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59년 {자유문학} 10월호 , 이 추천되 어 문단에 나온 이후 1960년 , 등을 발표하면서 작가의 명성을 굳혔던 최인훈은 1966년 이 작품으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 작품의 명칭은 무엇일까요?▶정답 : 2. 이 거둔 문학적 성과에 대하여 이른바 4월 혁명의 문학적 적자 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이러한 평가의 근거는 무엇일까 자신의 생각의 근 거를 밝히시오.▶정답 : 4·19가 일어난 지 6개월 뒤인 1960년 10월에 발표된 은 4월 혁명의 문학적 적자라 이를 만했다. 동리 류의 무시간적 토속성이 아니면 장용학의 관념과잉, 또는 손창섭의 자연주의적 현실비판의 지배 아래 있던 당시 소설 풍토에서 지적 깊이와 세련된 감각을 아울러 갖춘 의 출현은 문학에서의 4월 혁명과도 같았다. 무엇보다도 북진통일론만을 인정하던 지배 이데올로기의 틀을 벗어나 남과 북의 체제를 비교적 공정하고도 객관적으로 평가한 대목은 `혁명'이 열어놓은 자유의 숨구멍으로 해서 가능했었다. 물론, 작가가 밀실과 광장이라는 개념을 먼저 상정한 다음 남과 북의 현실을 그에 꿰어 맞추었다는 식의 비판으로부터 무한정 자유롭지는 않지만, 이 거둔 성과는 그 같은 비판의 날을 한결 무디게 한다.그리고 이 작품이 갖는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남북 분단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본격적인 장편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를 다룰 수 있었던 것은 4.19 때문이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4.19에 의해 남북 분단을 정면으로 다룰 수 없다는 금기가 깨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소설은 4.19혁명으로 그 열기가 구석구석 스며들어 형성된 사회적 분위기가 큰 몫을 했다. 4.19혁명의 승리가 없었다면 우리는 '광장'을 볼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남쪽에는 밀실만 있고 북쪽에는 광장만 있을 뿐"이라고. 남북 양 체제를 동시에 겨냥한 이러한 비판의식은 당시 4.19혁명이 가져다 준 자유의 공기를 감안하더라도 몹시 놀라운 소설적 상상력이 아닐 수 없다.3. 의 주제와 관련하여 광장 과 밀실 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지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시오.▶정답 : '밀실'이란 자신만의 내밀한 삶의 공간이다. 즉, 자기 중심적인 세계이며 타인의 간섭을 안 받는 개인적인 세계를 의미한다. 그리고 '광장'이란 사회적 삶의 공간을 의미한다. 그것은 사회 중심적인 세계이며 개인적인 존재 가치가 침해되기도 한다.바람직한 인간의 삶이란 이 두 가지 삶의 방식의 상호 관계와 작용 속에 균형을 이루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한 사회의 역사적 조건과 상황을 주체적으로 수용해 나가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 작품에서 이명준은 철학도로서의 밀실에서 현실적인 이유를 광장을 찾아 월북하고 광장에서 절망을 한 후 은혜와의 밀실을 기도한다.결국 이명준이 최후에 선택한 바다는 이념이 배제된 밀실이며 사랑이 성취되는 광장이라 할 수 있다.4. 인천 부두에서 밀수선을 알선해 준 선술집 주인을 일컬어 의 주인 공 이명준은 수태고지의 천사라는 비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수태고지 설화에 대하여 아는 대로 쓰시오.▶정답 : 수태고지 설화는 천사장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내려와서 마리아가 처녀로서 예수를 잉태했다는 것을 그녀에게 알려주고 경배했던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 교의 미술 테마로서 이 는 많은 화가들에 의해 즐겨 선택되었다. 마르티니, 봇티첼리 등 여러 화가의 명작이 있다. 이런 를 라고도 한다.5. 사회주의 체제가 갖는 모순과 문제점 때문에 좌절을 하면서 이명준은 눈 에 보이건 안 보이건 사람은 우상 앞에서만 운다 고 고백을 합니다. 주인 공 이명준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도록 만든 인간의 마지막 우상은 무엇 일까요?▶정답 :{폴란드 태생 독일의 혁명가. 폴란드 사회민주당과 독일 공산당의 전
{성명박이슬학번20013020학과명국어교육과강의명국어의 이해와 표현교수명백수현 교수님시인 고은에 대한 보고서시인 소개현실 참여의식과 역사의식을 시를 통하여 형상화한 현대 시인.- 본명은 고은태. 전북 군산 출생. 군산중학교 4학년까지가 공식적인 학력이다. 1952년 20세의 나이로 입산하여 승려가 되었다. 법명은 일초(一超)로 효봉선사의 상좌가 된 이래 10년간 참선과 방랑의 세월을 보내며 시를 써왔다. 조지훈 등의 천거로 1958년 《현대시》에 《폐결핵》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하였다. 1960년 첫 시집 《피안감성(彼岸感性)》을 간행하였고, 1962년 환속하여 시인으로, 어두운 독재시대에 맞서는 재야운동가로서의 험난한 길을 걷게 되었다. 1974년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를 출판하며 시인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였다.그 해부터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주회복국민회의, 민족문학작가회의 등에 참여하며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앞장서 왔다. 1983년 이상화(李相華)와 결혼하였고 20여 년간 지은 시들을 정리하여 《고은 시 전집》을 간행하였다. 1986년 《세계의 문학》에 《만인보(萬人譜)》연재를 시작, 그 해 《만인보》 1.2.3권을 간행한 이후, 1988년에 4.5.6권, 1990년에 7.8.9권을 간행하여, 다음해 《만인보》로 중앙문화대상을 받았다. 1993년 《백두산》 연작을 완성하였고, 1999년 《머나먼 길》을 출판하였다.▣ 주요수상 : 한국문학작가상(1974), 만해문학상(1988), 중앙문화대상(1991)시인의 시 세계- 고은의 초기시는 허무주의와 행려 의식과 평화와 철학이 그 배경을 이룬다. 또한 노장의 무위 사상 내지는 불교의 공 사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의 허무주의는 1950년대의 폐허를 배경으로 개인적인 방황과 연결되어 있는 듯 보인다. 이 허무 의식은 사사성(私事性)과 함께 초기시의 특징을 대표한다. 그것은 그의 스승이었던 미당 서정주와 유사한 면이라 할 수 있다. 고은은 서정주의 제자이면서도 그와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시인이다. 하지만, 그의 초기작을 보면 어느 구석에선가는 서정주와 유사한, 허무주의를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불안정하기까지 한 정서의 움직임을 표출하고 있고, 그러하면서도 허무의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몸부림의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그래서 당시 초기작들은 불안정한 정서 상태로 인해 매우 복잡하고, 관념적인 시들이 많이 나타나게 된다. 또, 다르게 생각하면 허무의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시인의 모습은 1970년대 이후의 시 세계를 암시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이 시절 그는 뛰어난 언어 감각과 예리한 감성이 결합된 시를 주로 썼다. 《문의 마을에 가서》를 발표한 이후부터는 어두운 시대상황과 맞물리면서 현실에 대한 치열한 참여의식과 역사의식으로 시 세계가 바뀌어갔다. 게다가 1980년 5월 이후부터 시작된 투옥, 고문, 연금은 그의 시에 커다란 영향을 주어 역사와 현실 참여를 노래하게 되었다. 그러나 영웅주의에 물들지 않고 진솔한 삶의 내면을 드러내 그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이루었다. 연작시 《만인보》로 시적 형상성을 얻은 뒤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통해 더욱 빛을 발하였다.▣고은 시 세계의 주제그의 시의 주제는 생활과 삶 그 자체이다. 생활의 터전인 땅과 그 위에서 생존해 가는 미미한 생명체에까지 이르러 소재를 삼고 있다. 작가는 그의 눈에 비치는 것이라면 어느 것이라도 그냥 무심하게 지나치지 않고 하나 하나에 작가의 세계관, 가치관을 투입하여 재조명하고 있다. 그의 시들을 살펴보면 소재면에 있어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특히 그의 시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민중의식의 반영'과 '실천적인 저항 의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1 민중 의식의 반영 : 민중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것은 그 한을 형상화하는 것이다. 고은은 그러한 한들을 나타내는 일정한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A → A' → B.C.D 제목 (사람 이름)은 각 개인들의 특징적인 성격을 요약하고 있다. A에 대 해 불리게 된 이유 또는 소재를 A'로 끌어낸 시를 써나간다. 그리고 일상 적인 토막들을 이용해 인물을 명확하게 나타내 주는데, , 와 같은 시들에서도 그 틀을 보여주고 있다.그리고 그는 가장 서민적인 시어인 한국적인 토속의 이름들을 사용한다. 서민적이기 때문에 천박하다는 식의 논리를 거부하는, 서민적이기에 더욱 한적이라는, 한적이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는 그 이름의 주인공들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고은은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2 실천적인 저항 의식 : 그의 생명 사상은 인간 존중 사상으로 연결된다. 그에게서 생명존중사상이란 바로 자유사상과 평등사상을 바탕으로 하며, 사랑과 평화의 철학을 지향한다. 그러한 점에서 불의한 힘이나 부도덕한 정권에 실천적으로 항거하는 저항 의식의 참뜻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시인의 대표작시인의 대표작으로는 , , 연작 시집 등이 있다.시인의 대표작에 대한 감상과 비평문의(文義) 마을에 가서(1974)- 고 은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거기까지 닿은 길이몇 갈래의 길과가까스로 만나는 것을.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뻗는구나.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문득 팔짱 끼어서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는가.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한 죽음을 받는 것을끝까지 사절하다가죽음은 인기척을 듣고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모든 것은 낮아서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시집 , 1974)- 라는 시를 읽고 무척 어려운 시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마음에 와 닿는 것을 느꼈다. 죽음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고, 많은 삶을 살아보지 않은 나로서는 아직 죽음과 삶의 경계, 그리고 그것에 감상을 갖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 시를 여러 번 읽어보고, 나름대로 해석을 접해보았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살아온 스무 해의 날들 중 단 한 번 죽음을 접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것은 고모부께서 몇 해 전 돌아가신 일이었다. 그 경험과 연관을 지으면서 시를 더욱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이 시는 모친상을 당한 신웅문 시인의 고향인 충북 청원군 문의 마을에 가서 장례를 주관했던 사실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에서 더욱 읽는 사람의 관심을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두 개의 연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시는 각 연에서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라는 첫 행으로 시작하는 것도 시선은 한 곳에 모아주는 듯 했다. 거기에서 얻은 시인의 깨달음 같은 것이 마치 누구나 느낄 수 있음직한 것인 듯 느껴졌다.이 시의 첫 연에서 보면 죽음으로 가는 길이 하나가 아님을, 여러 사연들과 사연들이 만나 죽음을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화자는 이러한 죽음을 신성 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시에 등장한 눈 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분명 이 시에서 눈이 내려앉은 마을에서 죽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화자는 눈 이 모든 세상을 죽음이라는 하나로 만들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개개의 사물을 빈부에 젖은 삶 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당시 현실을 살고 있는 이들의 가장 큰 문제인 빈부의 문제를 부각시킨 듯했다. 잠든 마을 이란 삶의 의욕이나 활동성이 사라진 적막한 마을을 나타낸다.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라는 말을 통해서 산과 마을이 하나가 된 모습을 형상화시키고 있다. 이런 모든 현실의 문제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눈 이라는 소재였다. 이런 해석을 알아가면서 이것은 고은의 초기시에 나타나는 단순한 허무주의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었느냐 라는 구절을 곱씹어보면 눈이 죽음을 덮을 만큼 대단한 것이지만 결국 덮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처럼 해석이 된다. 그것이 바로 지금 눈 덮인 문의 마을을 바라보는 화자일거라 생각되었다. 만약 눈이 화자마저도 덮고 있다면 화자는 모든 것이 허무라는 깨달음 자체를 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눈이 모든 것은 덮고 있지 않음을 깨달은 화자는 죽음과 허무가 아닌 무엇을 찾기 위해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는 행위를 통해서 잠든 마을, 즉 현실로 돌아가게 된다.
「나는 강을 따라서 하구까지 걸어가 마지막으로 남은 50미터 정도 되는 모래사장에 앉아 두 시간 동안 울었다. 난생 처음 그렇게 울어 보았다. 두 시간 동안 울고 나서 겨우 일어설 수가 있었다. 어디로 할 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나는 일어서서 바지에 묻은 고운 모래를 털었다.날이 완전히 저물었고, 걷기 시작하자 등 뒤에서 파도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나는 을 세 번 읽었는데, 그 때마다 이 마지막 부분은 언제나 나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예기치 않게 양을 둘러싼 모험을 하고 현실로 돌아온 나 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대학교에 와서 읽게 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무척이나 나를 매료시켰다. 너무나도 유명한 를 비롯하여 , , 등 한 작품을 읽고 나면 다른 작품이 빨리 읽고 싶어지는 그런 느낌의 작품들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하루키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내가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의 소설은 다른 일본 소설과는 달리 탈일본적이어서 거부감이 없었고, 그래서인지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내 생각에 그의 소설이 우리 나라에서도 그렇게 많은 인기를 얻은 비결은 그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언제나 그의 작품은 상실감, 공허감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허탈함만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의 상실감을 치유해 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는 인물의 내면 심리를 뛰어난 문장력으로 묘사하여, 나는 스토리 전개 이전에 문장력 그 자체에 매료되곤 했다.그러한 하루키의 소설 중에 어느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고민이 된다. 그의 작품을 읽은 사람이라면 대부분 를 최고라고 생각한다. 나도 이 소설을 감명 깊게 읽었다. 그렇긴 하지만 그 소설은 지극히 사실적인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에 짙은 감동은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공통의 문제를 다루는 소설은 아니기 때문에 나 자신이 깊은 생각을 하고, 많은 것을 성찰하는 기회가 되지는 않았다. 그에 반해 이라는 작품은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고도의 자본주 하루키의 소설은 거의 작품의 중심이 되는 스토리와는 거의 연관이 없을 법한 이야기로부터 시작을 한다. 마찬가지로 이 소설에서도 내용 전개와는 별다른 관련이 없는 그 여자아이의 사망 소식으로 시작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키 소설의 또 하나의 특징은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주인공은 나 ,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 그녀 혹은 친구 등으로 불리거나 별명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이다.그리고 나서 친구와 함께 광고업을 하던 중, 우익 단체의 거물의 비서라는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광고에 쓴 사진 속의 등에 별 무늬가 있는 양을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이 때에 그는 예지력이 있는 여자친구와 함께 양을 찾으러 떠나게 된다. 이렇게 양을 쫓는 모험은 시작된다.나는 이러한 소설의 전개를 보면서 참 새롭고 독특하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 우선 소설의 내용이 다소 관념적이어서 지루하고 어려울 수도 있는 점을 무언가를 찾아간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흥미를 잃지 않고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 이 소설을 읽을 때에 그렇게 느꼈던 것인데, 나중에 하루키의 작품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다른 여러 작품에서도 그런 점들이 나타난다. 에서는 핀볼 게임 기계를, 그리고 에서는 키키를 찾는 것이 이야기의 본 구조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추리 소설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기도 하였다.그리고 내가 새롭고 독특하다 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 다른 하나의 특징이 등장인물에게 있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나 의 여자친구는 예지력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그러한 능력을 이용하여 나 를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양 박사가 사는 돌핀 호텔로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이렇듯 이야기의 내용이 현실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가장 비현실적이고, 가상의 공간에서나 있을법한 일들을 그려내기도 한다. 요즘의 우리가 자주 접하는 소설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특징이라고 생각했다. 현대 사회를 사는 이들의 아픔을 사실적으 갔을 때부터의 이야기들은 소설 속에서 가장 인상깊은 부분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 부분의 내용은 처음에 읽었을 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난해한 내용이었다.나 가 여자친구와 함께 훗카이도의 사진 속의 목장에 도착했을 때 그것이 친구인 쥐 의 아버지의 소유였음을 알게 된다. 목장에 세워진 집에 들어가니 쥐가 일 주일 전까지 머물렀던 흔적이 있다. 그가 쥐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여자친구는 사라져 버리고 양 사나이가 나타난다. 나는 그에게 쥐의 행방과 등에 별 모양이 있는 양에 대해 묻지만 말해 주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거울 속에 나의 모습은 비치는데 양 사나이의 모습은 비치지 않음을 발견한다. 그러고 나서 쥐가 나타나서 자기 자신이 양사나이였음을 고백한다. 그는 자신이 이미 일주일 전에 자살했으며 그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쥐는 자신의 몸 속으로 들어온 양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양이 원했던 것은 자신만의 강력한 권력 기구를 만드는 것으로, 그렇게 하기 위해, 나에게 양을 찾아달라고 부탁을 한 우익 거물과 쥐를 이용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쥐는 자신이 원치 않은 지배를 받아 강해지기를 요구받는 것이 싫었고, 자신의 나약함이 좋아서 자신 속의 양이 잠든 틈을 타 자살을 했다고 했다.이 내용도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여기에서 나타나는 양과 쥐, 양사나이 또한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이나 대상이 아니다. 처음에 읽었을 때에는 도무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아 나의 한계를 탓하면서 다시 두 번을 더 읽어보고, 하루키의 문학 해설집도 읽어가면서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 그리고 이 소설이 , , , 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의 세 번째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 나머지 작품들도 모두 읽어보았다. 그 결과 이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질 수 있었다.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에서 하루키의 문학에 관심을 갖는 학자들이 굉장히 많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에서 발표된 연구논문만으로도 300편이 넘는다고 하니 이 소설에 대한 해석도 무척이나 다양할 수 었으므로 쥐는 껍데기뿐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 둘은 서로 몸을 합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쥐가 자살했다는 것은 과거의 이데올로기, 즉 관념에만 빠져서 젊은 시절에 허무하게 잃어버렸던 작가가 그 시절과는 결별하고, 현실로 돌아와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이 작품에 대해 내가 가장 공감할 수 있었고 감동적이라 생각한 해설이 있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기도 한 것 같다. 그것은 양의 지배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끌려 다닐 수 밖에 없게 하는 거대한 손 이라 생각한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돈이나 권력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남기 위해 강해지기를 요구받는다. 쥐는 자신이 양의 지배를 받으며 강해지기보다는 자신의 나약한 인간다운 면을 좋아하고 나약한 채로 남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그런 상태가 변하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에 그 모습 그대로 죽어버린 것이었다.우리들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살고 있다. 나부터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내 자신이 그러한 의식 속에 갇혀 있다. 모두가 원하는 그 어떤 부귀영화도 결국 우리가 그것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을 얻는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가 하면 그것은 결코 아니다. 강해져서 행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나약한 인간적인 모습이 자연스럽고 편안하다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흔히 사람들은 하루키의 작품을 일컬어 독서나 분석의 대상이 아닌 매혹 그 자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읽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이유로 나름대로의 공부를 하고 분석을 하며 읽어야 했다. 내용이 난해했고, 인물들의 특징이나 그 상징성을 단번에 알아내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루키의 뛰어난 문장력과 독특한 구성방식, 그리고 세밀한 감정 묘사 덕분에 이야기 속으로 무한히 빠져들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작품을 계기로 다른 하루키의 작품들을 가고 있다.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할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 상실해 가는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이 소설이 채워 주었다. 양을 쫓는 모험은 나에게 있어 나를 찾아 떠나는 모험이었던 것이다.「 난 나의 나약함이 좋아. 고통이나 쓰라림도 좋고 여름 햇살과 바람 냄 새와 매미 소리, 그런 것들이 좋아, 무작정 좋은 거야. 자네와 마시는 맥주 라든가……. 」이것은 존재, 그 자체의 나약함을 사랑한 쥐의 말이다.이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라는 소설에 대한 감상을 독서 감상문에 표현을 해 보았다. 그러나 더욱 깊이 있는 감상 표현을 위해 나 자신이 문학평론가가 되었다고 가정하고 기자와 인터뷰를 갖는 상황을 설정하여 보았다.기자 : 이번에 저희 출판사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을 가지고 그의 소설을 어렵게 생각하는 독자들을 위한 해설집을 발간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박이슬 문학평론가를 모시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또 다 른 대표작 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우선 선생님, 이 작품에 대해서 전반적인 설명을 해 주시죠.박이슬 : 예. 이 작품은 하루키가 1982년에 발표하여 을 받은 작품입니다. 그는 , 에 이 어 이 소설을 써 장편 3부작을 완성했구요, 이어서 네 번째 연작 소 설로 를 발표했습니다. 따라서 이 네 작품은 모두 나 라는 주인공이 일인칭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초기 의 두 작품에서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체념과 극도의 허무주의가 주류를 이루는 데 반해, 이나 에서는 그러한 상실의 시기를 극복하고 현실에 적응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돋보입니다.기자 : 그렇다면 작가가 그러한 전환을 맞게 되는 것에는 어떠한 계기가 있 었을까요?박이슬: 네, 그렇습니다. 작가는 학생 시절 전공투 운동이라는 학생 운동에 깊이 빠져들었죠. 그 운동은 반미·반체제·반전의 기치를 내걸고 일 본 열도를 무질서와 혼돈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러한 작가가 젊은 시절에 상실하였던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현실의 세계로 복귀하 려고 하는 의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