 된 나도 모르요. 나, 저 밑에 좀 가봐야겠소. 물가를 가고 싶어 헙디다. 별일 없을 것이요, 토허고 나면 정신이 드요."이 동네에서 그가 그 사람을 가장 잘안다는 말이냐, 동네 사람들을 아는 것보다 그를 더 잘 안다는 말이냐, 아마 둘째 뜻이었다. 같은 동네 사람 속은 몰라도 처음 만난 술친구 속은 알았다. 첫째도 말이 되었다. 그가 여기 초행이니, 그보다 그를 더 잘 알 사람을 모른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이 동네 사람들을 그 사람이 모른다는 뜻도 되었다. 그 앞엣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그녀의 말의 뜻이 결정되었다. 그의 말이 첫째 뜻이라면 그녀의 말도 첫째 뜻이었다. 그녀는 그의 말을 둘째 뜻으로 받아들였었다. 대답은 첫째 뜻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묻지도 않은 오 년을 꺼낸 것을 나무랄 수 없었다. 말은 필요없었냐? 말은 엉뚱했냐? 뜻은 쓸데 없고 소리만 필요했냐? 그냥 물가로 걸어가 버린 것보다는 뭐라고 하고 가는 것이 더 나았냐? 날씨나 건강이나 아무것이나 말해도 괜찮았냐?이 글을 읽으면서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부분 첫 번째다. 일상적인 대화가 나온다. 그리고 그 후에 이어지는 천미리의 생각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실제로 사람들은 말을 나누고 난 후에 그 대화에 대해 생각한다. 이것이 나았을까? 아니 혹시 그 말에 다른 뜻이 있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그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작가는 이러한 연상과정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한 것일까?"하나도 안 변했어요""니도.""진짜 할 이야기 아직 못하셨지요?""가짜 할 이야기도 못할 뻔 봤다. 니 말대로 했으면 나는 지금 집에 있다.""원래 진짜 이야기는 못해요. 가짜 햇으면 다 했어요. 진짜도 꺼내면 가짜가 돼요. 나, 가요.""그래. 진짜가 가짜면, 가짜가 진짭갑다."부녀간의 대화가 이정도면 상당히 삭막하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것이 아닐것이다. 가짜와 진짜. 진짜와 가짜. 이 두 부녀는 한참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바로 위의 지문이다. 가짜와 진짜. 그렇다면 천수건은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는 말인가? 치매와 술이야기가 딸에게 할 말이었나? 그냥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가 없다. 그렇다면 결국 관념적인 이야기인가?그 이상 더 얼마나 바라랴. 가짜라니, 반대말이 나온다. 반대라니, 마음에 없는 말이 나온다. 그는 말을 하고 후회하지 않은 적이 별로 없었다. 문 것이 더 좋냐? 없으면 어떻게 되냐? 내가 없으면 누가 있냐? 내가 없는디, 누가 있으면 무엇하냐? 내가 나 아닌 남으로 있으면 그것이 나냐, 남이냐? 나는 어디 있냐? 이래도 없고, 저래도 없냐? 어차피 없냐? 없는디 있는 것은 무엇이냐? 가짜냐? 말로 만든 가짜냐? 나는 내가 아니라 말이냐? 말은 공중에 뜬 바람 아니냐? 흩어지면 없어지는 바람 아니냐? 왜 없어지냐? 사람들의 가슴 속에 들어가서 산다. 나는 남들의 가슴 속에 있냐? 여기 있는 나는 내가 아니냐? 나를 바꾸려면 남들의 가슴속을 바꿔야 하냐? 남의 것을 내가 내 맘대로 하냐? 못하냐? 내가 나를 내 맘대로 못 만드냐? 남의 것은 남이 맘대로 하냐? 남이 나를 만드냐? 남도 나를 못 만드냐? 남도 남의 것을 맘대로 못하냐? 아무도 아무 것을 어쩌지 못하냐?딸과 헤어진 후에 이어진 천수건의 생각이다.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보는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자신을 회한하며 과연 이런 자신이 '나'인가 하는 생각을 가진다. 이러한 천수건의 생각은 뒤에 가면 조금 더 심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그는 기대로 가슴이 부풀었다. 술병을 움켜질 전망이 그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다. 그는 평소에 그를 괴롭히는 천박함과 비열함과 옹졸함과 인색함에서 해방되었다. 그것들은 그에게 거짓과 꾸밈을 끊임없이 강요했다. 그는 본의 아니게 부도덕했다. 그를 고문하는 것은 그의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눈 벌겋게 뜬 그를 마음에 없는 허위와 위선으로 코뚜레 뚫린 고처럼 질질 끌고 가는 그의 나약, 나태 또는 타협이었다. 악당은 방향잡이가 잘못된 초인이었다. 방향이 반대일뿐, 뜻을 세웠기로는 악한이나 영웅이나 같았다. 그는 본의 아닌 선인보다 제 뜻의 악인이 더 되고 싶었다. 사람은 본의 아니게 선해지기보다는 본의 아니게 악했다. 선은 어렵고 악은 쉬웠다. 선은 뜻이었고, 악은 추종이었다. 본의 아닌 선이 없듯이, 제 뜻의 악도 없었다. 본의 의 악은 이미 악이 아니었다. 뜻이 사람의 행동을 훌륭한 것으로 만들었다. 선한 았다.
    인문/어학| 2001.12.11| 6페이지| 2,500원| 조회(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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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시론] 작가이승훈
    [시론] 작가이승훈 평가B괜찮아요
    작가 이 승 훈1942 강원도 춘천 출생1960 춘천고등학교 졸업1961 한양대 공대 섬유공학과 입학1962 박목월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낮」「바다」「눈보라」( 63) 등이 추천됨으로써등단1964 한양대 문과대학 국문과 3년으로 전과 『현대시』동인으로 활동: 60년대 우리의 시사속에서 젊은 시인들이 참여한 의 위치는 주지적 서정시를 정착했다는 사실과 언어적 본질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리고 이승훈이 이러한 동인의 핵심인물로 언어의 탐구라는 과제를 수준높게 이룩한 시인이다.1969 시집 『事物A』(삼애사) 간행. 한양대 대학원 석사과정 마침, 춘천교육대 전임강사1975 시론집 『반인간』(조광출판사) 간행1980 한양대 국문과 조교수1981 시집 『당신의 초상』(문학사상사) 간행1983 연세대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시론집 『비대상』(민족문화사), 문학론 『문학과 시간』(이우출판사), 시집『사물들』(고려원) 간행1984 현대문학상 수상. 시선집 『상처』(영언문화사) 간행1986 시집 『당신의 방』(문학과지성사)산문집 『너의 행복한 얼굴 위에』(청하) 간행1987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시론 『이상시연구』(고려원), 시론집『한국시의 구조분석』(종로서적), 시집 『샤갈』(문학과비평사), 시선집『너를 본 순간』(문학사상사)간행1988 시론 『시작법』(문학과비평사) 간행1989 시집 『너라는 환상』(세계사), 산문집 『너라는 신비』(세계사) 간행. 시전문계간지 『현대시상사』(고려원) 주간1991 『길은 없어도 행복하다』(세계사)1993 『밤이면 삐노가 그립다』(세계사)1995 『밝은 방』現在 한양대 국문과 교수2) 본론1) 이승훈의 시세계1 1960년대 :『사물 A』이 시기는 이승훈이 문단에 등단하여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나름대로의 시세계를 모색해 나가던 과정이었다. 이 시기에 이승훈이 펴낸 시집은 『사물 A』(1969)가 있다. 이 시기에 이승훈은 자신의 시에 내면성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이 시기의 그의 시들이 내면적 환상의 상상력에 뿌리를 둔 시적 산 강원도의 길이 보인다./인부가 하나 허리를 구부리고/마적들이 달리는 밤마다/폭발하는 물 속에 서 있다./바람이 내안(內岸)으로 바람을 몰고온다./흐린 마을이 가느다란 연기를 토하고/침략당한 울음들이 폭발한다.//컴컴한 하늘로 사라지는/허옇게 폭발하는 물속에/내가 쓰러지는 나의 허리를 잡는다. -「폭발하는 물」위의 시 「폭발하는 물」같은 경우는 모두 5연으로 이뤄져 있으며 이들 각 연은 모두 ~은 (하고)있다 라는 통사구조로 이뤄져 있다. 이는 즉 시속에서 시적 자아는 ∼을 하고 있는 객관적 상황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시적 자아가 시점을 옮기며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상상력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과 연으로 이어면서 서정적 파노라마를 형성하지만, 실제로 각 연들의 장면은 독립적, 단절적으로 이뤄졌다.등불은 어둡고 철필은/싸늘한 리아쟌 벌판을/달리는 썰매이다//깊은 밤의 눈보라가/목도리로 목을 가리고/우는 기억속의 누나다//기억속의 누나다//서울의,왕십리의 얼어붙은 추녀끝을/내 손은 헤맨다//내 손은 낙반의 어둠속에서 어둠속으로/미동한다//오오 허기의 겨울 불비/이제 누가 깨달을 것인가/눈물의/이 깊은 한밤의 제사를/시방 눈 내리는 서울의/세계지도에 피금을 그으며/오래오래 황량한 나의 재능을/신뢰,너의 따스한 힘이여/참음이여 -「재능」이 시는 바라볼 수 있는 상황으로서의 객관이 사라지고 전체가 주관적 진술로서의 상상력으로 바뀌고 있다. 달리는 이라는 행위표현에 의해 객관상황의 제시로 인식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은유구조로서 그 구조를 통해 객관상황이 주관상황으로 흡수되고 있는 것이다.21970년대 :『환상의 다리』『당신의 초상』1976년에 발표된 『환상의 다리』와 1981년에 발표된 『당신의 초상』은 이승훈의 60년대의 시집『사물A』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 시기에는 제 1시집의 바라보기의 양상이 자아의 주관적 내면진술로 바뀌면서 시적 자아가 위치한 공간도 내면 공간의 바깥의 현실공간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이는 1적 의미의 제시가 불가능한 비대상의 시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유적 형식의 관념적 의미해석과 그것의 차단이 반복됨으로서 표면상으로는 관념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관념적 의미구조의 틀을 거부하는 무의미의 시가 되는 것이다. 이 시는 다만 은유 구조에 의한 관념표현의 형식을 빌렸을 뿐 실제로 함축적 의미의 시니피에가 배제되고 있는 무의미의 시로 바뀌고 있는데 여기에는 시인의 비관념 심상지향이라는 자기의도가 내포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당신은 예수같고/바다에서 돌아온/아침같고 버림밭은 애인같고//수염만 자라 꽃잎같고/사랑한 꽃잎 같고/피아골 같고//하늘이 버린 바다 같고/거대한 사랑 같고/무한히 작은 사랑 같고//아니 어려운 도시에서/수월한 도시로 떠나는/형편없는 천재 같고/예수 같고 목바르고//아아 나는 서른 셋/비쩍 마른 당신은/바람 부는 저녁/바람부는 저녁 같고/아침같고-「당신의 초상」이 시 역시 원관념 당신 에 ...같고 라는 보조관념이 병치를 이루고 있다. 결국 이 시의 운율적 자질로서의 주된 것의 하나가 짧은 길이의 행바꿈,병치,동어반복등에 의해 호흡의 촉급과 긴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의미를 부정하고 시니피앙의 운율적 장치에 의해 보다 더 강하게 스스로의 존재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이렇듯 이승훈의 70년대 시들의 자동기술적 양상은 출발기인 1960년대에 있어서와 변함은 없다. 그러나 시적 자아가 받아들이거나 시적 자아의 의식이 닿은 상상력의 내용이나 대상은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이시기부터 이승훈은 극단적인 자동기술의 제모습을 보이면서 「사물A」에서 보였던 회화적인 양상을 없애고 의미를 부정하는 철저한 무의미의 시를 산출한 것이다.3 1980년대 시1980년대 그는 네 번째 시집 「사물들」(1983), 다섯번째 시집「당신의 방」(1986) 여섯 번째 시집 「너라는 환상」(1989)을 발행했다. 이 시기부터 이승훈은 자신의 시에 비대상 시라는 개념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에 맞춰 이승훈은 1983년 이라는 문학지나지 않는 것이다.이 거린엔 깊은 밤 버스를 타고 떠난 너의 흔적이 있다 너의 흔적을 만져 본다 너의 흔적은 추운 창문에도 있도 마른 가지에도 있고 바람속에도 있다 바람속에 남아 있는 너의 미소 가냘픈 날들의 흔적 해가 지는 계단에도 있다 너의 미소가 있다 수다를 떨던 너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있고 따뜻했던 겨울이 있고 의자도 있고 하늘도 있다 작은 방도 있다 바람 많은 날들이 새기고 간 사랑이 여기 있다 지워지지 않는 너의 흔적이 있다 -『너의 흔적』이 시에서는 2인칭 너 는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보고의 대상일 뿐이다. 여기서 2인칭의 너 는 모든 사물을 지금 여기에 존재하게 만드는 근거가 되고 있다. 다리 말하면 모든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근거인 만큼 2인칭의 너 는 그 모든 사물속애 존재하는 지워지지 않는 흔적 이다. 시인은 2인칭을 모든 사물속에 모든 곳에 존재하는 인물로까지 승화시키는 것이다.이 펜이 나다/이 종이가 나이며/이 방이 나이며/나는 나른 뛰어넘어/나에게로 간가/도대체 나는/몇개가 되는 거야?//나는 이승훈 씨! 당신이여/치사한 당신이여 치사한 당신이/아닙니다 오늘은 하루종일 흐리고/나는 정거장에 대해 생각했습니다/정거장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이/정거장이고 기차고 어머니이고/애인이고/정거장이 아니고 기차가/아니고 어머니가 아니고/애인이 아니고 -『펜』의 일부2) 이승훈의 일관된 시 정신1 끊임없는 자아탐구의 과정이승훈의 시는 끊임없이 자아에 대한 탐구로 이뤄어진다. 그의 60-70년대 시에서는 나 라는 개념으로 시를 분석했다. 이 시들은 모근 일체가 나 로부터 시작되고 다시 그것이 나로 귀결되는 일인극의 독백적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그의 시정신을 그 촉수가 시종일관 자신의 내면세계를 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자신의 목소리를 온몸의 감각으로 포착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의 초기 시는 이렇게 자신의 내면지향성 이라는 정도를 강화해 자아를 찾았다. 하지만 이승훈은 80년대에 이르러 나와 너 의 관계에 부심해 너 로 시를 쓸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어떻게 된 노릇인지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대상의 세계를 명확하게 드러내거나 살아서 꿈틀거리게 만들기는커녕 대상의 세계를 자꾸만 죽이고만 있었다. 남는 것은 언어와 자아뿐이었다. 남들이 언어와 세계, 혹은 언어와 대상에 대해서 생각할 때 나는 언어와 자아 혹은 언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한 셈이다.-이승훈의 『포스트모더니즘 시론』에서 발췌비대상시, 즉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말하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결국 대상이 아니라 대상과 자아가 공유하는 가능성으로서의 질서를 노래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2비대상과 언어이승훈이 초기 시들에서 도입했던 방법은 시를 통한 말하기 가 아니라 보여주기 이다. 이 방법은 이승훈의 80년대 시에도 계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승훈은 보여주기 방법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잠깐 이승훈의 말을 인용하도록 하겠다.비트겐슈타인이 그랬듯이 최근에는 보여주기의 양식에 대한 어렴풋한 회의가 생긴다. 어렴풋하다는 것은 보여주기 양식이 언뜻언뜻 내비치는 지나친 형식성에 대한 불안과 관계가 있다. 보여주기의 양식은 동어반복의 명제들이 그랬듯이,결국은 언어의 순수한 형식을 지향한다. 순수 양식으로서의 언어속에는 구체적인 언어의 흔적이 소멸한다.-이승훈의 《포스트 모더니즘 시론》에서 발췌이러한 보여주기 방법의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것으로 이승훈은 언어놀이 의 개념을 들고 나왔다. 이는 언어가 하나의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언어를 게임으로 인식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게임에는 어떤 관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보편성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게임이 게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규칙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언어행위가 하나의 게임이라면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쩔수 없이 언어의 규칙에 따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게임의 경우 규칙이라는 것은 게임의 유일한 양상이 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언어행위는 규칙에 의해 지배되지만 그 규칙은 절대이다.
    인문/어학| 2001.12.11| 8페이지| 3,000원| 조회(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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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적 토지관과 헨리죠지(Henry Georgy)기초 경제학부의 불균등을 해결하는 문제에 대한 도전과 책임Ⅰ. 현실에 대한 인식과 출발1. 우리시대의 노예제도- 참다운 인권의 기초우리는 우리 삶을 참으로 인간다운 삶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뜻에 얼마나 근접한 삶을 살고 있는가?"우리 시대의 노예제도는 어떤 철칙인 기본적인 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토지와 세금과 재산에 관해 인간이 제정한 법들 때문에 생겨난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고 명확한 사실이다") 레오 톨스토이, , 66쪽.2. 1997년 11월 한반도를 휩쓴 위기의 현실① 남한: IMF구제금융 체제시작(국가부도 위기)-실업자 200만, 기업부도,가장의 자살-사회 최소 단위인 가정 공동체의 붕괴, 노숙자 증가.-한 사회 공동체성의 파괴의 기저에는 토지 문제가 도사라고 있다.② 북한: 식량위기로 기아와 기근폭증, 수백 만명의 어린이가 기아와 질병으로 죽음,탈북자 들의 인권 유린.3. 토지문제가 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가?①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보이지 않는 도둑"땅값 폭등은 우리들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성실하게 일하는 대부분의 봉급생활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인가?지독하고 독살스러운 도둑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도둑은 훔치러 남의 집 담장을 넘지도 않고 칼 같은 흉기를 들고 다니지도 않는다. 한번에 한 사람으로부터만 도둑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몇 만명, 몇 십 만명으로 부터 한꺼번에 터는 신출귀몰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이 도둑은 다른 사람들이 땀흘려 번 것을 송두리째 뺏어버린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도 모자라 당하는 사람들의 자손들까지, 더 나아가서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들의 몫까지 미리 독차지해버린다. 이런 도둑을 만나면 재산뿐만 아니라 얼까지 빼앗긴다.이런 재주를 가진 도둑이 있다. 경제신화를 만들어 가는 중심부에 바로 이 도둑들이 들끓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꾼들이 바로 그 장본인이다.부동산 투기는 그 투기에 참여한 사람들 사이에서 따고 잃는 것이 없다.투자는 135%가 증가.(6)세입새로운 세금이 도입되지 않았음. 저소득층에게는 세금면제, 고소득층에게는 누진세율이 아닌 비례세율이 적용. 도시정부의 지대세는 2배 이상 증가→도시정부가 거두는 소득세(municipal income tax)의 감면 가능소비자물가상승률실질 GDP성장률(%)실업률(%)실질임금상승률(%)토지세정부이전 4년간5.123.549.51.91토지세정부4년 기간1.615.217.554.50토지세정부이후 4년간5.05.213.64.14자료: 『세계통계연감』, 국제연합 통계국, 각 연도International Financial Statistics- 정의당은 1960년 총선에서 단 한 석도 차지하지 못하는 참패- 정권이 바뀐 이후 토지가치세에 대한 논란이 계속, 지주계층의 강력한 압력→ 1964년 토지가치세가 폐지, 1965년에는 토지가치증가세가 폐지. 그러나 정의당의 패배이후에도 4-5년간은 토지가치의 사회적 환수라는 원칙이 지켜짐- 선거에서 참패한 원인?①경제적 성과를 낳은 원동력이 바로 지대를 사회로 환수하는 제도였다는 것을 충분히 홍보하지 못했음: 국민들은 토지가치세가 단순히 많은 세금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 더욱이 위험한 수준의 대외부채를 갚기 위해 새로운 소득세를 도입→ 조지주의자들의 공언과는 상이.(그러나 전반적인 세부담은 계속해서 하락해 세부담이 약 10%정도 낮아짐)②연립정부 내에서, 또한 조지주의자들 간에 분쟁. 토지가치세를 세금이라 부를 것이냐, 토지 이용료(charge)로 부를 것이냐; 토지가치세로 확보된 재정수입을 복지지출로 이용할 것이냐, 다른 세금을 깍아줄 것이냐; 토지가치세가 지주들에게 경제적 손실을 입힐 경우, 그들에게 보상을 해주어야 하느냐; 다른 모든 세금을 폐지해도 공공지출에 충분한 세입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분열③조지주의자들은 새로운 상황변화를 잘 이해하지 못했음. 즉 그들은 토지가치세가 토지가격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공언해왔으나, 실제로 토지가격은 상승했음. 경제의 성장력이 높아지자 주택 부해야할 금액을 깎아주기까지 했다.-이 예는 사회간접자본이 산출하는 지대의 상승분을 환수한다면 그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하는데 들어가는 경비를 충분히 충당할 수 있다는 원칙을 확인▶캘리포니아의 교훈: 토지보유세의 후퇴가 초래한 경제적 난관-1978년 캘리포니아 주는 주 헌법(Proposition 13)을 수정하여 토지보유에 대한 세금을 크게 낮추는 조치를 취함: 토지가치를 평가할 때 토지평가액의 년간 상승률을 2%가 넘지 못하도록 규정→ 토지는 시가보다 턱없이 낮게 평가, 보유에 따르는 부담을 거의 없음.- 세율 자체도 크게 낮아짐→ 평균 시가의 8분의 1로 저평가된 과표에 1%의 세율을 적용한 세금만을 내고 있음.- 영향: 공공서비스의 축소, 소득세와 같은 다른 세금의 인상, 그리고 주 정부의 신용하락- 주 교육보조금: 1978년 이전 전국 5위→ 1985년에는 40위로 떨어짐.- 도로관리의 난맥: 리버사이드(Riverside) 카운티의 경우, 20년마다 모든 도로를 재포장하는 것이 정상적이나 지금의 속도로 보면 130년에 겨우 한번 재포장을 할 수 있을 정도.- 토지투기→유휴토지보유→개구리 뜀 뛰기식 도시확산(urban sprawl) → 환경 악화- 1979년 이전 새크라멘토(Sacramento) 카운티는 재정흑자 기록. 그러나 토지보유세의 대폭 경감으로 재정이 악화, 이를 만회하기 위해 사업세, 소득세, 판매세, 휘발유세 등을 인상.- 캘리포니아 주의 궁핍한 재정상태 때문에 주가 발행한 채권의 신용등급은 최하위로 추락했으며, 가장 부유한 카운티 중 하나인 오랜지(Orange) 카운티도 파산을 경험.-LA는 거의 재정 파탄에 직면→시립 병원들과 응급실을 폐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주민소득: 1978년이전 7위→ 1992년 12위, 이후 더욱 하락. 1992년부터 1994년 사이에 주민소득의 중위수가 하락한 3개 주의 하나.- 실업률: 1995년 현재 9% (전국 평균 6%). 빈곤층18% (평균 14.5%)- 캘리포니아에서 유일하게 번창하는 산업이란 영화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의 위기를 보면서 그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통일이라고 하면 남한 자본주의로의 통합을 생각하던 우리에게 작금의 사태는 중요한 교훈을 던져 주고 있다. 통일이란 단순히 체제적 우월성을 입증한 남한 자본주의로 북한을 통합시키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동시에 남한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는 개혁의 과정이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통일 한국의 경제 체제로서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니면서 양 체제의 문제를 극복한-또 양 체제의 장점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제3의 경제체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그러나 미제스(Ludwig von Mises)같은 경제학자는 일찍부터 "제3의 체제란 없다"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혼합경제나 복지국가, 혹은 시장 사회주의 등, 제3의 길을 표방한 체제나 정책들은 대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양 체제의 문제를 극복한-또 양 체제의 장점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제3의 경제체제는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러 가지의 제3의 길이 실패한 것은 그것들이 잘못된 절충이었음을 나타낼 뿐, 제3의 경제체제의 불가능성을 입증하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샌프란시스코의 선지자', 헨리 조지는 이미 120 여 년 전에 그러한 체제의 기본틀을 제시하였다. 그가 말하는 제3의 경제체제 하에서는 자본주의 하의 빈곤과 불황이 해결되고 사회주의 하의 비효율과 부정·부패가 사라진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효율성과 사회주의의 평등이라는 이상이 유기적으로 결합된다.헨리 조지의 구상은 이와 같이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경제학 이론이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서 배척당하고 잊혀지는 과정에서 우리의 눈앞에서 멀어져 버렸다. 그러나 사회를 자본주의의 모순으로부터 해방하겠다고 나섰던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자본주의 또한 그 고유한 모순으로 인해 여러 가지 실패상을 노정하며 절뚝거리고 있는 지금, 헨리 조지의 구상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고 있다. 통일 한국의 경제 체제를 모색해야 하그것은 토지를 부당하게 탈취한 곳이 아니면 성장하지 않았다. 어디서나 기본적으로 인정되었던 것은 토지에 대한 공동의 권리였다. 토지에 대한 평등한 권리가 부정되고 토지 사유제가 발달한 경우에 그것은 그 문명을 멸망시키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사회의 공적 기능들을 위한 경비는 전통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지대라고 부르는 것으로부터 조달되었다.봉건제를 보면 일면에서는 토지의 절대 소유권이라는 관념이 통용되고 있었다. 이것은 로마를 정복한 야만족이 피정복민의 제도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러나 봉건제는 그것을 능가하는 상위 권리를 설정하였다. 즉 봉건제 확립 과정에서 개별 소유권은 사회 내지 국가를 대표하는 상위 소유권에 종속되었다. 그리하여 봉건제 하의 토지 소유자들-영주들-은 자신의 소유권에 기초하여 지대를 수취하는 대신 상급 영주에게 일정한 의무도 부담하였다. 게다가 영주들의 토지 소유권은 직접 경작자인 농노들의 토지 점유권과 촌락 공동체의 공동권에 의해 제한을 받았다. 봉건제 하에서도 여러 가지 공적 성격을 갖는 경비는 토지로부터 조달되었다. 군주의 토지는 오늘날 일반 국민이 부담하는 공공 경비를 조달하였고 교회의 토지는 신자의 예배와 교화에 드는 비용, 병약자를 돌보는 비용, 성직자처럼 사회적 선을 위해 일생을 바치는 계층을 지원하는 비용 등을 조달하였다. 한편 군대의 토지는 국방 비용을 조달하였다.봉건제 이후 근대 문명은 토지의 공동 소유라는 자연적이고 근본적인 관념을 뒤집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봉건제 하에서도 일정한 정도로 존속되고 있던 토지의 공동 소유와 그에 기초한 평등권은 각종 봉건적 속박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함께 사라지고 말았으며, 그 이후 근대에 들어와서는 토지 사유의 관념이 개인적 자유의 신장과 함께 확대되어 갔다. 대부분의 토지는 사유화되었고, 한 때 하층민에게 독립성을 부여해 주었던 방대한 면적의 공동지는 별 가치없는 땅에서나 겨우 흔적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군주, 교회, 군대의 토지도 개인의 소유로 바뀌고 말았다. 그런데 프레드 해.
    사회과학| 2000.12.11| 34페이지| 2,500원| 조회(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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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판소리계소설연구 평가A+최고예요
    판소리계 소설 연구 - 심청전과 춘향전Ⅰ.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판소리개념.일차적으로 창의 대본으로서 국악의 명칭이지만 국문학의 한 장르의 명칭으로 쓰이기도 함..전문 예술가인 광대가 부르는 구비 서사시.구비 문학이지만 민중 모두가 그 창작에 참여할 수 없고, 전문적인 광대에 의해서 발전되었다는 점은 일반적인 구비적 양식과 구분된다..판: 일정한 원리에 따라 소리를 구성하는 것 / 놀이판[무대].판소리 대본: 판소리 사설-서사 문학으로서 주인공의 처지나 상황이 변하는 과정을 기술한 것이며 이에 따라 독자들의 정서적 반응도 변화하게 된다.-청중을 상대로 한 공연 서사시로서 종합 예술이다.유래와 전개 양상.17세기에 전라도 지방의 서사무가에서 파생됨..판소리는 호남지역의 무속을 배경으로 해서 발생한 예술..조선왕조 건국: 무속탄압 정책.조선 후기: 무속의 사회적 신임이 점차 퇴색되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예능이 상품으로 인정되어, 세습무가 출신들이 소리판을 벌이게 되는데, 이것이 전국적으로 확산됨..영조 30년: 판소리의 초기 시대. 유진한의 「춘향가」.순조 시대: 판소리의 융성기. 전 팔명창이 활약..고종대: 판소리의 전성기. 후 팔명창이 활약. 신재효의 판소리 사설 정리 작업.일제 강점기: 판소리 위축. 전통적 판소리는 현대 공연물에 밀려 쇠퇴..현재까지 전승되는 자료: 「춘향가」, 「흥보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 판소리 12마당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중국의 삼국지연의), 변강쇠타령(가루지기타령), 배비장타령, 장끼타령, 옹고집타령, 왈짜타령(무숙이타령), 매화타령, 신선타령(숙영낭자전)특징(1) 서민의식을 반영하는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민중 예술(2) 음악과 문학이 결합된 극적 형태의 공동작(3) 구성은 장면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도 보임(4) 한시나 고사의 인용이 많으며, 일상적인 구어체로 반복, 과장, 욕설 등이 많이 쓰임.(5) 한 음보의 음절수의 변화가 심하지만 대체로 4음보격의 운문임.지만 분위기가 고조되어가면서 고수의 북장단과 추임새 그리고 청중의 추임새까지 가세하여 고단한 창자에게 힘과 흥을 불어 넣어 준다. 이리되면 감상자에 보답하듯 창자는 더욱 신바람이 나서 활기찬 몸짓으로 노래를 이어나가게 된다. 이렇게 주고 받으면서 생기는 흥과 열기는 마침내 창자와 고수 그리고 감상자 간에 너와 내가 따로 없는 '우리 의식'으로 이끌어다 준다. 이 점은 판소리가 창자 한 사람에서 시작되고 그에서 끝나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공동체적 의식을 중심에 둔 아주 개방적인 구조임을 보여주는 것이다.판소리의 기원과 발생판소리는 언제 어느 지방에서 어떤 사람들이 부르기 시작했으며 우리고유의 것인가 아니면 다른 나라의 어떤 것을 모방해서 생겨난 것인가 등등 그 발생을 둘러싸고 궁금한 것이 참 많다. 그러나 아직까지 시원하게 밝혀지지 못 한 부분도 적지 않다. 그렇긴 해도 판소리가 처음 전라도 충청도를 포함하는 삼국시대 백제권에서 생겨났고 그 노래꾼들이 무속과 관련된 사람들이었다는 점은 대체로 동의하게 되었다.판소리 형식을 두고는 광대소학지설, 즉 광대들이 이야기놀이판에서 해학과 골계로 사람들을 사로잡던 이야기와 노래가 가다듬어지고 정리되어 나중에 판소리가 되었다든지 혹은 중국에서 평민 등에게 불경을 깨우쳐 주기 위한 이야기인 강창문학이 우리 나라에 들어와 판소리 형식으로 바뀌어졌다는 설이 있었으나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이제 많지 않게 되었다. 그밖에 민요, 시조, 가사, 창 등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했으나 이 역시 서사무가 기원설에 밀려 점차 설득력을 잃고 있다.서사무가에서 판소리가 나왔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이렇다. 우선 서사무가와 판소리는 모두 장편구비서사시로 서로간 전환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판소리인 심청가를 무속적인 심청굿으로 얼마든지 바꾸어 부를 수가 있다. 창과 아니리를 서로 섞어 부르는 가창방식에 있어서도 양자는 똑같고, 전라도 무가의 경우 판소리와 장단까지도 동일해 서로 간의 전환이 아주 쉽사리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다장에서 찾기 어려운 이런 식의 표현은 곧 이들 이야기가 판소리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물씬 물씬한 쑥덕삼승이불 춤을 추고 새별요강은 장단을 마추워 쳬그렁 쟁쟁 문고루난 달낭달낭 등잔불은 가물가물흐르릉 흐르릉 아웅 어루난듯두울 두울 수박웃봉지 기금털털 개살구자운자운하게 뒤로 자진듯하게수사와 시제수사법에서 판소리계 소설은 감탄법.나열법.중언법에다 직유나 은유를 매우 빈번히 쓰고 있다. 굳이 말을 고르지 않고 일상의 구어를 그대로 받아들이다보니 이야기가 외설스럽게 흘러갔고 천하고 거친 말이나 사투리가 걸러지지 않은 채 그대로 문장 속에 들어와 독자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사라진 조선후기 민중의 말과 삶을 판소리 소설을 통해 들여다 볼 수 있음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판소리소설에서 시제는 거의 현재진행형으로 처리된다. 과거시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소설일반이 과거시제를 선호하는 것에 비길 때 큰 차이가 아닐 수 없다. 이 역시 판소리 연행이 공연성과 현장성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판소리 연행은 출연자나 관객에게는 오직 특정공간에서 벌어지는 '현재', '여기'에서의 일이므로 그 공연의 자취인 사설이나 소설 역시 현재진행형으로 된 것이다.시점과 화자화자는 서술을 중간에서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작품 중에 숨어 있는 객관적 인물이다. 작중인물과 그들을 둘러싸고 빚어지는 사건 상황의 전개는 물론 설명과 묘사까지도 화자가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달려 있다. 판소리 소설에서 화자는 전지전능한 입장에서 이야기를 엮어나가지만 느닷없이 그 화자가 얼굴을 드러내고 사적인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줄거리가 흐름이 단절되는 것은 물론 자칫 내용에 있어서도 신뢰성을 잃을 수 있는 대목이다. 다른 소설과 달리 판소리소설에서 화자는 창을 직접 부르는 광대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아래 그런 예를 들어본다.북을 치되 잡스러이 치지말고 또 이러케 치럇다...... 내 별별 이상한 고담 하나를 하야 보리라춘향의 곧은 마음 아프단 줄거리황주 도화동의 심학규와 곽씨 부인은 기자정성을 하여 딸 심청을 낳았다. 그런데 심학규는 앞을 보지 못하는 봉사였고, 곽씨 부인은 청을 낳은 후 몸조리를 잘못하여 죽고 만다. 마을 사람들은 부인의 인품을 기려 장례를 치러주며, 젖동냥을 다니는 심봉사를 측은히 여겨 청에게 젖을 먹여 준다. 심청은 잔병 없이 성장하여 육칠 세가 되자 아버지를 앞에서 인도하기에 이르고, 십일 세가 되자 인물과 효행이 인근에 자자할 정도이다. 십오 세에 이르러서는 길쌈과 삯바느질로 아버지를 극진히 공양한다. 인물이 뛰어나고 재질이 비법한 청을 장승상 부인은 수양딸로 삼고자 하나 청은 아버지를 생각하고 거절한다. 어느날 늦게 돌아오는 딸을 마중나간 심학규는 개천에 빠져 허우적 거린다. 이때 그곳을 지나던 몽은사 화주승이 그를 구해주고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하면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라고 귀뜸해 준다. 심학규는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에 앞뒤 가릴 겨를도 없이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하겠다고 약속한다. 이후 심학규는 자신의 어리석은 약속으로 고민한다. 이를 알아차린 청은 남경 상인들에게 자신의 몸을 판다. 청은 인당수의 제물이 되는 댓가로 받은 공양미 삼백 석을 몽은사로 시주하고, 아버지에게는 장승상댁의 수양딸로 팔렸다고 거짓말을 한다. 배가 떠나는 날이 되자 청은 승상 부인을 찾아가서 작별 인사를 하고 아버지에게 하직 인사를 한다. 뒤늦게 전후 사정을 알게 된 심학규는 원통해 하지만 별 수가 없다. 인당수에 당도한 남경 상인들은 제를 올린다. 청은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걱정하면서 인당수에 뛰어든다. 바닷속에서 청은 용궁으로 모셔지며, 후한 대접을 받고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 곽씨 부인을 만난다. 꿈같은 용궁생활을 하다가 청은 연꽃을 타고 인간계로 나온다. 남경 상인들은 귀국하던 중 도중에 바다에 떠 있는 연꽃을 발견한다. 그 연꽃을 건진 남경 상인들은 상처한 송천자에게 이를 바친다. 천자는 매우 기뻐하자, 그 꽃속에서 청이 나온다. 천자는 청을 황후로 맞아 대례를 치룬다. 청은 행복한 가운로 이루어져 있다. 은 다양한 설화유형을 수용하고 있는데, '심봉사의 개안이야기'인 와 '선인들의 희생제의 이야기'인 희생설화를 수용한 주인공 심청의 일생을 그린 '영웅설화'가 그 근간을 이룬다.을 이루고 있는 구조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1 심청은 가난한 맹인의 딸로 태어난다.2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의 손에 양육된다.3 자라서 아버지를 봉양한다.4 맹인 아버지가 개천에 빠져 지나던 몽은사 스님이 구해준다.5 심청이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할 것을 약속한다.심청이 아버지를 위해 남경선인들에게 몸을 팔아 희생한다.용궁에 갔다 다시 돌아온다.천자에게 보내져 왕후가 된다.맹인잔치를 열어 아버지를 다시 만난다.심봉사가 개안을 하며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산다.전체적으로 보면 가난하고 미천한 맹인의 딸로 출생한 심청이 영웅적인 자기희생을 통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고 지존한 천자의 황후가 되어 부귀영황를 누리게 된다는 전형적인 영웅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출생 - 성장 - 시련의 극복 - 성취 - 행복한 결말의 구조)그리고, 은 인당수에 투신하기 전의 이야기와 용궁의 이야기 그리고 황후가 된 이야기는 심청의 신분과 부수적 인물 그리고 공간적 배경이 바뀐 점에서 별개의 독립된 구성으로도 볼 수 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심청과 심학규의 관계가 중심이 되며,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심청과 용왕의 관계가 중심이 된다. 그리고 세 번째 이야기는 심청과 천자의 관계가 중심이 된다. 따라서 이 소설의 구성 유형은 복합구성으로 볼 수 있다.3) 인물의 인물구성은 여타의 고소설에 비해서 몇 가지 특이한 면을 가진다. 그 가운데 두드러진 것은 인물의 구성이 비교적 단조롭다는 점과, 인물간의 갈등이 작품의 중심 소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같은 특성은 특히 경판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여기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심청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으면서도 그 성격도 대동소이한다. 심봉사, 화주승, 남경 장사 선인들, 천자 등 심청의 주변인물들은 별다른 개성을 갖지 않고 특별한 활동도본다.
    인문/어학| 2000.12.11| 13페이지| 2,500원| 조회(1,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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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라는 화두
    9881019 국어국문학과 3학년 김남순'자유라는 화두' 간략히 보기현대 한국에서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자유를 제약하는 정치· 경제· 사회의 억압에 대한 한 인간의 비판과 저항인가, 아니면 부족한 자신의 존재를 은폐하기 위한 논리인가를 재단하는 담론. '자유라는 화두 - 한국자유주의의 열 가지 표정'은 바로 그것에 관한 책이다. 문학, 예술, 여성운동, 사회비판 영역에서 한국인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면서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들의 인생 드라마가 '자유'라는 화두 아래 전개된다.일제시대 페미니스트로서 자유연애·이혼을 주장하고 실천하다 해방 후 모차르트처럼 외롭게 병사한 화가이자 문필가 나혜석, 수필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로 독일 유학과 간호사 수출을 충동질한 자기중심적 낭만주의 독문학자 전혜린, '나'는 전체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군사독재에 저항했던 소설가 최인훈, 자본주의 후진 변방국 한국의 모든 억압에 대항한 잡지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을 세상에 내놓고 40대 삶을 마감한 문학비평가 김현, 반미주의가 충천할 때 영어공용어화를 주창했던 소설가 복거일,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 풀'처럼 자유를 향한 고뇌와 절망을 부르다 간 시인 김수영,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며 엽기적 섹스를 형상화하다 필화를 당한 국문학자 마광수,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포르노와 '나쁜 영화'로 한국의 가위질 영화체계를 뒤집어엎은 쾌락주의 영화감독 장선우, 모든 것이 '자유를 위해서' 였다며 춤출 때 춤추는 것은 내가 아닌 '무아'라고 갈파한 무용가 홍신자, 그리고 지식인의 비겁함과 가식을 폭로하며 한국사회의 마지막 성역과 금기를 깨기 위해 홀로 '일인저널리즘'을 투사처럼 실천하고 있는 언론학자 강준만 등 10명의 한국 자유주의자가 이 책 속에 등장한다.이들의 공통점은 시대를 너무 앞서가다 자유의 이면인 질곡에 스스로 묶여버린 개인주의자들이다. 그들은 모두가 한국 사회에 너무 빨리 태어난 죄로 바지자락 잡고 늘어지는 '물귀신들' 때문에 절망과 고뇌로 점철된 자기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적당히' 한국사회에 적응하며 사는 듯 마는 듯 사는 평범한 인간들에게 그들은 항상 눈에 가시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있었기에 그리고 아직 건재하기에 아직 세상 살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때로는 창과 방패를 든 기사 돈키호테처럼, 때로는 4월이면 숨막히는 향기를 발산하는 라일락처럼 그들에게서 젊은 심장의 피가 역류하는 열정과 비 갠 후 달빛 아래서 느끼는 인간애가 발견된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오염되지 않은 자유주의자'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싶다. 이 책의 총론을 쓴 좌파 사회학자 김동춘 교수는 그들의 자유주의를 '레토릭으로 남은 한국의 자유주의'라고 비아냥거리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그들이 마음과 머리로 실천한 자유주의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자유를 위해 살고 자유를 위해 죽었고,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자들이다.그들은 동시대인들이 자신들의 자유 논리를 인정할 수 없는 고집과 무능력에 대해 슬퍼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그들이 닫힌 한국사회의 적을 경고하며 큰 소리로 외칠 수 있었던 자유는 그 외침 소리를 듣고 우리 각자의 생존을 알아서 챙기라는 파수꾼의 경고였다. 동시대인들이 간파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적,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 자들을 깨닫게 해준 선각자들이 있었고, 있기에 우리는 지금 이 사회에서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도마에 오른 자유주의자 실체자유라는 테마를 체득해 살아온 지식인들은 어떤 표정으로 이 시대에 서 있는가. 한국자유주의의 열 가지 표정'이란 부제가 붙은 '자유라는 화두'는 자유를 지향한 10명을 통해 자유의 의미, 시대와 자유의 상관관계 등을 캐내고 있는 한국자유주의의 인물 스펙트럼이다. 김현·복거일·강준만·김수영·최인훈·전혜린·장선우·홍신자·나혜석·마광수씨. 이들이 자유란 화두의 주인공들이다. 진중권·한수영씨 등 10명의 소장 평론가들이 그들에 대해 비평의 칼날을 들이댄다. 때론 의미 부여로, 때론 예리한 질책으로. 작업에 앞서 성공회대 김동춘(사회학)교수는 글읽기에 임하는 자세를 가다듬게 해준다."과거 자유주의자의 다수는 반공자유주의자·민족 허무주의자·얼치기 근대화론자 등이었다. 곧 한국 자유주의 역사는 한국의 사상적 불구성의 역사다. 군사독재를 거치면서는 상당수의 자유주의들이 냉소적인 인간이 될 정도였다"는 것이다. 이런 질곡 속에서 신산(辛酸)을 맛보며 얼굴을 내미는 몇 안 되는 자유주의자들. 시인 김수영은 개인주의의 승리자로 비춰진다. '잡놈이 오입을 하면 추태가 되지만 김수영이 오입을 하면 시가 된다'는 표현이 회자될 정도로 독특한 개성을 확립한 그. 사소한 일상에서 늘 사회문제를 시로 고발했으며 거창한 이데올로기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느끼는 대로 말하고 행동한 시인. 소장국문학자 노철씨는 ''그는 자유를 구가하기 위해 모든 제도를 전복해야 했다. 그래서 서구의 맹목적인 추수나 냉전 이데올로기의 폭압적인 질서를 거부했다"며 그의 자유주의를 '국적 있는 자유주의'로 평가한다.그러나 김지하씨의 '김수영은 풍자 아니면 자살'이라는 표현처럼 현실적으로 자유실천의 전망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은 김수영의 맹점으로 지적된다.김수영에 비해 영화감득 장선우의 자유주의는 부드럽고 여유롭다. 70년대 비판적 지식인에서 80년대 민중주의자로, 그리고 90년대 해체주의자로 면모를 바꾼 변신의 힘도 돋보인다. '우묵배미의 사랑' '너에게 나를 보낸다' '꽃잎' '나쁜 영화'등이 보여주는 체제 거부적 스타일과 어느 곳에 안주하지 않는 유동성. 영화평론가 김영진 씨는 장선우 감독을 기존의 통합된 가치를 부정하는 영화적 자유주의자로 표현한다.
    인문/어학| 2000.12.09| 3페이지| 2,500원| 조회(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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