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들어가기Ⅱ.본 문1.언론의 기능2.언론의 임무3.한국언론의 실태사례-1)사례-2)사례-3)사례-4)Ⅲ.맺 음 말Ⅰ. 들어가기20C 최고의 정치평론가로 유명한 W. Lippman은 그의 저서 에서 "Mass media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상을 만든다(Mass media makes pictures in our head.)"라 말했다. 점차 사회가 다양화, 전문화 됨으로 인하여 현대인들은 직접경험을 통해서 지식을 축적하고 가치관을 형성해 나아가기 보다는 정보화사회의 발전에 힘입어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가치관을 형성해 나아간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와 가치관이 일부의 세력에 의해 조작되고 우리의 가친관이 그러한 이들이 의도한 방향대로 형성되어가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매스미디어가 세상을 어떤 식으로 그려내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식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특정 사회 현실에 대한 자신의 견해나 판단조차도 알게 모르게 매스미디어의 영향을 받기 십상이다. 어쩌면 '의존'이 아니라 '종속'이라는 표현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예컨대, 주요 신문들이 그날의 1면 머릿기사로 무엇을 다루고 어떠한 논점으로 몰고 나아가냐에 따라 여론이 흘러가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에 그 의미를 보다 실감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한국언론이 처한 諸 문제는 W. Lippman의 命題에 담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Ⅱ. 본 론1. 언론의 기능언론은 저널리즘(Journalism)이라고도 하고 뉴스를 취재하고 보도하는 활동을 일컫는다. 언론의 행하는 역할, 즉 기능에는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순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역기능이다. 일반적으로 사회에 바람직한 긍정적인 기능을 순기능이라고 말한다.언론은 무엇보다 환경감시의 기능을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문의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환경에 적응하게 한다. 언론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사회 현실에 관해, 그리고 그 사회의 주요 인물들의 언행에 관해 사회 성원들에게 뉴스의 형태로 정보를 제공한다. 보도 매체는 말할 것도 없고 오락 매체라 하더라도 그 내용은 직접, 간접으로 사회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어떤 정보를 제공한다. 그래서 언론은 사회 성원들이 자신들의 환경을 감시하고 위험에 대처하여 생존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언론이 전하는 정보는 때로 허위이거나 조작, 왜곡된 것이어서 사람들을 기만하기도 하고, 무의미하고 무익한 것이어서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고 세상사에 무감각하게 만듦으로 인하여 현실도피적인 역기능을 하기도 한다.언론은 사회적 조정 역할을 한다. 언론은 사건과 정보를 설명하고 해석하고 평가한다. 그것은 합의를 창출하고 여론을 형성하고 갈등을 해소하도록 한다. 언론은 또 정부나 기업이나 그 밖의 사회 조직들을 감시하고 견제한다. 그것은 사회 규범을 강화하고 일탈을 방지하는 데도 기여한다. 그러나 언론은 진정한 여론 형성보다는 강자를 위한 여론 조작에 기여하기도 하고, 정의롭지 못한 기존 질서에 대한 사람들의 순응성과 적응력을 높여서 그것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언론은 사회화의 기능을 수행한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사회의 전통과 규범을 가르침으로써 사회구성원들에게 바람직한 기준을 제공하고 사회의 적응에 도움을 주며 일탈행위를 규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언론은 사람과 사람간의 교류를 줄이고, 사람들의 가치와 사고 방식을 획일화, 표준화 등을 통해서 문화의 다양성과 독창성을 감소시킨다.언론은 오락을 제공한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거나 기분을 전환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하는 오락 수단을 제공한다. 그것은 예술, 특히 대중 예술의 창조와 발전에 기여한다. 그것은 또 사람들에게 고급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그들의 문화적 수준을 고양시킨다. 그러나 언론은 그 일반적인 저급, 선정적 문화로 예술의 수준을 퇴락시킨다. 그것은 또 사람들에게 정치감각을 둔하게 하고 현실을 도피하여 환상 속에 빠져들게 함으로써 현실의 변화보다는 그것의 유지에 기여하도록 한다.2. 언론의 임무우선 언론은 물리적, 사회적 환경 감시를 해야 한다. 특히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견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언론의 지식과 정보로 무장되고 건전한 비판의식을 갖춘 시민(市民)을 형성해야한다. 마지막으로 언론은 민주 사회의 전통성의 토대가 되는 건전한 여론을 매개하고 형성하는 공론장의 역할을 해야 한다.이는 언론의 역할이, 임무가 단순한 사실 보도에만은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언론은 진실을 보도하고 사건의 본질을 파헤침으로써 올바른 여론 형성과 사회 계도의 역할을 선도하는 매체이다. 이러한 언론의 역할과 힘을 빗대어 '언론은 제4의 권력'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3. 한국언론의 실태하지만 지금까지의 한국 언론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보기에는 큰 무리가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언론은 시녀임을 자부하고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과거 군사정권 시대에는 사실을 은폐, 축소, 왜곡 보도하였는가 하면 문민정부이래 정부권력의 예속에서부터 점차 해방되면서 각 언론사는 금권력에 예속되기 시작하였으며 자신들의 논조를 주장하기 위하여 편집과정을 통하여 같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사건을 왜곡, 축소 보도한 경우가 많다.48면에 이르는 신문지면에 광고를 포함하여 그 방대한 현실세계를 모두 다룬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현실과 신문지면 사이에 불가피하게 놓이게 된 여과장치가 바로 편집인 셈이다. 취사선택의 과정이기도 한 편집에는 가치 판단이 항상 개입하기 마련이다.다음은 각 신문사의 관점과 그에 따른 보도 형태를 비교, 분석한 내용과 당시 사회의 권력 즉 정권에 의하여 사건을 축소, 은폐 보도한 사례들이다.사례 - 1)예컨대 1996년 3월 11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재판을 전하고 있는 신문들을 들춰보다. '세기의 재판'운운하며 요란했던 재판 현장에서 발생한 폭행사건 보도를 보면, 그 내용이 신문에 따라 다른 점을 확인할 수 있다.의 표제) 『동아일보』 96년 3월 12일자 3면방청석서 全-盧씨에 욕설 "시끌"姜慶大부친-全씨 세아들 오전퇴정때 몸싸움의 표제) 『조선일보』 96년 3월 12일자 제2사회면(46면)故강경대군 아버지 법정서 항의全-盧씨에 "살인마"고함 측근과 몸싸움의 표제) 『한겨레신문』 96년 3월 12일자 사회면(23면)전씨 아들 법정서 방청객 폭행강경대씨 아버지 "사죄하라"외치자 가족들 우르르 주먹.발길질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동일한 사건이지만 보도하는 기자에 따라 시각차가 있음을 보게 된다. 취재기자의 관점과 그에 따른 내용이 다른 기사와 차이가 있는 을 일단 제외하더라도 기사 내용이 대체로 비슷한 과 의 표제가 확연히 다르다.우선 의 표제는 방청석에서 전두환 노태우씨에게 욕설을 하여 법정이 시끄러웠다는 점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 반면, 의 표제는 고 강경대군의 아버지가 법정에서 항의한 것에 역점을 두고 있다. 한편 의 표제는 기사와 동일한 문맥에서 전씨 아들이 법정에서 방청객을 폭행한 사실이 보다 강조하고 있다. 대개의 독자들이 표제를 먼저 일고 다음 기사를 읽는 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그러한 차이는 실상 독자들의 인식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다만 여기서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은 과 는 사건의 전말을 상세하게 소개하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행사된 법정 폭행을 쌍방간의 단순한 몸싸움으로 왜곡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분명한 사실 왜곡이 아닐 수 없다.사례 - 2)신문마다 편집의 눈이 다르고 그 눈에 따라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같은 사실을 각 신문들이 똑같이 1면 머릿기사 소재로 다루었을 때로 극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전두환-노태우 재판을 다룬 주요 신문들의 1면() 『조선일보』 96년 3월 12일자 1면, ) 『동아일보』96년 3월 12일자 1면, ) 『한겨레신문』 96년 3월 12일자 1면)을 비교해 보자. 세 신문 모두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이 12.12 군사반란 및 5.18 내란사건 첫 공판이 열린 대법정에 나란히 선 사실을 1면 머릿기사로 보도하고 있다. 세 신문의 1면 편집에서의 공통점은 모두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 선 사실을 전단 표제로 보도하고 사진을 돋보이게 편집하고 있다. 하지만 세 신문은 표제 내용에서는 현저한 차이점을 보인다. 독자들은 여기서 신문편집의 그림이 지면 구성뿐만 아니라 현실의 내용까지도 다르게 보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조선일보』의 편집은 에서 보다시피 두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 함께 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공판에서 나온 검찰측과 변호인단의 주장을 똑같은 비중을 두어 표제로 작성했다. 한편 『동아일보』는 ,처럼 12.12의 두 주역 전두환-노태우씨가 역사 앞에 섰다는 점을 부각처리하고 있다. 한편 『한겨레신문』은 표제는 에서 볼 수 있듯이 '성공한 쿠데타'가 법정에 섰다는 사실을 크게 강조하고 변호인단 주장을 검찰의 말을 빌려 부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공판을 바라보는 세 신문사의 시각이 시면 그림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 그림에 따라 독자들의 시각 또한 자신도 모르게 세 신문의 편집시각에 동화된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각 신문 1면의 주먹만한 표제 글자가 기사를 읽어가는 독자들에게 선입견을 주입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논조와 관점을 주입함으로써 독자들의 뇌리에 박히게 된다.
Ⅱ- 1 . 남녀고용평등법남녀고용평등법은 여성차별철폐 라는 국제적인 운동과 흐름을 같이하여 1987. 12. 4 제정(법률 제3989호)되었다. 이 법의 제정 목적은 헌법의 평등이념에 따라 고용에 있어서 남녀의 평등한 기회 및 대우 보장과 모성을 보호하고 직업능력을 개발하여 근로여성의 지위향상과 복지증진에 기여하는데 있다. (법적근거 헌법 제11조 1항, 제32조 4항, 제34조 3항, 제36조 2항)남녀고용평등법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첫째,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대우 금지와 직장내 성희롱의 예방 차원에서 직장내 성희롱 예방 교육의 실시와 성희롱자에 대한 징계 등이다. 이는 직장내 만연화 되어있던 성희롱을 남성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일깨워 줄 뿐 아니라 예방차원에서도 효과가 있다. 둘째, 고용에 있어서 남녀의 평등한 기회 및 대우를 보장하기 위하여 모집, 채용, 임금, 교육, 배치, 승진, 정년, 퇴직 및 해고 등에서 남녀간의 차별을 금하고 있다. 이는 여성들의 직장내 성차별에 의한 불이익을 사전에 예방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셋째, 결혼직후 여성의 취업률 하락에 따른 여성의 고급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여성의 자유로운 사회활동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기 위하여 사업주 및 국가와 지방단체가 보육시설 및 복지시설의 설치를 규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분쟁의 조정을 위해 고충처리기관의 설치를 의무화 하였으며 분쟁해결에서의 모든 입증책임을 사업주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목차Ⅰ. 들어가는 말Ⅱ. 연기법이란?Ⅲ. 맺는 말Ⅳ. 참고문헌Ⅰ. 들어가는 말불교와 인간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경험한 불교는 어떤 것이었는가 , 또 내가 불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어렸을 적에 부처님오신날 처럼 절에 큰 행사가 있었던 날,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서 연등을 달고 튀각을 먹었던 것과 수학여행 때 석굴암, 불국사에 갔던 것이 내가 경험한 불교의 전부이다. 경험한 것이 이렇게 적은데, 아는 교리를 꼽으라면 말문이 더욱더 막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이 보고서에서는 여러 참고자료를 통해 살펴본 연 기법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더 정리를 해보고, 이 보편적 진리가 내 삶에서는 어떻게 존재하여 왔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Ⅱ. 연기법이란?《도간경(稻竿經)》에 연기를 보는 자는 붓다를 보게되고, 붓다를 보는 사람은 진리(法: dharma)를 보게된다 라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 또 《중론송(中論頌)》에서는 용수가, 연기를 올바로 보는 사람은 고집멸도 사성제를 터득하게 된다 라고 말했단다. 2500여년을 면면히 이어온 불교라는 고등종교의 핵심사상이, 지나가는 어린아이도 들어서 알만한 원인과 결과의 관계 라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나 허술하게 느껴졌다.나의 이러한 착각은 깨닫다 와 이해하다 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은 데에서 기인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석가모니 당시의 인도사회에는, 62見이나 363종의 논쟁 가가 있었다고 전해질 정도로 많은 사상가가 배출되고 여러 주장들이 난무하였다고 한다. 불교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주장가들이 外道였으며, 이러한 外道들이 현실을 관찰하는 입장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었다. 신의론, 숙명론, 우연론이 그것이다. 신의론이란 정통바라문들의 입장으로서, 신의 의지에 따라 현실이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신의론이 궁극적 진리라면, 현실에서의 인간의 창조적 노력을 뒷받침해 줄 수 없다는 허점이 있다. 또한 죄악을 짓는 사람의 행동 또한 신의 뜻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에 의해, 죄악이 만연된 사회가 될 것이다. 두 번째로 숙명론의 경우 과거에 지은 것이 원인이 되어 현생이 이루어진다는 입장이며, 무인무연론이라고도 불리는 우연론 또한 앞의 두 가지와 함께 연기법과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오늘날을 사는 우리는, 석가모니가 깨달으신 연기법의 구성과 그 내용을 배우고 알 수 있다. 그러나 석가모니 당시의 인도의 사상계에서 볼 때, 연기법이라는 것은 새로운 현실관찰법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연기법이라는 그 법칙성은 석가모니가 깨닫기 전에도 존재했던 것으로 단지 깨닫고 못 깨닫는 차이가 있을 뿐이며, 연기의 깨달음은 인간의 존재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 결정적 계기가 된 셈이다.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한다(此有故彼有 此生故彼生) 또는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 라는 연기의 이치는 모든 존재의 발생과 소멸에 적용할 수 있는 까닭에, 석가모니가 출가하시게 된 生과 死의 문제가 이 연기의 법칙으로 풀릴 수 있었던 것이다.석가모니는 연기의 존재론을 무상이라는 표현으로 제기함으로써, 거기서 苦, 無我의 결론으로 유도하고 있다. 무상한 것은 고다 라는 선언은, 출가시의 과제인 苦와 연기를 관계지은 것이다. 일체의 존재는 그럴만한 조건이 있음으로 해서 존재하는 것이며, 그 조건이 없어지게 될 때 그 존재는 소멸하게 되므로 항상함이 없다. 영원하지 않고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다. 괴로운 것은 나가 아니고, 나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란 영원하고 자재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체법은 무상하고 괴로움이므로 나의 실체라고 하지 못한다. 연기의 법칙 위에 무상의 원리가 세워지고 무아의 도리가 그것을 근거로 하여 주장된 것이다.석가모니는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할 것을 강조하셨다. 무상한 것을 무상하다고 보고, 무아인 것이 무아로 인식되는 것이 明인데 이것이 바른 지혜이다. 명은 존재가 그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인데, 이 명이 없는 것을 무명이라 하고 무명으로 인해 괴로움이 일어남이다. 연기법을 대표하는 12연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 무명이고, 이 무명은 인간 고뇌의 지적 원인인 것이다.Ⅲ. 맺는 말이번 보고서를 준비하면서, 불교의 연기법이 흔히 듣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라는 속담이 내포하는 뜻 외에 상의상관성이라는 철학적 심오함 내지는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내가 스스로 자부심을 가졌던 점이나 내가 남을 탓했던 부분까지도, 홀로 존재하는 사실이 아니라 원인에 의해 일어난 것이고, 그 원인이라는 것은 나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많은 것들이 인연에 인연을 거듭한 것이며, 인연의 결과 또한 또 다른 원인이라는 생각을 하니, 평소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런 식으로 생각을 전개해보면, 정말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는 말이 절실히 다가오게 되어 無我의 개념이 내 삶 속에서 이해 가능케 된다.
Ⅰ- 6. 한국사회에서의 여성의 경제활동(가사일 제외) 참여의 특징과 노동시장 에서의 성불평등의 원인에 대하여 논하라.1) 서 론21세기는 여성의 세기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형직적으로나마 향상되었을 뿐 실질적인 지위향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는 한국사회의 경우 전통적 봉건제 사회로부터 제국주의의 급속한 팽창속에서 급격한 자본주의화 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여성의 지위를 약화시키고 억압하였기 때문이다.2) 본 론 1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의 특징사회가 점차 고도의 산업화 사회가 되어갈수록 여성의 사회적 노동에의 참여는 더 이상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60년대 이후의 급속한 경제발전은 한국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를 급속히 증대시켰다. 이는 전통적으로 남성만의 직종이라 여겨지던 분야에까지 급속히 확대되었으며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지속적인 경제성장, 그리고 이에 따른 여성의 사회참여 욕구 증대에 의한 것이었다. 현재 많은 여성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중요한 노동력의 일부로써, 노동자의 지위를 획득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 취업의 증대는 곧바로 여성의 지위 향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성노동의 증대추세에도 불구하고 유무형의 불평등에 대한 지적은 계속되어왔다. 이는 기본적으로 여성의 역할을 가정 내로 한정짓는 뿌리깊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양적 확대에 걸맞는 법적 제도적 장치의 미비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라 볼 수 있다.우리나라 여성의 취업률은 다른 선진국에 비하여 그리 저조한 편은 아니지만 비정상적인 연령별 취업률을 보이고 있다. 우리사회의 여성취업구조는 일본과 비슷한 M자 형태를 띄고 있다. 15∼19세 사이, 60세 이상에서 다른 나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은 참가율을 보이고 있다. 더 특징적인 것은 한국 여성의 경우 결혼을 하는 연령층인 30∼34세까지의 참가율은 결혼 전 시기보다 현저한 감소를 보이고 있고 다시 아기를 낳고 적당히 컸을 때 다시 경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여 아무리 경제 활동 참가율이 다수의 나라보다 높다고 하여도 그것은 비정상적인 것이다. 활발히 경제 활동에 참여한 연령층 덕분이 아닌 소녀나 고령자에 의해 높아진 수치인 것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나라에서의 여성의 낮은 지위와 그에 따른 어려움을 엿볼 수 있다. 공부할 나이의 소녀가 참가율이 많다는 것은 경제적 빈곤으로 인하여 교육의 기회가 부족하다는 것이고, 고령자의 참가율이 많다는 것은 연금제도나 복지시설 등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참 경제 활동이 왕성할 나이에 결혼하거나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경제 활동에 제약을 받는 것은 국가의 경제발전에 크나 큰 장애요소가 된다고 생각한다.3) 본 론 2노동시장에서의 성불평등의 원인여성의 비정장성인 취업률 해결에 대한 해법과 개선 노력 또한 미약하게나마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이해가 없이 제기되는 남녀간 불평등에 관한 논의는 자칫 감정적이고 표면적인 수준에 머물러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라 본다. 따라서 노동시장 내 성에 따른 불평등을 설명하는 보다 큰 틀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성적 불평등의 원인에 대한 시각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기업의 이윤추구의 집중성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이 같은 일을 할지라도 여성은 생리적인 문제와 출산의 의무로 인하여 여성의 장기적인 능력이 떨어진다고 기업의 경영자들은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업의 목적을 이윤추구에만 둔다면 기업에서 여성의 차지하는 비율이 늘어남에 따라 기업의 이윤확대에 반비례된다. 그래서 여성의 사회진출이 힘들어 진다. 다른 하나는 탁아문제이다. 출산후 아기의 양육은 커다란 문제가 된다. 아기의 양육은 여성의 고유업무라는 고정관념과 국가나 기업체의 탁아시설의 미비로 인하여 결혼 직후 경제활동이 활발한 여성의 사회진출을 저지하고 있다.
Ⅰ- 5. 조선시대 중기 이후 근대화 이전의 여성의 지위에 대하여 논하라.1) 서 론태조 이성계와 그의 무리들이 역성혁명을 하며 불교를 타파하고 새로운 이념으로 내세운 성리학은 여성들에게 무엇을 의미하였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성리학 하면 男尊女卑, 三從之道, 七去之惡 등 여성의 인권을 제약하는 단어들을 상기한다. 그렇다면 유학은 본래부터 남성 중심적 사상이었으며 조선시대 초기에도 여성들은 칠거지악에 얽매이는 삶을 살았을지 의문이다.2) 본 론 1조선초기의 성리학과 여성의 지위유교에서 만물의 생성은 하늘의 원리와 땅의 원리의 감응과 교감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가령 여성적 원리(땅)와 남성적 원리(하늘)의 관계 맺음에 의해 인간이 출생하게 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즉, 이러한 천과 지 또는 남과 여는 각각 자신의 원리를 가지고 대등한 관계를 맺는 존재였다. 그러므로 유교 본래의 이론에는 男尊女卑, 三從之道, 七去之惡 등의 관념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조선초기에는 제사를 반드시 아들만 지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까지 養子弟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후대로 갈수록 양자제가 일반화되어갔으며 조선 초기까지는 양자제가 일반화된 습속이 아니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양자와 딸이 있을 때 딸에게 재산권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조선초기에는 후기에 비하여 여성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았으며 종법정신에 의한 강력한 부계중심의 가족 질서가 아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3) 본 론 2조선중기 이후 근대화 이전 여성의 지위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봉건사회 해체기로 불리는 18세기 이후는 가부장권이 보다 강화되는 시기였다. 문중으로 대표되는 부계집단의 결합이 강화되었고, 그 결과 여성은 가정에서의 내조자로서 굳어져갔다. 결혼제도가 며느리가 시댁으로 들어가는 시집가기 로 정착되면서 여자들은 시집살이 라는 새로운 고난을 짊어졌다.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익숙하고 바라는 여인상은 바로 이 시기에 와서 비로서 정착한 모습이다.그렇다면 여성들에 대한 규제가 보다 보수화된 배경은 무엇인가?가장먼저 성리학적 이념의 정착을 꼽을 수 있다. 양란이후 양반들은 문란해진 사회기강과 윤리를 회복하기 위해 禮 를 강조했다. 그 결과 예학이나 족보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였고, 가족제도 또한 적장자 중심의 부계직계제도로 강화되었다. 부계혈통의 순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여성의 순수성을 강요하였다. 또한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시행한 여성 교화 사업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여훈서 를 발행하기도 하였으며 열녀를 기리기 위해 그 집이나 마을 앞에 붉은 문을 세워주거나 쌀과 옷감 등 각종 물품으로 포상하기도 했다.하지만 18세기 이후 조선 사회는 사회 전반의 생산력 증가와 그에따른 신분제도의 붕계와 서민층의 생활 수준 향상에 힘입어 서민 문화가 꽃을 피운 시기였다. 여성에게 일어난 큰 변화는 한글소설의 보급에 따른 독서 인구의 저변 확대였다. 또한 18세기 후반 성리학적인 사회 질서에 갇혀 희생만을 강요받던 여성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 것은 천주교였다. 초기 천주교의 신자들이 핍박받던 하층민과 여성을 중심으로 전파된 것은 당시 사회의 지도이념을 여실히 반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