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장르 모두 예술적인 성격이나 형식에서 유사한 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여기서는 우선 각 장르의 정의와 범주, 그 기원 및 흐름을 살펴본 뒤에 셋을 각각 비교해 보기로 한다.1. 정의1)오페라-오페라는 본래 라틴어 opus(작품)의 복수형으로 거의 영어 work 에 해당한다. 본래 오페라 란 단어에는 음악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오페라 발생기에 dramma in musica 또는 dramma per musica라고 하였던 것이 나중에 opera in musica(음악이 붙여진 작품)가 되고 다시 오페라로 약칭되었다.우리나라 말로는 가극(歌劇)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오페라는 단순히 음악극이라는 뜻은 아니다. 음악을 주로 한 극이라면 오페레타나 뮤지컬도 있지만, 그것들을 오페라라고 하지는 않는다. 즉 오페라는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을 구비해야만 한다.첫째, 16세기 말에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음악극의 흐름을 따른 것이어야 한다.둘째, 대체로 그 작품전체가 작곡되어 있어야 한다. 즉 모든 대사가 노래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다.그러므로 뮤지컬은 이런 점에서 오페라와 다르다. 간혹 예외가 있어서 징슈필계열에 속하는 《마적(魔笛)》 《피델리오》 《마탄(魔彈)의 사수(射手)》 등과 민속 오페라 계열의 《팔려간 신부》 등, 그리고 오페라 코미크로서의 《카르멘》 등은 노래 아닌 대사가 포함되어 있지만 오페라에 포함시키고 있다.2)뮤지컬-뮤지컬 코메디, 또는 뮤지컬 플레이의 약칭으로 노래, 춤, 연기가 어우러지는 공연 양식을 Musical이라 부른다. 미국에서 발달한 대중 예술로 음악 특히 노래가 중심이 되어 무용(춤)과 극적 요소(드라마)가 조화를 이룬 종합 공연물이다. 한편으로는 Operetta의 방식을 도입한 대사극과 극적인 가창이 혼성으로 이루어지고, 극적인 의미를 지닌 춤을 첨가한 것이 Musical의 정의라 할 수 있다.초기 뮤지컬은 코믹 오페라 같은 가벼운 악극인 오페레타 형식을 띠었다. 영국에서의 뮤지컬 코메디, 미국에서는 아메리칸 뮤지컬 등 조금씩 그 성향 이야기를 말과 노래의 순환적 교체를 해 표현한다. '판'과 '소리'의 뜻을 이렇게 이해하면, 판소리란 말의 뜻은 결국 로 풀이될 수 있다.2. 역사1)오페라-오페라는 르네상스 말기인 1597년에 이탈리아 피렌체의 바르디 백작 저택에서 탄생하였다. 바르디 백작 저택에 모인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극의 부활을 목표로 그리스신화에서 취재한 새로운 음악극 《다프네》를 만들어서 상연하였다. 이것이 오페라의 효시로서, 독창을 주로 하고 악기 반주가 따르는 단성음악적(單聲音樂的)인 작품이었다. 이 악보는 남아 있지 않으며, 현재 가장 오래 된 오페라는 1600년에 상연된 《에우리디케》로서 대체로 앞서의 작품과 같은 사람들이 제작을 담당하였다. 이 두 작품이 성공을 거두자 비슷한 작품들이 잇달아 발표되면서 피렌체로부터 이탈리아 전역에 보급되어 오늘날 오페라의 기원이 되었다.다음에 오페라는 베네치아에 보급되어 번창하였으며 베네치아악파(樂派)의 작곡가 몬테베르디는 오페라의 극적 성격을 높였다. 17세기 후기부터 유럽 각국으로 옮겨갔으나 일반적으로 이탈리아 오페라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이탈리아오페라의 테두리 안에서 독일음악의 특색이 풍부한 명작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마적》 등을 작곡하였고, 베토벤의 작품으로는 《피델리오》가 있다. 18세기 들어서 오페라는 나폴리에서 성행했다. 그러나 오페라는 벨 칸토 창법이 발달하여 그 후 점차 명가수의 기교(技巧)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으로 기울어져 갔다. 19세기에 이르자 오페라에도 민족적인 색채가 짙어졌다. 19세기 중반에는 두 사람의 대작곡가가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나타나 오페라를 독특한 무대예술로 향상시켰다. 바그너는 종래와 같은 번호 오페라의 양식을 배제하고 종합예술작품으로서의 악극을 대성하였다. 바그너와 베르디의 영향은 다음 시대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또 19세기 말의 이탈리아에는 현실파의 경향이 나타났고, 그 뒤에도 수많은 유명한 작곡가들이 오페라를 작곡하였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오페라가 제작되고 있다.2 받으면서 대형화, 상업화하는 데 성공하는 등 뮤지컬이 산업화된 시기이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의 전유물이라는 데서 벗어나 세계인이 좋아하는 공연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러한 변화에는 영국의 뮤지컬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큰 역할을 하였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뮤지컬은 주제면에서나 형식면에서나 보다 종합적인 요소를 갖추게 되었으며 세계의 주요 도시에서는 뮤지컬이 항상 공연되는 결과를 낳았다3)판소리-판소리의 발생기는 여러 평민문화가 발흥하기 시작한 조선 숙종(肅宗) 무렵으로,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박타령)》등 12마당으로 이루어졌다. 가곡의 창법이 보급되어 유행함에 따라 영 ·정조(英正祖) 연간에 명창들이 나와 판소리의 기틀을 잡았고, 순조(純祖) 때와 그 이후에는 권삼득(權三得)을 비롯한 이른바 판소리 8명창이 나와 조와 장단을 확대시킴으로써 그 음악성을 충실히 발전시켜 판소리를 크게 번성하게 하였다. 이어 조선 후기에는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가 그 때까지의 체계를 가다듬어 광대소리 12마당을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가루지기타령》 《토끼타령》 《적벽가》 등 6마당으로 개산(改刪)하고 그 대문과 어구도 실감나도록 고쳐 이후로 광대들은 이 극본에 따라 부르게 되었다. 원래 판소리는 중부지방 이남에서 발달하였고, 또 광대도 전라도 무인(巫人) 출신이 많았으며 신재효 이후 근 1세기에 걸쳐 연창(演唱)되어 왔다.3.비교1)오페라와 뮤지컬-우선 뮤지컬과 오페라를 비교해보자. 뮤지컬이 오페라의 한 부류인 오페레타에서 출발하였다는 이야기가 있고 미국에서 상연되던 초기 뮤지컬들이 경직되고 전통적인 오페라 양식을 좀 더 가벼운 형식으로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졌던 만큼 뮤지컬은 오페라의 형식을 많이 닮았다. 둘 다 서양에서 발생한 예술형식으로 일정한 줄거리가 있고 이에 상응하는 음악과 노래가 있으며 이를 여러 배우들이 역할을 나누어 연기하는 종합예술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음악 구성 형식에 있어서도 오페라에서 쓰이는 형식인 서곡 과다 대중적이고 현대적인 감각의 것들이 많다. 예를 들면 팝, 발라드, 랩, 레게, 재즈 등 대중적인 기호에 맞는 음악들이 자유롭게 작품 속에 그려질 수 있는 특징이 있다.여기에 오페라 가수들은 춤을 추지 않지만 뮤지컬 배우들은 춤을 춘다는 것도 다른 점의 하나이다. 뮤지컬에서 춤은 가사와 대사로 표현되는 것 외의 감성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전체적인 작품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극적인 연기이자, 드라마로서의 기능을 담당한다. 공연되는 춤은 참으로 다양하며, 뮤지컬만의 볼거리 중의 하나다.2) 오페라와 뮤지컬, 판소리- 오페라와 뮤지컬, 판소리는 우선 줄거리가 있고 거기에 음악적인 요소와 연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예술형식이며, 세 장르 모두 상연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가장 큰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1음악오페라와 뮤지컬, 판소리 모두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오페라나 뮤지컬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할 것이나 판소리에서도 음악이 중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판소리에 있어서 아니리보다 창이 중시되고, 뛰어난 광대가 명창이라 불리우는 데서 알 수 있듯, 음악성은 사설치레와 더불어 판소리 예술의 두 중심축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부분창이 보편화되고 난 뒤에는 그 비중이 더욱 커지고 있다.뮤지컬과 오페라, 판소리 음악의 가장 큰 차이는 서양음악과는 달리 선율의 기능은 약하고 장단과 음조가 주된 역할을 하는 창 이라는 독특한 형식에 있다. 이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뮤지컬이나 오페라가 음악에 있어 그 박자나 멜로디로 극중 인물의 성격이나 분위기를 표현하듯이 판소리 또한 장단이나 악조로 극중인물의 성격이나 분위기를 표현한다. 고수의 북으로 반주되는 장단은 창을 받쳐 주며 이끄는 역할을 하는데, 판소리에는 진양·중머리·중중머리·자진모리·휘모리의 기본 장단이 있다. 진양에서 휘모리로 올수록 장단이 점점 빨라지며, 중머리가 판소리 장단의 근간이 된다. 진양은 비장한 대목이나 한가롭고 서정적인 근간이 되는 창조로서, 온화·화평하며 깊고 정대한 느낌을 주는 가락이다. 우조와 계면조는 대조적 성격을 지닌 가락으로서, 우조가 씩씩하고 웅장·장엄하여 남성적 느낌을 준다면, 계면조는 애원·처절하며 감상적이어서 여성적 느낌을 준다. 그러나 판소리 창에 이들 기본 악조만 쓰인 것은 아니며, 다양한 파생 악조들이 함께 쓰였음은 장단의 경우와 같다.뮤지컬과 오페라의 음악은 그 형식이나 기능에 따라 여러 구성요소로 나누어진다. 오페라에는 서곡과 간주곡, 앙상블, 아리아와 레시타티브 등이 있으며, 뮤지컬에는 서곡과 오프닝 넘버, 제시, 프로덕션 넘버, 쇼 스타퍼, 아리아 등이 있다. 반면에 판소리에서 음악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창에는 이러한 세부적인 구분이 없으며, 장단의 변화로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감정, 분위기 등을 표현한다. 이는 뮤지컬과 오페라, 그리고 판소리의 가장 큰 특징인 판소리의 1인 공연 체제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오페라나 뮤지컬에는 막대한 인원이 필요하지만 판소리의 경우에는 고수와 소리꾼 둘이서 공연을 하며, 이 중 소리꾼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오페라의 오케스트라의 역할을 판소리에서는 고수가 하고 있다. 이것은 소리꾼의 소리에 장단을 맞추거나 흥을 돋구는데 있어서는 큰 역할을 하고 있으나 악기가 북이라는 타악기에 한정된 만큼 독립적으로 연주되기에는 한계가 있기에 서곡 등의 형식이 존재하기는 어렵다. 또한 뮤지컬과 오페라가 여러 명의 인원이 각각의 역할을 맡아 연기하지만 판소리의 경우 소리꾼 혼자 모든 배역을 전담하기에 2인 이상을 전제로 하는 앙상블, 합창 등이 판소리에는 존재하지 않는다.이처럼 판소리는 소리꾼 혼자 모든 역할을 소화하기에 그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오페라나 뮤지컬의 경우 주인공이 있고 이들의 역할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는 하나 판소리에서의 소리꾼에 비할 바가 못된다. 판소리의 소리꾼은 이야기의 주인공은 물론 주변인물까지 모두 소화해야 한다.또한 판소리의 경우 그 공연시간에 있어 오페라나 뮤지컬과는 비교가 안 된다. 완창을어진다.
-남한과 북한은 분단이후 이념적인 제약과 공간상의 격리로 인하여 여러 분야에서 이질성을 보이게 되었고 음악분야도 그 중 하나이다.이에 우선 음악사와 전통음악의 성격 및 흐름, 민요 등을 기준으로 남북한 음악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1. 음악사-현재 남북한의 음악사는 서로 다른 체제와 이념 속에서 현격한 인식의 차이, 상이한 견해를 갖고 각각 다르게 서술되었다.1) 시대구분: 남한과 북한 음악사의 시대구분은 연구배경과 음악사를 보는 관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연구결과에서도 많은 차이를 갖게 된다. 남한음악사의 시대구분은 ,,, 등에서 살펴볼 수 있으며, 북한음악사의 시대구분은 북한음악학자들이 편찬한 ,,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차이점을 살펴보면 우선 남한 음악사의 시대구분은 역사적인 사실을 토대로 해서 여기에 각 시대의 음악사를 특징짓는 요소로 음악양식과 음악어법, 그리고 음악사료 등을 토대로 이를 어떻게 보고 해석하느냐 하는 음악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음악사의 시대구분을 달리한다. 이에 비해 북한의 경우는 음악사회 성격과 주체사상의 입장에 따라서 음악사를 보는 관점이나 시대구분, 그리고 작품의 선정 등이 결정되므로 음악사의 시대구분을 하는데 있어서 다소 견해의 차이가 있다.또한 남한에서는 상고에서부터 근대의 음악사까지를 주로 다루었고, 북한은 원시사회에서부터 현대(1970~80)까지의 음악사를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는 남한과 북한 모두 왕조사에 의해서 시대구분을 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각 시대를 구분하는 시기가 비슷하지만 동일한 시대라도 음악학자들이 그 시대를 보는 의미와 관점에 따라 세분하는 정도와 용어의 사용이 매우 다양하다.2) 각 시대별 음악사: 북한음악사는 음악사의 시작과 악기사, 악곡들의 종류, 양식사 등을 보는 관점에서 남한과 다소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사료의 선택과 음악사적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북한에서는 남한의 음악사에서 다루지 않았던 와 등 여러종류의 사료를 제시하며 음악사를 정리하고 있지만 실제 음악사를 기술할 때 원전을 수록하지 않고 있다. 대체로 고구려와 발해의 음악을 심도있게 다루고 있는 반면에 당악과 불교음악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기악분야보다는 성악분야가 활성화되어졌고, 특히 민요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각 시대별로 다양한 악곡들과 명인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것 역시 남한과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북한의 음악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음악사를 기술했던 사료들의 원전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2. 전통음악1) 북한에서의 전통음악1사회주의적 민족음악- 북한은 전통음악을 대부분은 '민족음악'으로 지칭하여 왔지만, 특히 80년대 이후에는 '주체음악' 또는'조선제일주의 음악'으로 표방하여 왔다. 북한의 민족음악은 민족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삼되 사회주의적 현실에 맞게 비판적으로 계승 발전시키는 것으로 민족전통음악의 창조적 계승이라는 점에서 남한의 전통음악과 같지만, 사회주의적 내용이라는 점에서 그 차이가 있다.2복고주의의 경계와 민족전통의 비판적 계승-북한의 민족음악 역사는 '지난날의 것을 덮어놓고 되살리며 미화시키는 역사주의'인 복고주의를 경계하면서 민족전통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것을 그 골자로 하고 있다.3민족허무주의 배격- 민족음악을 주체적으로 건설하기 위해서는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의 우수한 것을 덮어놓고 얕보거나 부정함으로써 결국 나라와 민족을 반역하는 길로 나가는 망국의 사상'인 민족허무주의를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2)남한에서의 전통음악-80년대 이전 남한 음악사회는 양악중심인데다 일본음악 잔재 청산의 실패와 자본주의적 상업성의 영향, 그리고 음악인들의 『음악정체성(音樂正體性) 밝히기』의 실천적 이론 부재로 말미암아 전통음악이 약체화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으나 80년대 이후 전개한 음악정체성 밝히기를 위한 노력으로 남한의 전통음악은 우리겨레의 근본음악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3. 민요1) 정의-민요란 대중에 의해 부담없이 부를 수 있는 노래라는 점에서 남북한 모두 의견을 일치하고 있으나 민요는 시대적으로 비교적 오래된 것이고, 작곡가를 알 수 없으며, 덜 세련되어 있다 는 남한의 견해와는 달리 과 에서는 전문가에 의해 새시대에 맞게 창작되고, 구전 민요를 바탕으로 현시대에 창작된 민요풍의 노래를 포함한다 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당의 차원에서 전문가의 창작을 적극 권장하고, 인위적인 전승을 유도한 계획적인 작품들도 민요의 범주에 넣고 있다. 이러한 민요풍의 양상으로 창작된 곳에는 , 등 혁명 정신을 심어주는 노래나 지도자 찬양노래 등이 있다. 또한 북한에서는 민요의 창작과 보급이 당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2) 분류-분류법에 있어서는 남한과 같은 향토민요와 풍속민요의 2분류법은 없고, 기능과 내용, 연령별에 의한 분류법이 통용되고 있다. 이러한 분류법의 기준은 음악적 특징에 있지 않고, 가사에 근거하며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또한 부녀요나 의식요를 밀도있게 다루는 남한에 비해 북한에서는 이를 세태민요속에 포함시키고 동요를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3) 발성법-북한은 남한의 남도민요와 같은 발성법은 쐐소리, 서양식 발성법은 통소리라 하여 이를 배척하고 새로운 발성법을 개발했다. 높이 지르는 것, 염소 창법, 코소리는 발성기관에 무리를 주고, 듣기 거북하다하여 맑고, 연하고, 가벼운 창법을 만들어 놓은 음색이 난다. 그러므로 남도민요의 특징인 굵게 떠는 목이라든가, 서도민요의 하늘하늘한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4) 민요의 재형상(재창조)-재형상에 있어서 가장 역점을 두어 기피하는 것은 자주적 의식결여, 신변잡사, 의미 없는 가사, 감상적이며 애상적인 내용, 한자어휘 등의 가사내용이다. 또한 한가하게 느리거나 잔잔하며, 반복되는 선율 역시 기피한다. 그러므로 재형상된 민요의 특징은 남한보다 가사내용이 혁명적이거나 숭배적이지만 알아듣기 쉽고, 선율면에서는 빠르다. 또한 발성은 가볍고 여리며, 높은 음색을 갖고 있다.1원형을 살리는 방법-이 경우에도 재형상은 필수적인 것이다. 재형상의 기본요소는 부드럽고 맑은 목소리에 가볍고 간드러진 농음과 미분음을 지닌 발성, 어휘, 그리고 빠른 속도다.)2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개작된 방법-역시 가장 큰 변화는 가사내용이며, 기존의 느린음조나 대화창적인 음조 등을 고쳐 발성과 속도에 변화를 주었다.3여러가지 음악형식으로 편곡된 방법-풍부한 화성을 지닌 성악적 형식과 기악음악형식, 무용음악형식 등 다양한 형식으로 편곡, 보급되고 있다.-이외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남북한의 음악이 차이점을 보이고 있으나 이에 대해선 이만 기술하기로 하고 이후부터는 북한음악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1. 북한음악의 흐름-북한은 1963년 평양과 지방의 음악전문가들과 음악극장 관계자, 그리고 악기 공장들이 참가하여 개량, 창안, 제작한 150여 점의 악기들이 나왔다. 이 악기 개량사업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1966년부터 민족 음악의 현대화와 함께 혁명적 음악예술의 창작 필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월북한 민족 전통음악계가 판소리 발성과 창법이 비판받았던 것처럼 이 기간에 위축을 받는다. 이 기간 북한은 음색과 주법을 현대적 미감과 시대 요구에 맞게 발전시켜야 한민족 음악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아 민족 전통악기 개량사업을 본격화하였다. '맑고 밝으며 유순한 음색'이 기준이었다.-1970년부터 북한이 개발한 전자종합민족악기인 주체 5형을 내놓아 여러 단체에 편성시켜 나갔다. 70년대에 주목할 사실은 60년대 초반부터 북한 음악계가 문학예술정책의 핵심 주도자인 김정일의 지도에 의한다는 점이다. 즉, 음악을 비롯하여 북한 문화예술이 70년대부터 김정일의 직접적인 지도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그 영향력은 80년대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80년대 들어와 주목할 사실은 82년 주체사상이 완성된 체계로 등장하여 전 분야에 적용·실천한 점이다.-81년 12월에 「리조실록」과 86년의 「경국대전 연구」등 한글번역이나 연구서의 예와 같이 세종과 세조 시대의 궁정 음악을 비롯하여 각종 고악보들을 '민족 음악의 빛나는 유산'으로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민족가극 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춘향전식 민족가극시대'를 이후 기획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1984년에 윤이상음악연구소를 개설한 것은 주목받기에 충분한데 그것은 이 연구소가 북한 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음악흐름을 파악하고 교류 및 북한음악의 세계진출을 모색할 수 있는 국내외 음악창구이기 때문이다 .-북한음악사의 특징은 주체적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체험하고 창출하는 음악이라는 점과 민족적 특성을 체현한 음악을 건설하여 민족의 통일적 발전을 촉진시킨다는 점이다. 이러한 주체사상의 기치 아래 항일음악과 민족 전통을 역사적으로 계승하고 존중하여 민족성을 발전시키는 음악을 민족음악의 양대산맥으로 삼아온 지 50년이 되었다. 북한은 현재 이처럼 제국주의의 문화적 침투는 반대하지만 한편으로는 국제적인 교류와 협조를 강화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앞으로는 북한음악이 개방시대에 어떻게 조선제일주의적 민족음악을 발전시키고 대응할 것인지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