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비늘을 읽고서...한 줄의 글이 다른 사람들의 인생과 역사를 바꾼다. 그런 점에서 작가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꿨을지 짐작하기조차 힘들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우리나라 작가중에서 개인적으로 이외수씨를 가장 좋아하고 존경한다. 대다수의 작가들이 그렇겠지만 이외수씨도 글을 수십차례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고 한다. 퇴고를 한 원고만 해도 몇 편의 소설작품 분량이다. 이렇게 계속 글을 고치는 이유는 독자들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나뿐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고 존경하는 이유는 다 글 속의 그의 모습들 때문이라 생각한다.이외수씨는 경남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에서 1946년에 태어났다. 강원도 인제군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으며 1965년 춘천교육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72년에 자퇴하였다. 대표작으로는 산문집「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장편 「칼」「벽오금학도」등이 있다. 사람들은 그를 천재라고도하고 광인이나 기인(奇人외)이라고도 한다. 이외수씨의 책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그가 도인같기도 하고 사이비 종교의 주교같기도 해서 싫어하는 사람들도 더러 만나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를 아니 그의 책을 좋아한다. 그가 바라는 세상은 우리에게 새로운 지표를 제시해 주는 것이지 구체적 행동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황금비늘도 그 맥락을 잇는 소설이다.이외수씨는 주로 고독하고 세상과 격리된 사람, 소외되어지거나 일부러 소외되려는 사람들을 등장인물로 내세운다. 여기서도 이야기의 주체인 '김동명'이나 '강인탁', 소매치기의 대부인 다리불구 양아버지. 그리고 양할머니, 맹인 기치료자 김선생과 그의 아내, 춘천행 버스에서 만난 신선 할아버지, 그의 수제자 문재형. 모두가 세상의 이기적인 사람들에게 벗어나려는 사람들이고 원하지 않는 세상에 순응하지 않는 모습들로 그려지고 있다.소설의 줄거리를 간략히 살펴보면 영아원이라는 배경으로 주인공인 김동명 이 입양되기를 기다리는 고아로 설정되어있고, 그를 괴롭히는 강인탁 이라는 인물을 배치해둔다. 모두 세상에서 버림받고 소외받는 사람들이다. 그중에서도 주인공 김동명 은 키작고 외소한 땅콩 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이로 가장 주인공은 이 영아원에서 희망을 느끼지만 그 희망은 오래가지 못하고 무너진다. 입양과 선생님이 바로 그 희망이었다. 영아원을 탈출한 후에 양아버지를 길에서 양아버지를 만난 주인공은 다시 한번의 희망을 가지게 되고 정착을 하려고 애쓴다. 양아버지의 모습도 두다리를 잃은 알콜 중독자로 사회에서는 소외된 사람이었다. 주인공의 잠깐의 행복은 할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다시 절망으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조금 더 성장한 주인공의 모습을 그려낸다. 주위에 김선생과 그 아내를 두어서 주인공 김동명 을 돕게한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소매치기로 인해 위기에 빠진 주인공은 춘천이라는 곳으로 피신하게되는데 그곳에서 진정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는 방법을 깨우쳐주는 신선 할아버지와 그의 제자인 문재형을 만나게 된다. 아마도 이외수씨는 그 도인적인 기질을 신선 할아버지로 그려내어 세상에서 방황하고 소외되어 고통받는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와 같이 생활하면서 주인공은 세상에서 동떨어져 살지만, 그 안에서의 평온함과 기쁨을 느끼며 연날리기와 낚시를 통해 점차 삶에 대해 생각을 넓혀 가기 시작한다. 저자는 신선할아버지와 수제자 문재형의 행동이 양어장 사장의 성품을 고쳐보이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주인공으로 하여금 가장 큰 숙제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이끌어 내어 준다. "무원동에 꽃 한 송이가 새로 피었겠구나." 선동이의 마지막 고백을 듣고 하신 할아버지의 이 한마디에 작가는 세상살이에 찌든 선동이(김동명)의 마음이 자연에 가까워지고 소박하고 자비로워졌다는 뜻을 전달한다. 전체적이 흐름을 살펴보면, 주인공 동명이는 전편에서는 양아버지를 만나 인생을 배운다. 비록 사람들이 모두 좋지 않은 눈으로 보는 소매치기이지만, 분배엄수 정의준수 의리사수 등의 기본을 잘 지켜야 한다고 배운다. 이 소설은 춘천으로 피신한 그가 한 노인을 만난 후편에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세상에 대한 미움으로 점철된 그에게 도인의 경지에 이른 노인은 낚시를 통해 세상을 읽는 법을 가르쳐준다. 안개와 호수의 도시 춘천에서 주인공은 차츰 세상을 제대로 보는 눈을 뜨게 되고 인간과 자연의 커다란 질서를 깨닫는다. 흡사 성장소설과 구도소설을 섞어 놓은 듯한 이 소설은 소년이 낚시를 통해 세상과 화해하는 과정이 섬세하면서도 풍자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주인공이 생명의 소중함과 물욕의 허망함을 깨닫고,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배우는 모습을 묘사한 책의 후반부에는 여러 유형의 인간군상들이 등장한다. 낚시터를 찾는 권력자와 돈 많은 사람들, 그들의 비위를 맞추며 사는 사람들, 세상사와 상관없이 투명하게 사는 사람들 등 여러 유형의 인간군상들을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나간다.처음 이 책을 들고 읽을 때는 워낙 오랜만에 손에 들었던 책이라서 그런지 한 장 한 장이 어렵고 수면제와 같았다. 이틀 정도가 지났을까 가까스로 1권의 1/4정도를 넘길 수 있었다. 내용은 생각하지 않고 그냥 얼른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조이고 있었나보다. 얼마가 지났을까... 다시 책에 집중할 수 있었다. 2권밖에 안되는 분량이므로 하루만에 읽을 수도 있었지만 아까워서 읽을 수가 없었다. 항상 옆에 끼고서 읽지는 않고 있었다. 때때로 생각이 복잡할 때 책을 펴고 단 몇 장씩 읽었다. 아주 천천히 책장을 넘기는 기분이었다. 어체가 마치 무협지를 연상케도 하고 그러면서도 이야기 전개가 빠른 듯 했다. 하지만 요란하지 않고 다만 조용히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책이었다.장편 소설을 읽어본 것은 군대를 제대한 후에 처음있는 일이었다. 대학 4년동안 전공서적만을 가까이 하다보니 접할 기회도 적으려니와 노력도 없었던 것 같다. 때문에 독후감이라는 것은 더더욱 써 본적이 없다. 나는 사색을 좋아하고 말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막상 그것들을 글로 옮기려니 어휘의 선택부터가 나를 힘들게 했다. 황금비늘 을 읽는 동안 작가 이외수가 독자에게 도대체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인가를 무척 많이 생각하면서 가능하면 저자의 의도대로 느끼려고 많이 노력을 했다. 하지만 책이 다 끝나가는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그 지정한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 주인공 동명이의 삶에서 희망과 좌절이 반복되면서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사회 곳곳에 있는 소외층들의 삶과 모습을 그려내는 듯한 느낌에 안타까운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마음으로 보는 그림처럼 더욱 진실한 모습을 가질 수 있다는 면에서 감동했다. 주인공이 소매치기 혐의로 춘천으로 피신을 할 때에는 책으로 춘천이라는 도시를 그리는 듯한 느낌이 들정도로 아름답게 표현을 하여 내가 마치 그 곳으로 가서 구름속에 덮여있는 호반의 도시 춘천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며, 그곳에서 주인공이 만나는 신선할아버지는 얼핏보면 주책을 떠는 낚시애호가 정도로 처음에는 표현되어지지만, 부부간의 종교적 싸움을 풀어나가는 모습과 낚시터를 청소하는 모습등에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하는 전서구적 역할의 인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외수씨의 필체가 마치 무협지에서 자주보이는 듯하고, 어느 종파의 교주같은 느낌을 주어서 저자의 생각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오히려 그것들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마지막 결말 부분에 가면 주인공은 맹인 선생의 맹도견 역할을 하며 지내겠노라고 말하며 서울로 돌아오는데 돌아오는 길에서 무어를 본다. 황금비늘을 가진 안개를 헤엄쳐다닌다는 선인동의 물고기인 무어를 말이다. 결국 저자는 남에게 자신을 희생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자비로운 자가 황금비늘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은 경제 사회문제로 많은 이들이 이기적이면서도 걱정에 쌓여 허우적대는 모습을 볼 수있다. 이러한 사회를 저자는 한 소년과 그 소년에게 가르침을 주는 절름발이 아버지, 맹인 기치료사, 선인과 그의 제자 등을 통해 세상을 사는 이유에 대해 독자에게 전달하려고 했던 것이다. 나름대로 생각을 해본다. 나는 세상을 왜 사는가?! 굳이 사회에서 정해놓은 틀에서 맴돌며 아웅다웅하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할 것인가.. 아니면 넉넉한 마음으로 맹인들의 맹도견이 되면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어느 쪽이 아름다운 삶인지 생각해보았다.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머리로 사는 세상보다 마음으로 사는 세상이 아름답다
아직도 세계인구의 40%가량은 만성적인 물 부족을 겪고 있습니다.UN의 워싱턴 소재 국제 인구행동연구소(PAI)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활용 가능한 물 자원량은 661억 ㎥으로서, 이를 국민 1인당 활용 가능량으로 환산할 경우, 한국은 1950년 3,247 ㎥에서 1995년에는 1,472 ㎥로 줄어들어 물 부족국가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그나마 2025년에는 1,258 ㎥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어 앞으로 적극적으로 물 소비량을 줄이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물 기근 국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물은 생명의 원천으로서 그 중요성이 최근들어 더욱 중시되고 있으며 세계의 나라들은 이 물을 둘러쌓고 각지에서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물 전쟁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은 두 나라 이상의 영토를 흐르는 강을 놓고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강이 세계에는 214개나 되며, 약 50개국이 걸쳐 있는 ‘다국적강 ’유역에는 세계인구의 35 ∼40%가 살고 있다.대표적인 것이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을 흐르는 요르단 강이다.▶ 요르단강성서에 나오는 요르단강은 실제 폭이 3m밖에 안되는 조그만 하천이였다. 그래도 중동의 사막지대에 흔한 ‘와디 ’(평소에는 말라있다 비가 오면 생기는 하천)와는 달리 연중 물이 흐르는 강이다. 요르단강은 이스라엘과 시리아, 요르단,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등이 목을 대고 있는 「생명수」이다.’67년 시리아가 요르단강 상류인 단(현 이스라엘지역)에 댐을 건설하려 하자, 이스라엘의 강으로 물이 흘러오지 않을 것을 우려한 이스라엘의 위기의식이 3차 중동전을 촉발시켰다.당시 이스라엘이 점령한 골란고원은 이스라엘 전체 급수량의 30%를 차지하는 갈릴리호의 주요 수원지로서 안보적 상황 못지않은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시리아와 평화협정의 대가로 골란반환을 추진한 바 있는 이스라엘은 「땅은 돌려주되 물은 지키고 싶은 」속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므로 골란을 이라크 반환하더라도 갈릴리 해변에는 완충지대를 설정, 상수도 보호원과 함께 주변국이 수자원을 공동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협상안을 굽히지 않고 있었다.▶ 나일강이집트는 나일강 상류에 위치한 수단과 우간다가 댐 건설 등으로 강물을 차단하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었다. 당시 이집트는 이들 나라가 수자원을 무기화할 경우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도록 전쟁준비를 끝내 놓고 있었다.▶ 유프라테스강터키는 유프라테스강 상류에 아쿠아댐을 건설, 시리아로 흘러 들어가는 강물을 차단한 뒤 “아랍국가들이 원유를 무기화할 경우 우리는 물을 무기화하겠다 ”고 선언하는 등 양국은 불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뉴브강헝가리와 슬로바키아는 다뉴브강의 수로변경을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을 빚고 있다. 인도와 방글라데시는 농업용수 확보문제로 갈등중이다.▶ 기타그밖에도 수잔원을 둘러싼 국가간 분쟁은인도-방글라데시는 갠지즈강을,미국-멕시코는 그란데강을,이란-아프가니스탄은 헬만드강을,페루-에콰도르는 지루밀라강을,프랑스-스페인은 카롤강을,남아프리카 공화국-보츠나와는 초베강을 두고 물싸움을 벌이고 있다.이처럼 물이 전쟁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우리나라 또한 물 부족 국가군에 속해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 물기근 국가군으로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생활 속에서 물을 아끼고 절약하며 수질을 지켜 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생활 속에서 물 절약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 #1) 변기 물통에 모래나 자갈을 채운 플라스틱 물병을 넣어둡니다.2) 수도꼭지나 관의 누수를 철저히 점검합니다.3) 절약형 샤워꼭지나 유량조절기가 부착된 것을 설치합니다.4) 샤워 시간을 줄이면 약 18 ∼ 25리터의 물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5) 목욕시 욕조의 물을 틀어 놓고 하지 말고 샤워기로 적당량만 사용합니다.6) 양치할 때에는 물을 틀고 하지 말고 컵을 이용합니다.7) 세탁할 때 합성세제 사용량을 줄입니다.8) 세탁기도 빨래를 많이 모아서 한꺼번에 합니다.9)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하수구에 그대로 버리지 않습니다.10) 설거지를 할 때 물을 틀어놓고 하지 말고 받아서 합니다.
제 목: 선사유적지 답사 보고서과 목 명:우리선사문화의 이해학 과:토목공학과학 번:1996031084이 름:이화종제 출 일:01-7-16 월요일담당교수:김정희 교수님답사를 떠나며이번에 다녀온 선사 유적지는 대전에 있는 둔산동 선사 유적지입니다. 원래는 공주 석장리로 장소를 잡았었지만 주변에서의 만류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선사유적지를 고를 때, 아는 것이 많지 않아서 교재에서 찾아보았지만 그것들보다도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발굴된 지 오래되지 않은 곳을 찾던 도중에 대전에 사는 친구로부터 둔산 선사유적지에 대해 듣게 되었고, 그 곳으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가깝고 또 주변에 있는 것이므로 교재에도 아직 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 원래 집이 청주라서 대전은 가볼 기회가 흔치 않아서 여러 가지 이유로 즐거운 답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은 자주가도 대전은 거의 가는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계속 되는 장마로 몇일을 연기한후에 비가 안오는 날을 기다리다가 답사를 갔습니다. 날씨가 무척 더운 날이어서 그늘하나 없는 유적지에서 고생한 것 이외에는 이렇다할 문제는 없었습니다. 청주에서 오전에 출발하여 우선 신탄진으로 향했습니다. 좌석버스를 이용해서 가기 때문에 차편도 많았습니다. 신탄진 종점에서 내려서 대전까지 가는데에도 좌석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그 다음 대전내에서는 친구의 자가용을 이용해서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 정부 대전 청사와 엑스포 과학공원, 갑천이 위치하고 있어서 교통편도 편리하고, 가족단위 나들이장소로 많이 들르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답사를 가면서 평상시에는 한번 가보기도 힘든 곳이므로 약간은 부담스럽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접하는 즐거움과 기대감이 커서 즐겁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버스노선은 둔산지구 순환 버스를 이용해도되고 신탄진으로해서 갈 경우는 704-1(선사유적지) , 113번을 이용하면 됩니다. 대전시내에 둔산 선사유적지에 대한 표지판이 설치되어있어서 찾아가는 데에는 어려유적도 구석기유적과 비슷한 높이의 구릉에 위치하였습 니다. 이 유적에서는 둥근 형태의 작은 집터를 포함하여 성격이 확인되지 않은 구덩이 13기가 발견되었는데 직경이 2-3m 내외이고, 깊이가 80-130cm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는 생선뼈무늬 등 다양한 무늬가 있으며, 바닥은 예외 없이 둥근 바닥이었고, 재료는 운모와 석영이 섞여 있는 모래질도 있으나, 청동기시대의 민무늬 토기와 같은 점토질도 있습니다. 이는 이지역이 갑천에의한 토양의 퇴적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출토유물은 빗살무늬토기 외에 보습 1점, 갈돌파편 2점, 그물추 3점, 석기재료다수, 석기 반제품 1점, 타원형 석재 10점 등이다. 신석기시대 후기(기원전 2000-1000년)에 속하는 유적이라고 하며, 문화 계통은 서해안 빗살무늬문화전통이 강하나, 그중에 동북 지방의 요소도 나타납니다. 이 무렵 둔산 신석기인들은 원시적인 농경을 이미 알고 있었던 듯하지만 아직 식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다지 높지 않아서 강의에서 들은 바를 알 수 있었습니다. 도토리, 호두, 밤 등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열매뿐만 아니라 갑천의 물고기와 조개 등도 채집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때문에 둔산유적 조사에서 드러난 집자리의 규모나 그 밖의 여러 양상을 보면 아직 완전한 정착은 이루어지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집자리 규모가 비교적 소형일 뿐만 아니라 집자리 안에서 화덕시설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난방용 화덕이 필요치 않은 시기의 계절적인 주거일 가능성으로 판단됩니다. 청동기시대 유적에서는 직사각형의 집자리 유구 3기가 확인되었습니다. 붉은 석비레층을 파고 만든 집자리는 가장 큰 것이 5.5m * 3.0m 정도로 그다지 큰 편은 아닙니다. 이들 집자리 가운데 화덕자리가 설치된 것도 있고, 돌기둥자리가 확인되기도 하였다. 출토유물로는 팽이형토기편과 그릇형태가 분명하지 않은 그리고 돌화살촉, 돌칼, 돌도끼 등 각종 간석기류도 출토되었습니다. 이런 유물의 내용은 신석 상태를 보는 것이 느끼는 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구릉과 초원의 모양으로 유적지가 복원되어 있었습니다. 유적지를 담으로 둘러싸서 경계를 두고 있었고, 주위로는 아파트 단지와 주변 상가로 둘러쌓여 있었습니다. 들어서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청동기시대 움집을 복원해놓은 것이었습니다. 앞장의 사진처럼 그 당시의 움집을 복원해 놓았는데 1호움집 안에는 아래의 사진처럼 화덕자리가 가운데쯤에 있었고 기둥자리고 약간 밖으로 치우쳐져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둥이 요즘의 것처럼 아주 벽쪽으로 붙어 있진 않았습니다. 1호 움집은 나무로 가로막혀 있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움집안은 생각보다 꽤 넓은 공간이었으며, 사진에서 보이는 4개의 기둥이외에도 벽에 붙어서 벽을 지지하는 듯한 기둥이 많이 있었습니다. 강의 시간에 들은 대로 지붕이나 벽의 재료는 벼가 아니고 갈대로 보이는 길쭉한 것이었으며 넝쿨 등으로 군데군데 엮어서 사용하였습니다. 움집의 내부는 평평하였고, 군데군데 작은 자갈 등을 깐 것도 보이고 있습니다. 중앙부에 있는 화덕은 길이가 130cm이고 이중으로 덧대어 놓여져 있었습니다. 설명문에 적혀 있는 바로는 이러한 지붕의 모양을 맛배지붕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정확히 설명이 나와있지 않아서 따로 자료를 찾아보기로 하며 다음 움집으로 이동하였습니다. 2호 움집은 가로가 570cm, 세로가 680cm이며 사모지붕이었습니다. 사진은 2호 움집안에 선사인들의 생활을 마네킨으로 복원해 놓은 것인데 입구가 유리문으로 막혀있어 촬영시에 빛이 반사되어 흐리게 찍힌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청동기시대 움집 3호가 있었는데, 가로 340cm,세로 490cm, 둥근 지붕이었습니다. 화덕자리가 벽의 한쪽 구석으로 이동해 있는 것이 특이하게 보였고 규모도 1호의 2/3정도로 작았습니다. 이 청동기 시대의 움집들은 발굴조사 당시의 자료를 토대로 관련학자의 자문을 받아 복원하고, 그 생활 모습을 배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들을 보 것으로, 그릇의 무늬는 물고기 뼈 무늬, 겹톱니무늬 등 다양하고 바닥은 예외없이 둥근바닥입니다. 그릇을 구운 흑모와 석영이 섞여 있는 모래질도 있으나 청동기시대의 민무늬 토기, 보습, 곡식을 가는데, 사용한 갈돌, 고기잡이 그물에 달았던 어망추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림으로 서해안지역 빗살무늬토기의 각종 무늬를 설명해 놓아서 학습에 도움이 되었습니다.청동기 시대의 움집터는 유적지끝 쪽에 있었는데, 신석기 시대의 움집터보다는 경사진 곳에 있었습니다. 신석기 시대의 움집터가 땅을 50cm~1m정도 파고 들어가서 특별히 벽없이 갈대로 집을 지은 반면에, 청동기 시대의 집터는 사진처럼 지상으로 진흙 등을 쌓아서 불을 먹여 사용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주위의 터보다 집을 지은 터가 약간 턱이진 언덕처럼 되어있었습니다. 움집을 복원해 놓았던 세곳의 집터인 듯 크기와 모양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이곳은 갑천 주변의 낮은 구릉에 넓은 농토와 풍부한 어획량을 배경으로 청동기인들이 거주했다고 합니다. 집터에서는 팽이토기, 민무늬토기, 가락바퀴(물레로 실을 뽑을 때 실을 감는 나무에 끼워 그 회전을 돕는 바퀴), 돌칼, 돌화살촉, 숫돌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이중에서 팽이토기는 평안도의 전통적인 팽이토기가 한강을 건너오면서 변화한 변형 팽이토기로써, 기원전 600~500년경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고 합니다. 이 청동기 시대의 움집터 3기는 택지개발시에 원래의 모습대로 이 유적지로 이전하여 복원해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무덤인 고인돌이었습니다. 원래 있던 것은 아니고 선사 공원으로 조성하던 도중에 북방식과 남방식 무덤을 복원해놓은 것이었습니다. 고인돌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적혀있고 그림까지 그려져 있어서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둔산동 선사 유적지를 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 유물을 보기 위해 박물관을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돌아와서답사를 마치고 청주로 돌아와서 보고서를 쓰려니까 왠지 허전한 물이 고여 있었고 교수님의 말씀대로 주의에는 쓰레기가 있었습니다. 역시 덮개돌에는 일회용 소주잔이 보란 듯이 올라가 있고 옆으로는 누군가가 술을 마시고 보기좋게 쓰레기들을 퍼뜨려 놓아 인상을 찡그리게 하였습니다. 사진을 찍기위해 쓰레기들을 치우면서 우리 대학교 학생들의 의식 수준과 선사유물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로 뒤쳐져 있는지를 느끼고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떨어져서 옆으로 곡천 고인돌이 이전되어 있었습니다. 이 고인돌은 덮개돌이 편편하지 않고 둥근 모양과 역삼각형의형태를 하고 있어 눈에 띄었습니다. 어쩌면 편편한 것보다 세모꼴이 더 운반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 당시에 사회의 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한창 이전 공사중인 신 박물관 쪽으로 가보니 문의 고인돌이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남방식 무덤고인돌로 보여졌습니다. 덮개돌의 형태도 판석형태로 잘 손질되어 있었습니다.새로 공부한 것들이렇게 선사 유물과 유적지를 돌아 보면서 궁금한 점이 여러 가지 생겨서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먼저, 맛배지붕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맛배지붕이란 가장 간단하고 많이 볼 수 있는 지붕의 형식으로 지붕면이 양면으로 경사를 지어 책을 반쯤 펴 놓은 八자 형태로 된 것을 말합니다. 이는 청동기시대부터 현재까지 쓰여지는 지붕의 형태로 청동기 이후로 처마끝이 약간 치켜올라 가는 등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사찰과 대부분의 역사 시대의 지붕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던 지붕 구조가 맛배지붕이었습니다. 다음은 청동기시대의 거석문화에 대해 궁금해서 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청동기시대의 거석문화는 고인돌, 열석 그리고 선돌로 대표된다고 합니다. 우선 고인돌은 강의시간에 배운 바와 같이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양식이며 지역적 특색에 따라 북방식과 남방식 고인돌로 구분합니다. 고인돌은 크게 나누어 지상에 4면을 판석으로 막아 묘실을 설치한 뒤 그 위에 상석을 올린 형식과, 지하에 묘실을 만들어 그 위에 상석을 놓고 돌을 괴는 형방
그동안 태어나서 마을길부터 도시의 대로까지 여러 가지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성장해왔다. 하지만 그 위에서 어떤 느낌을 받으면서 다닌다기 보다는 항상 어떤 목적을 위해 지나치는 그런 입장이었다. 일상속에서 메마름에 익숙해질 무렵부터는 더욱 그러해졌다. 도시의 삶들이 그런 것 같다. 지루하고 매일매일 똑같이 반복되고 그 도중에 시간 에 쫓겨 뛰어다녀야 하는 삶! 이러한 사람들이 삶에서 안락과 휴식을 요하게 되는 이치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자연은 사람들에게 여유와 휴식을 준다. 사람들이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여행을 다니는 이유가 대부분이 이것 때문일 것이다. 멀리 갈수록 피곤하고 힘들텐데,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 삶에서 더욱 더 멀리 떨어져서 휴식하길 원한다. 바다나 산등으로 말이다. 다녀온 후에는 피곤한데도 잘 쉬었다고 한다. 이처럼 자연은 사람에게 포근함을 느끼게 하지만, 항상 그것들에게 다가가서 위안을 청할 수는 없는 일이다. 때문에 도시에서는 거리와 건축 구조물, 우리주의의 도시의 구성요소들이 이 역할을 분담해 주어야한다고 생각한다.최근 들어 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쩍 늘었다. 그동안 인류의 복지 증진을 위해 당연시 되어왔던 생산 및 소비활동이 그것이 야기시킨 심각한 자원고갈과 환경파괴로 인해 궁극에는 인류의 생존과 미래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문제의 극복을 위해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의 이념이 대두되었다. 그 안에서 거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게 다가온다. 거리는 도시 구성과 개발의 틀이 되면서 사람들이 걷는 가장 가까운 도시 구성요소이기 때문이다. 인도, 차도로 구분되어진 아스팔트 포장도로부터 나무로 둘러 쌓인 오솔길, 사람들의 발길로 꽉 메워진 도시의 번화가, 다리 위의 도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외진 골목길까지 모두가 우리 주위에 있는 거리의 모습이다.나는 토목공학이 전공이다. 물론 환경에도 관심이 많다. 때문에 어떠한 거리들이 사람들과 자연을 이어주며 휴식을 주고 나아가서 환경적으로공간으로 되어버렸다. 혹자들은 등록금을 인상해서 소나무를 심는 데에 쓰고있네, 연예인 부르는데 쓰네, 말이 많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번에 소나무를 학교 곳곳에 심음으로 인해서 학교의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지고 편해진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선 학교가 편안해야 학교에 오고 싶은 맘이 들기 때문에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신입생들을 위해서나 기존 재학생들을 위해서도 또 학교 주변의 주민들에게도 쉼터를 제공한 다는 점에서 돈 몇 푼이 중요성을 띄진 않는다. 요즘 충북대학교에서는 실외 건축과 관련하여 학교 조경사업에 열심인 것 같다. 예전에는 다니기 힘들었던 거리들을 보다 친숙하고 편한 느낌의 거리로 만들고, 공원에 있는 입구도 벽돌이나 블록으로 하지않고 나무를 잘라 세로로 꽂아 만들어서 너무나도 친근한 거리의 모습을 조성하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연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중의 하나인 계절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점이다. 아무래도 인공적으로 관리하는 공원이다 보니 자연 그대로의 운치를 띄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조용하고 한적하게 계절을 느낄 수 있는 길이 학교에 있다면, 그 길은 아마도 후문으로 통하는 사범대 뒷길(학군단과 사범대 사잇길)일 것이다. 입학한 이래 충북대학교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길이기도 하다. 언제나 이 길을 걸을 때쯤엔 숲 속을 걷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곤 한다. 길이 그렇게 길진 않지만 그 짧은 순간이나마 자연으로 둘러 쌓여 있는 듯 편안하고 푸근하다. 특히 겨울에 눈이오면 그 운치는 극에 달한다. 아스팔트 재질이 아닌 자갈을 깔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새벽같이 나와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쌓인 그 길을 걷는 느낌, 또 그 눈을 밟으며 보는 나무들의 눈꽃들이 황홀함을 느끼게 할 정도이다. 학교에서 찍은 사진들이 저장이 되질 않아서 아쉬움이 남는다.그에 비하면 정문으로 나가는 대로는 너무나도 살벌한 분위기를 준다. 누구라도 등하교나 특별한 볼일이 있지 않고는 걷고 싶지 않은 길일 것이다. 시야가 트여 하늘 보기는 좋다.번화가로 가지 않고 뒤로 돌아서 간다. 오히려 그것이 마음 편하기 때문이다. 누구 것인지도 모르고 무슨 말인지도 모를 외국의 팝과 락부터, 여기저기 떠들며 소리치는 사람들의 소음, 골목마다 꽉 메워진 차량들의 주차 싸움과 새로 개업을 하는지 한창 공사하고 있는 상점들의 모습들은 바쁘게 살고 치열한 삶을 보여주고 있지만, 결코 안락과 위안을 주진 못한다. 오히려 가뜩이나 좁은 길을 가로막는 차량과 광고물 등으로 지나가기조차 힘들었다. 과연 밤마다 유흥가보다도 더욱 유흥가처럼 변해버리는 모습들이 우리의 중문이 가진 진정한 모습인가 싶을 정도이다. 대학가라기보다 시내 번화가의 유흥가 같았다. 이것은 충북대학교 학생들이 않고 가야할 과제라고 생각이 된다. 유흥가로 만들 것인지 문화가 있는 문화의 거리로 만들 것인지 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문제를 너무나도 가볍게 생각을 한다. 더욱 위험한 것은 중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충북대학교 학생들이기보다는 대부분이 공단에서 일하는 젊은 근로자나 흥덕구에 사는 젊은 층이 대부분이며 술마시고 놀러나오는 20대 젊은이라는 것이다. 계속 이러한 방향으로 성장해 가다보면 결국에는 겉잡을 수 없이 타락해져 버린 중문만이 남을 것이다.사창 사거리로 버스를 타기 위해 나갔다. 시내 번화가인 성안길을 가기 위해서이다. 버스를 기다리며본 사창사거리의 모습은 정말 어지러웠다. 어기 저기 빽빽데는 자동차의 경적소리와 사방을 막고있는 간판들... 과연 한적한 시골에 살던 사람이 그곳에 간다면 우왕좌왕하며 헤메고 말 것이다. 바쁘고 활기찬 것하고 정신없이 어지러운 것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사창사거리가 그런 모습이다. 하루 세네번씩 밀려서 막히고 마는 교통체증과 인도까지 올라와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들! 많은 사람들에 비해서 좁은 인도를 노점상과 불법 주차 차량들이 더욱 비좁게 만든다. 사람들이 과연 이곳에서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있을까? 절대로 아닐 것이다. 나도 한시라도 버스가 빨리와서 그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성안길에 들어서보할 것 같았다. 일렬로 늘어서 있는 상점마다 자신들을 더 잘 보이게 하려고 투명유리와 네온싸인으로 빛을 뿜어대고 화려한 간판들을 앞에 내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충북대 중문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는 정돈되어 보였다. 같은 번화가이지만 이미지는 차이가 있었다. 충북대학교 중문은 지저분한 분위기였고 무질서했지만 성안길은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전혀 부담감을 주지않고 각자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갈 수 있도록 배려한 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석양이지면서 간판과 네온싸인들은 각자 화려한 빛을 보이며 반짝였는데 그 모습 또한 지저분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 시각, 철당간 광장에서는 약속을 기다리는 학생들과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쌀쌀해지는 날씨인데도 철당간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오고가는 사람들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눈에 띄었다. 전형적인 도시인들의 하루하루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철당간에서 무심천 쪽으로 가면 중앙공원으로 들어가는 쪽문이 있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골목은 성안길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성안길이 정돈된 번화가의 분위기라면 그 골목은 고전적인 분위기가 서려있는 곳이다. 상가마다 골목에다 광고물을 설치해서 좁은 골목을 빠져나가기가 더욱 힘들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이 싫지 않은 이유는 뒤로 보이는 중앙공원의 초목 때문일 수도 있고, 사람들이 지나가는 시간을 최대한 오래 잡아보려는 주인의 의도가 보여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좌우로는 예전에 많이 보였던 떡볶이집과 빵집 옷 수선집등 다양한 상가들이 있었고, 힘겨운 눈치로 골목을 빠져나가니 중앙공원에서 쉬는 여학생들과 노인들 그리고 나무와 풀, 쉴 수 있는 의자가 있었다. 일부러 편하고 넓은 길을 버리고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는 사람들 중에는 이런 기분을 느끼려고 그러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곳으로 들어서니 정문으로 들어서는 공원의 모습과는 또다른 반가움이 있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보이는 것이 기념비이고 커다란 느티나무가 정면으로 보이면서 우측으로는 옛 건축물이 자리하 위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들이 조금도 공원의 내부로 들어서 있었다면 중앙 공원이 좀더 사람들에게 다가설 수 있었을 거라 본다.시내 번화가를 지나서는 육거리 재래시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서 상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고 아직 팔지 못한 장사꾼들이 '떨이'를 외치며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지저분하다거나 시끄럽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오히려 정겨운 옛 장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였다. 나는 시골에서 자라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기에 얼마되지 않은 나이임에도 그러한 모습들이 정겹게 느껴지는 것일 것이다. 재래시장을 지나니 꽃다리와 무심천 제방이 눈에 들어왔다. 제방을 따라서 도로가 나있었고, 가로수들이 가을을 한껏 만끽할 수 있도록 옷을 붉게 갈아입고 있었다. 해질 녘이라서 그 멋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날씨가 쌀쌀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선 귀가하고 다음에 다시 오기로 하면서 아쉬움을 달랬다.다음날 수업이 모두 끝난 후에 다시 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전날 다시 가기로 했던 무심천 제방으로 향했다. 해가 붉은 안개를 뿜으며 저물어 가는 하루를 마무리할 때쯤 도착하였다. 꽃다리에서 돌아본 무심천변은 정말로 시민들의 쉼터로 일말의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다. 오히려 중앙공원보다도 그곳이 더 마음편히 갈 수 있는 공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무심천을 중심으로 좌측(꽃다리에서 용암동 쪽으로 볼때)으로는 하상도로가 나있고 그쪽으로는 갈대 숲이 떨어지는 태양과 어우러져 금빛 물결을 이룬다. 우측으로는 길게 시민공원이 조성 중에 있었다. 양쪽모두 주택단지와 인접해서 시민들이 아침과 저녁으로 많이 찾는 곳이다. 특히 무심천을 따라서 길게 나있기 때문에 조깅코스로 많이 찾고, 잠깐의 시간을 내서 낚싯대를 드리우는 강태공들의 모습도 자주 눈에 들어온다. 아직은 완성이 되지 않아 군데군데 공사를 하는 모습들이 보이지만 공사하는 현장 옆으로는 시민들을 배려해서 안전하게 길을 확보하고 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이 불편함이 전혀 없이다.
흙의 체 가름 실험1. 목적: 노건조시킨 흙 시료를 체 눈 굵기별로 쳐서 각체에 남은 시료의 무게를 잰 후 입경별 누가 통과율에 대한 입도분포 곡선을 그린다. 입도 분포 곡선에서 입경별 누가 통과율을 읽어서 입도분포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고, 자갈, 모래, 실트, 점토등의 구성비율을 구한다.2. 결과 및 이용: 흙댐이나 하천제방 도로 또는 비행장 활주로 등에서 흙의 공학적 성질 파악3. 기구 및 재료: NO.4(475mm) , 10(2mm) , 20(0.85mm) , 40(0.425mm), 60(0.25mm), 100(0.15mm), 200(0.75mm) , 저울, 시료, pan4. 실험 방법① 시료(적당량)의 무게를 잰다.② 각 체의 무게를 잰다.③ 시료를 체 세트에 넣고 진동시킨다.④ 각 체에 남은 시료의 무게를 잰다.⑤ 실험 결과를 이용하여 입경가적 곡선 및 균등계수, 곡률계수를 구하고, 지반의 상태 등 을 판단한다.5. 실험 결과시료 #체분석자료시료무게잔류량누가잔류량누가통과량체번호입경그릇시료+그릇No(mm)(g)(g)(g)(%)(%)(%)No.44.750488.4504.416.03.203.2096.80No.102.000454.3532.978.615.7318.9381.07No.200.850412.8529.9117.123.4242.3657.64No.400.425388.0485.497.419.4861.8438.16No.600.250361.8440.078.215.6477.4822.52No.1000.150351.3404.753.410.6888.1711.83No.2000.075333.7376.743.08.6096.773.23Pan292.8308.816.03.2099.970.03499.7D60 0.93mm, D10 0.14mm, D30 0.33mm1. 균등계수 Cu =D_60 over D_10=0.93mm over 0.14mm6.642. 곡률계수 Cc ={(D_30 ) ^{2}} over {D_10 D_60}={0.33mm^2} over { 0.93mm 0.14mm }0.8366. 흙의 분류(통일 분류법에 의한 흙의 공학적 분류 방법에 의거)- 제 1 문자 : #4체 통과율 50% 이상이므로 → S- 제 2 문자 : #200체 통과율 5% 이하이므로 → W, P (세립분의 백분율에 의해)- Cu = 5∼10 , Cc = 0.836이므로 → SP- 세립분이 적은 입도분포가 나쁜 모래질 흙7. 결과 및 이용1) 흙의 입도는 흙을 분류하는 기본요소이다.입도와 흙의 제성질(강도, 압축성, 투수성 등)과의 관계는 밀접하지만, 비교적 조립토에서 이 관계가 잘 나타나고, 세립토에서는 일정한 관계가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조립토에서는 입도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세립토에서는 분류 특성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는 그리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2) 균등 계수는 여과사 입경분포의 균일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서 입도가적곡선에서 60% 통과경과 10%통과경과의 비를 말함. ( E = D60 / D10 ).3) 균등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입경이 균일하고 여층의 공극율이 커지며 탁질 억류 량도 증가한다.4) 균등계수가 낮을수록 원사에서 채취 가용량이 적어져서 생산가격이 높아짐.5) 급속여과사의 균등계수는 1.7 이하로 최소한의 품질이 규정되어 있으나 균등계수가 낮을수록 품질이 우수하므로 각 수요기관에서는 그 이하의 제품을 요구하고 있어, 동일한 유효경에 균등계수만 달리하여 규격과 가격이 차등화 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