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박명(佳人薄命) // 아름다운 여인은 운명이 기박함. 《出典》'蘇軾'의 詩아래 시의 작자 소식(蘇軾:1036-1101)이 항주, 양주 등의 지방장관으로 있을 때 우연히 절에서 나이 삼십이 이미 넘었다는 예쁜 여승을 보고 그녀의 아름다웠을 소녀시절을 생각하며 미인은 역사적으로 운명이 기박하였음을 시로 쓴 데서 전하여졌음.두 볼은 엉긴 우유와 같고 머리는 옻칠을 한 것처럼 새까맣고,눈빛이 발에 들어오니 주옥과 같이 빛난다. 본디 흰 비단으로써 선녀의 옷을 지으니,입술연지는 천연의 바탕을 더럽힌다 하여 바르지 않았네.오나라 사투리의 애교 있는 소리는 어린아이처럼 애띠고,무한한 사이의 근심 다 알 수 없네. 예로부터 아름다운 여인 운명 기박함이 많으니,문을 닫고 봄이 다하니 버들꽃 떨어지네.雙頰凝 髮抹漆 / 眼光入廉珠的白樂 / 故將白練作仙衣 / 不許紅膏汗天質 / 吳音嬌軟帶兒癡 / 無限間愁總未知 / 自古佳人多命薄 / 閉門春盡楊花落이 시는 1086년부터 8년 사이에 지은 것이다. '가인박명(佳人薄命)'은 어린 승려를 노래한 七言律詩로 되어 있다.--------------------------------------------------------------------------------경국지색(傾國之色) // 나라 안에 으뜸가는 미인. 임금이 혹하여 나라가 뒤집혀도 모를 만한 미인. 《出典》'漢書' 李夫人傳'傾國'이 '傾城'과 아울러 美人을 일컫는 말로 쓰여지게 된 것은 이연년(李延年)의 다음과 같은 詩에서 유래한다.북방에 아름다운 사람이 있어, / 세상을 끊고 홀로 서 있네./ 한 번 돌아보면 성을 기울이고, /두 번 돌아보면 나라를 기울게 하네. / 어찌 성을 기울이고 나라를 기울임을 알지 못하랴. /아름다운 사람은 두 번 얻기 어렵네.北方有佳人 / 絶世而獨立 / 一顧傾人城 / 再顧傾人國 / 寧不知傾城與傾國 / 佳人難再得무제는 곧 그녀를 불러들여 보니 더없이 예뻤고 춤도 능숙해 그녀에게 완전히 마음이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 여인이 이부인(李夫人)이다. 傾國이란 말은 李白의 [名花傾國兩相歡] 구절과 백거이의 '장한가'의 [한왕은 색(色)을 중히 여겨 傾國을 생각한다.]라는 구절과 항우에게서 자기 妻子를 변설로써 찾아준 후공(侯公)을 漢高祖가 [이는 천하의 변사이다. 그가 있는 곳에 나라를 기울이게 할 수 있다.]고 칭찬한 데서도 찾을 수 있다.--------------------------------------------------------------------------------곡학아세(曲學阿世) // 정도(正道)를 벗어난 학문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아첨함.《出典》'史記' 儒林傳한(漢)나라 6대 황제인 경제(景帝:B.C 157-141)는 즉위하자 천하에 널리 어진 선비를 찾다가 산동(山東)에 사는 원고생(轅固生)이라는 시인을 등용하기로 했다.그는 당시 90세의 고령이었으나 직언을 잘하는 대쪽 같은 선비로도 유명했다. 그래서 사이비(似而非) 학자들은 원고생을 중상비방(中傷誹謗)하는 상소를 올려 그의 등용을 극력 반대하였으나 경제는 끝내 듣지 않았다.당시 원고생과 함께 등용된 소장(少壯) 학자가 있었는데, 그 역시 산동 사람으로 이름을 공손홍(公孫弘)이라고 했다. 공손홍은 원고생을 늙은이라고 깔보고 무시했지만 원고생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공손홍에게 이렇게 말했다."지금, 학문의 정도(正道)가 어지러워져서 속설(俗說)이 유행하고 있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유서 깊은 학문의 전통은 결국 사설(私設)로 인해 그 본연의 모습을 잃고 말 것일세. 자네는 다행히 젊은 데다가 학문을 좋아하는 선비란 말을 들었네. 그러니 부디 올바른 학문을 열심히 닦아서 세상에 널리 전파해 주기 바라네. 결코 자신이 믿는 '학설을 굽히어[曲學]' 이 '세상 속물들에게 아첨하는 일[阿世]'이 있어서는 안 되네."원고생의 말이 끝나자 공손홍은 몸둘 바를 몰랐다. 절조를 굽히지 않는 고매한 인격과 학식이 높은 원고생과 같은 눈앞의 태산북두(泰山北斗)를 알아 보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공손홍은 당장 지난날의 무례를 사과하고 원고생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固之徵也 薛人公孫弘亦徵 側目而視固 固曰 公孫子 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유사어】어용학자(御用學者)--------------------------------------------------------------------------------관포지교(管鮑之交) // 중국의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 같은 친교라는 뜻으로, 친구 사이의 다정한 교제를 일컬음. 《出典》'史記' 列子춘추시대 초엽, 제(齊)나라에 관중(管仲 : ?∼B.C 645)과 포숙아(鮑叔牙)라는 두 관리가 있었다. 이들은 죽마고우(竹馬故友)로 둘도 없는 친구사이였다.관중은 한때 소백을 암살하려 하였으나 그가 먼저 귀국하여 환공(桓公 : B.C 685-643)이라 일컫고 노나라에 공자 규의 처형과 아울러 관중의 압송(押送)을 요구했다. 환공이 압송된 관중을 죽이려 하자 포숙아는 이렇게 진언했다."전하, 제(齊) 한 나라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臣)으로도 충분할 것이옵니다. 하오나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시려면 관중을 기용하시옵소서."도량이 넓고 식견이 높은 환공은 신뢰하는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들여 관중을 대부(大夫)로 중용(重用)하고 정사를 맡겼다 한다.관중은 훗날 포숙아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나는 젊어서 포숙아와 장사를 할 때 늘 이익금을 내가 더 많이 차지했었으나 그는 나를 욕심장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를 위해 한 사업이 실패하여 그를 궁지에 빠뜨린 일이 있었지만 나를 용렬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일에는 성패(成敗)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벼슬길에 나갔다가는 물러나곤 했었지만 나를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게 운이 따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나는 싸움터에서도 도망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나를 겁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게 노모(老母)가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주구검(刻舟求劍) // 시세의 변천도 모르고 낡은 생각만 고집하며 이를 고치지 않는 어리석고 미련함을 비유하는 말. 《出典》'呂氏春秋'戰國時代, 楚나라의 한 젊은이가 揚子江을 건너기 위해 배를 탔다. 배가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그만 실수하여 손에 들고 있던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고 말았다."아뿔사! 이를 어쩐다."젊은이는 허둥지둥 허리춤에서 단검을 빼 들고 칼을 떨어뜨린 그 뱃전에다 표시를 하였다. 이윽고 배가 건너편 나루터에 닿자 그는 곧 옷을 벗어 던지고 표시를 한 그 뱃전 밑의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칼이 그 밑에 있을 리가 없었다.楚人 有涉江者 其劍 自舟中 墜於水 遽刻其舟 曰『是 吾劍之所從墜』舟止 從其所刻者 入水求之 舟己行矣 而劍不行 求劍若此 不亦惑乎.以古法 爲其國 與此同 時己徙矣 以法不徙 以此爲治 豈不難哉.【유사어】수주대토(守株待 )--------------------------------------------------------------------------------결초보은(結草報恩) // 죽어 혼령이 되어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음. 《出典》'春秋左氏傳'춘추시대 晉나라의 위무자(魏武子)에게 젊은 첩이 있었는데 위무자가 병이 들자 본처의 아들 과(顆)를 불러 "네 서모를 내가 죽거들랑 改嫁시키도록 하여라."하였으나, 위무자의 병세가 점점 악화되어 위독한 지경에 이르게 되자 아들 과(顆)에게 다시 분부하기를 "내가 죽거들랑 네 서모는 반드시 순사(殉死)케 해라."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위무자가 죽자 아들 과(顆)는 "사람이 병이 위중하면 정신이 혼란해지기 마련이니 아버지께서 맑은 정신일 때 하신 말씀대로 따르리라."하고는 아버지의 처음 유언을 따라 서모를 改嫁시켜 드렸다.그 후 진환공(秦桓公)이 晉나라를 침략하여 군대를 보씨(輔氏)에 주둔시켰다.보씨의 싸움에서 위과(魏顆)는 晉의 장수로 있었기 때문에 秦의 大力士 두회(杜回)라는 장수와 결전을 벌이게 되었는데 위과는 역부족이었다. 그때 한 노인이 두회의 발 앞의 풀을 엮어(結草) 그가 때문에 내 딸이 목숨을 유지하고 改嫁하여 잘 살고 있소. 나는 당신의 그 은혜에 보답(報恩)하고자 한 것이오."秋七月 秦桓公伐晉 次于輔氏 壬午 晉候治兵于稷 以略秋士 立黎侯而還 及洛魏顆敗 秦師于輔氏 獲杜回 秦之力人也 初魏武子有擘妾無子 武子疾 命顆曰 必嫁是 疾病則曰 必以爲殉及卒 顆嫁之曰 疾病則亂 吾從其治也 及輔氏之役 顆見老人結草 以亢杜回 杜回足質而顚 故獲之 夜夢之曰 余而所嫁婦人之父也 爾用先人之治命 余是以報.--------------------------------------------------------------------------------마이동풍(馬耳東風) // 남의 말을 조금도 듣지 않고 지나쳐 흘려 버림을 이름.《出典》'李太白集' 券十八이것은 李白의 라는 장편의 詩 가운데 있는 말이다."푸른 산을 둘러싸고 뜬구름이 하염없이 이어져 있고, 그 하늘 가운데 외로운 달이 흐르고 있다.외로운 달은 추위에 못 이겨 빛나고, 은하수는 맑고 북두칠성은 흩어져 깔려 있는데,밤의 많은 별들이 밝게 빛난다.나는 술을 마시면서 밤 그늘 서리의 하얀 것을 생각하고,자네의 집 우물의 구슬 난간에 얼음이 얼어붙은 모양을 생각하고,얼어붙은 자네의 마음을 생각했다.인생은 아차 하는 사이에 백년도 채우지 못한다.자, 술이나 마셔 한없는 생각을 떨쳐 버리게.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햇볕이 쪼이지 않는 북쪽 창문 속에서,시를 읊거나 부(賦)를 짓는 정도의 일일세.일 만 마디를 지어도 고작 술 한 잔의 가치도 없네."그리고 나서 李白은 이렇게 읊고 있다.세상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 다 머리를 흔들 걸세.동풍(東風)이 말의 귀를 쏘는 것 같음이 있네.世人聞此皆掉頭 有如東風射馬耳--------------------------------------------------------------------------------미생지신(尾生之信) // ① 신의가 굳음. 《出典》史記 蘇秦列傳② 우직하여 융통성이 없음. 《出典》莊子 盜 篇춘추시대, 노(魯)나라에 미생(尾生 : 尾生高)이란 사람이 있미생이 계속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져 개울물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생은 약속 장소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결국 교각(橋脚)을 끌어안은 채 익사(溺死)하고 말았다."尾生은 믿음으로써 여자와 더불어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기약하고, 여자가 오지 않자, 물이 밀려와도 떠나지 않아, 기둥을 끌어안고서 죽었다."信如尾生 與女子期於梁下 女子不來 水至不去 抱柱而死.① 전국시대, 종횡가로 유명한 소진(蘇秦)은 연(燕)나라 소왕(昭王)을 설파(說破)할 때, 로 앞에 소개한 미생의 이야기를 예로 들고 있다.② 그러나 같은 전국시대를 살다간 莊子의 견해는 그와 반대로 부정적이었다. 莊子는 그의 우언(寓言)이 실려 있는《莊子》'盜 篇'에서 근엄 그 자체인 孔子와 대화를 나누는 유명한 도둑 도척(盜 )의 입을 통해서 미생을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이런 인간은 책형( 刑)당한 개나 물에 떠내려간 돼지 아니면 쪽박을 들고 빌어먹는 거지와 마찬가지다. 쓸데없는 명목(名目)에 구애되어 소중한 목숨을 소홀히 하는 인간은 진정한 삶의 길을 모르는 놈이다.【동의어】포주지신(抱柱之信)--------------------------------------------------------------------------------모순(矛盾) //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맞지 않음. 《出典》'韓非子' 難勢篇어느날 초나라 장사꾼이 저잣거리에 방패[盾]와 창[矛]을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자, 여기 이 방패를 보십시오. 이 방패는 어찌나 견고한지 제아무리 날카로운 창이라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이렇게 자랑한 다음 이번에는 창을 집어들고 외쳐댔다."자, 이 창을 보십시오. 이 창은 어찌나 날카로운지 꿰뚫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그 때, 구경꾼들 속에서 이런 질문이 튀어나왔다."그럼,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 거요?"그러자, 장사꾼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楚人有 楯與矛者 譽之曰 吾楯之堅 莫能陷也 又譽其矛曰 吾矛之利 於物無不陷也 或曰 以子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돌아왔을 때, 짜던 베를 칼로 잘라서 훈계한 고사로 '어머니의 엄격한 자녀 교육'을 이름.《出典》列女傳 蒙求孟子는 孔子의 손자인 子思의 제자가 되어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거니와, 이보다 앞서 소년시절에 유학에 나가 있던 孟子가 어느날 갑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어머니는 베를 짜고 있다가 孟子에게 물었다."네 공부는 어느 정도 나아갔느냐?" "아직 변한 것이 없습니다."그러자 어머니는 짜고 있던 베를 옆에 있던 칼로 끊어버렸다. 孟子가 섬짓하여 물었다."어머니, 그 베는 왜 끊어버리시나이까?"그러자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네가 학문을 그만둔다는 것은, 내가 짜던 베를 끊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君子란 모름지기 학문을 배워 이름을 날리고, 모르는 것은 물어서 앎을 넓혀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평소에 마음과 몸을 편안히 하고, 세상에 나가서도 위험을 저지르지 않는다. 지금 너는 학문을 그만두었다. 너는 다른 사람의 심부름꾼으로 뛰어다녀야 하고, 재앙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생계를 위하여 베를 짜다가 중간에 그만두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차라리 그 夫子에게 옷은 해 입힐지라도, 오래도록 양식이 부족하지 않겠느냐? 여자가 그 생계의 방편인 베짜기를 그만두고, 남자가 덕을 닦는 것에 멀어지면, 도둑이 되지않는다면 심부름꾼이 될 뿐이다."孟子가 두려워하여 아침 저녁으로 쉬지 않고서 배움에 힘써, 子思를 스승으로 섬겨, 드디어 천하의 명유(名儒)가 되었다. 이것을 소위 '斷機之敎'라고 일컫는다.【동의어】단기지계(斷機之戒), 단기계(斷機戒)【유사어】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유비무환(有備無患) // 준비가 있으면 근심할 것이 없음.《出典》'書經' 說命'열명(說命)'은 은(殷)나라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이란 어진 재상을 얻게 되는 경위와 부열의 어진 정사에 대한 의견과 그 것을 시기에 맞게 하십시오. 그 능(能)한 것을 자랑하게 되면 그 공(功)을 잃게 됩니다. 오직 모든 일은 다 그 갖춘 것이 있는 법이니 갖춘 것이 있어야만 근심이 없게 될 것입니다."處善以動 動有厥時 矜其能 喪厥功 惟事事 及其有備 有備無患.또,《春秋左氏傳》에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진나라 도승이 정나라에서 보낸 값진 보물과 가희(佳姬)들을 화친(和親)의 선물로 보내오자 이것들을 위강에게 보냈다. 그러자 위강은 완강히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평안히 지낼 때에는 항상 위태로움을 생각하여야 하고 위태로움을 생각하게 되면 항상 준비가 있어야 하며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근심과 재난이 없을 것입니다."居安思危 思危 則有備 有備則無患.--------------------------------------------------------------------------------어부지리(漁父之利) // '두 사람이 이해 관계로 다투는 사이에 엉뚱한 딴 사람이 이득을 봄'을 일컬음.《出典》戰國策 燕策전국시대, 제(齊)나라에 많은 군사를 파병한 연(燕)나라에 기근(饑饉)이 들자 이웃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기다렸다는 듯이 침략 준비를 서둘렀다. 그래서 연나라 소왕(昭王)은 종횡가(縱橫家)로서 그간 연나라를 위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해 온 소대(蘇代)에게 혜문왕을 설득하도록 부탁했다.조(趙)나라에 도착한 소대(蘇代)는 소진(蘇秦)의 동생답게 거침없이 혜문왕을 설득하여 혜문왕의 연나라 침공 계획을 철회시켰다고 한다."오늘 귀국에 들어오는 길에 역수(易水)를 지나다가 문득 강변을 바라보니 조개[蚌蛤(방합)]가 조가비를 벌리고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도요새[鷸(휼)]가 날아와 뾰족한 부리로 조갯살을 쪼았습니다. 깜짝 놀란 조개는 화가 나서 조가비를 굳게 닫고 부리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급해진 도요새가 '이대로 오늘도 내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너는 말라 죽고 말 것이다.'라고 하자, 조개도 지지 않고 '내가 오늘도 내일도 놓아 주지 않으면 너습니다.
교도소에 있다가 정신병원으로 이송된 맥머피란 사람이 있다. 도박과 술과 담배와 스포츠를 좋아하는 그의 호탕하고 쾌활하며 활기가 넘치는 모습은 기존의 병원에 있던 무기력하고 시들시들한 사람들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그리고 그 병원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인 것에는 생각보다 뿌리깊고 거대한 집단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맥머피는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한다.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을 박탈당한 '불감증 환자'가 되어버린 그들에게 맥은 기존의 경직된 구조를 파괴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았던 규칙들을 만들어내기도 하며 그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되찾아주려고 노력한다.'미친 사람들'에게는 성욕, 흡연, 스포츠 등, 자신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는 것들을 완전히 박탈해버리려는, 아니 그들에게 그런 것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 조차 인정하려하지 않는 병원 사람들에 의해서 그들은 정말로 미친 사람들이 되어간다. 맥은 좀처럼 변화를 보이지 않는 무기력한 동료들은 일깨우고, 그들을 대신해서 끊임없이 병원측에 자신들의 그다지 대단할 것도 없는 작은 요구들을 전달하지만 그것은 단 한번도 반영되지 않는다. 그 소박한 요구들을 (가령 야구중계를 볼 수있게 해달라는 것과 같은 ) 병원측에서 조금이라도 귀담아 들었다면 훗날의 비극적인 일들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크리스마스 이브날, 맥머피는 동료들에게 술을 돌리고 병원에 여자를 데려온다. 그의 동료들은 술을 나누어 마시며 전에 없는 생기를 되찾고 소리내어 웃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흥에 취한채 환상적인 크리스마스를 보낸 다음날,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병원에 돌아온 병원 사람들은 비상이 걸려서 사태를 수습하려고 한다. 환자들 중 맥머피 덕분에 여자와 잠자리를 하고 아침을 맞이한 말더듬이 빌리를 발견하고 간호사 제인은 아주 경멸조로 이야기 한다."당신이 한 행위가 창피하지 않나요?"가장 인상깊은 대사이다. 그녀가 그렇게 자신감있게 그들을 비난할 수 있었던 것은, 소위 말하는 엘리트라는 그들은 위선적으로 자신들의 욕구를 적당히 감출 수도 있고, 때로는 그러한 욕구를 보기좋게 다른 방향으로 전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라는 사회 내에서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억압받고 있는 소외된 자들은 스스로도 그 세련된 강자의 이데올로기에 세뇌되어 그들의 인식체계를 자발적으로 수용하기에 이르는 대책없는 상황을 만들어 간다.(물론 영화에서 얘기되는 것은 미국 사회지만 그보다 훨씬 더한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고)
정체성을 중심으로 본 초기 모성경험의 의미Ⅰ. 서 론성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성숙과 쇠퇴가 뒤섞인 하나의 긴 이야기이다. 성인기는 어떤 사람에게는 활력과 성취의 시기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평범, 정체, 무기력의 시기이다. 이 양 극단, 그리고 그 사이에 놓여 있는 다양한 가능성은 인간이 얼마나 강할 수 있으며 동시에 얼마나 상처받기 쉬운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지금 내 인생은 어디에 와 있는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들은 어떤 관련이 있는가? 나는 내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투자하고 있는가? 바꾸고 싶거나, 개선하고 싶거나, 피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가? 지금은 작은 비중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내 인생의 중심에 놓고 싶은 그런 것들이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현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Levinson, 1996: 21-22).이 연구의 관심사는 서로 다른 삶의 맥락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어머니로서 경험하는 것들은 무엇이며,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심은 한편으로는 연구자 자신의 모성경험에서 연유한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모성연구가 모성경험에 대해 묻고 답하는 방식이 제한되어 있다는 인식에서 연유한 것이다.모성연구는 자녀에서 어머니로 연구의 초점을 전환하면서 그 동안 간과되어 왔던 어머니로서의 여성들의 경험을 드러내고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김은실, 1996; 김지혜, 1995; 노영주, 1996; 변혜정, 1992; 신경아, 1997; 윤택림, 1996). 이 연구들은 어머니로서의 여성들의 삶은 어떠한 것이며 그것은 여성들의 삶에서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에 주목하였으며, 당사자인 여성을 연구의 전경에 부각시켰다. 그런데 여성의 관점을 취한 기존의 연구에서도 내부자로서의 여성들의 경험과 그들의 개인적 해석이 충분히 다루어지지는 못했다. 이러한 점은, 모성경험이 공적 세계에서의 자기성취와 독립에 이르려는 여성들의 노력을 제한시킨다는 시"고도 했는데, 이것은 자녀로 인해서 가족이 보다 완전해지며 가족으로서의 의미도 공고해진다는 생각을 반영한다.가정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태도는 이야기 중 여러 곳에서 나타났으며, 그것은 아내이고 어머니로서의 삶에 대한 긍정으로 이어졌다. 박영임씨는 "부인이 집에 있어야 남편한테도 좋고," "애가 어릴 때는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엄마가 집에서 애를 키우는 게 좋고," 양육에 대해서는 "힘들어도 자연스러운 거지요, 당연한 거지요."라는 태도를 나타냈다. "가정이 있어야 직장도 다니고 그런 것이지, 가정에 문제가 있으면 직장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라는 말은 가족과 관련된 정체성이 무엇보다 우선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박영임씨는 높은 가정지향성을 나타냈는데, 가정지향성이란 가족의 고유성과 개별성을 중시하고 가족중심적 가치를 추구하며, 가사노동에 가치를 부여하고 가사노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도를 말한다(이기영, 1987). 가정지향성이 높다는 것은 자신을 하나의 개인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어머니이고 아내인 가족의 일원으로 정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박영임씨가 살아온 과정과 어머니가 되는 과정의 경험들은 이러한 가정지향성이 하나의 생존전략임을 보여주었다.자신을 어머니이고 아내인 가족의 일원으로 정의하는 것은 "가정은 남자가 끌어가야 되는 것이고, 여자는 뒤에서 내조하고"라는 생각에 닿아 있었으며, 박영임씨는 자신이 여자라는 점을 "날 꾸밀 수도 있고, 아기자기한 것도 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도 좋다"는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었다. 또한 "남자로 산다고 해서 더 세상경험을 하고 그런 것도 없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더라도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였다.박영임씨는, 만약 "어떤 여자가 엄마이고 부인으로 사는 것에 불만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해서가 아니고 가정이 불안했기 때문"이며, "부부관계나 가족관계나 생활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끼지를 않았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성인 여성이 아내와 어머니의 정체성 이외에 다른 정체성을 추구함으로써능력이 되니까, 내 능력이 되는 한 사회활동을 해야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자녀가 둘인 지금의 심연주씨에게 일은 "경제적인 것"과 "애들한테만 매달려서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는"데서 오는 무료함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어느 정도의 보람을 의미했다. 심연주씨는 "예전에는 성취동기가 굉장히 높았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오히려 그런 게 퇴색하는 것 같고, 내 자신에게 미안하지 않을 정도로" 해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심연주씨는 자기투자가 적어지는 것이 인생에서의 우선순위가 바뀌었기 때문이며 그것은 인생주기상의 요구 때문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담담하고 부정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하였다.심연주씨는 "결혼과 출산은 여자로서 새로 태어나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면서, "결혼은 아주 큰 사건이니까 많은 변화가 있었고, 지금은 사실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꾸리고 그것보다도, 가족한테 내 생활을 거의 다 빼앗겨서 내 생활은 직장 말고는 별로" 없지만, 나이나 가족의 측면에서 봤을 때는 "그래도 좋은 때인 것 같다"고 하였다. 심연주씨는 '결혼으로 인해서 우선 순위가 바뀌고, 내 일 위주에서 가족 위주로 바뀌어서, 가족이 우선이 되었다'는 점을 여러 번 언급하였는데, 그것이 "부정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엄마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였다.결혼과 출산을 통해서 자신이 여자라는 점을 가장 크게 느꼈다는 심연주씨는 모성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거기에는 절대적인 존재로서의 어머니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지금은 애 입장이나 남편 입장에서 내가 꼭 필요한 존재고 내가 없으면 안된다"고 느낀다는 심연주씨는, "결혼 전하고 결혼 후는 너무 다르니까," 어머니이고 아내인 자신 말고 그냥 나 자신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못하고 산 것 같다"고 하였다. 자신의 참 모습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심연주씨는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는 것, 내가 하고 싶어서 정말 할 수 있는 그것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는 탐색기간이라고 봐요. 근데 여자의 일생 으로 봤을 때는 지금이 황금기인 것 같애요.그런데 박지현씨는 자신을 전문적인 일을 통해서 "자아실현을 해야 하는 그리고 할 수 있는 나"라고 규정하는 한편, 여자이기 때문에 경험하게 되는 "비일비재한 일들에는 별로 신경쓰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이 사회가 여성에게 부과하는 것들을 원칙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업주부란 "초라한 존재"이며 일은 "돈보다도 자기만족과 타인의 인정"을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는데, 이것은 가정에 충실하되 일에서의 성취를 통해서 현재의 갈등이 해결될 수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다. 이런 점에서, 박지현씨가 생각하는 '개인으로서의 나'는 성찰적이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적이며,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박지현씨가 언급하는 '개인으로서의 나'에 대한 기대는 '자존심'의 문제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이렇게 볼 때, 박지현씨가 어머니가 되는 과정은 가족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과 개인으로서 자신이 원하는 것 사이의 갈등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일로부터 자기만족과 타인의 인정은 얻고 싶지만, 모성 정체성과 자신이 추구하는 직업 정체성이 충돌할 때는, 개인으로서의 '나'에 대한 기대를 포기할 것 같다는 태도는, 박지현씨의 모성경험을 갈등적인 것으로 만드는 잠재 요인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태도는 "현재로서는 다른 어떤 것을 통해서도 아내와 어머니로서 내가 누리고 있는 것 이상을 성취할 자신은 없다"라는 말로 잘 설명된다.2. 직업 정체성 중심의 갈등적 해석전문직 취업주부인 이윤희씨는, 모성 정체성이 상황적으로 자신을 규정하기는 하지만, 직업 정체성이야말로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을 실현시키는 것이며, 모성 정체성은 자신이 부정하고 싶은 여성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강제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따라서 이윤희씨의 모성경험은 모성 정체성과 직업 정체성의 갈등을 내포한 것이며, 자신이 희생되는 경험으로 해석되었다.이윤희 : "진짜 내 모 차지한다"고 하였다.최현숙씨에게 있어서 일은, '개인적 성취감과 사회적 인정, 사회적 정체성과 경제력의 확보, 일을 통한 자기확인,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 행사'등을 의미하였다. 최현숙씨는 직장이 지방에 있기 때문에 주말부부로 생활하고 있고 그러한 생활패턴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최현숙씨가 지방에 있는 동안 남편은 8시까지 귀가하여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그것 때문에 남편의 직장생활에 지장이 크다고 한다. 최현숙씨는 주말부부로 사는 것에 따른 어려움이 크기는 하지만, 전업주부로만은 평생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하였다. 평생 전업주부로 사는 것은, "얼마가 지나면 내 모습이 어떻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런 기대를 갖을 수 없게 하고, "애는 크고 남편은 자기 일이 있고, 그러니까 자기 일이 없음으로 인해서 굉장히 공허감이랑, 내 자신이 뭔가 하는 그런 질문을 자꾸 하게 될 것 같은데, 그에 대한 마땅한 해답을 못 찾을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최현숙씨는 "모든 여자들이 다 직장에 다녀야 된다고는 생각 안한다"고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것에 자신감을 가지고 살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최현숙씨는 모성 정체성과 함께 직업 정체성을 추구하는 자신의 삶의 방식이 개인적인 지향에 따른 선택이며, 다른 방식의 삶도 개인적 선택에 의한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의미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연구자: 휴직하는 동안, 집에서 살림하고 애를 키우면서 그런 자신 의 모습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최현숙: 거의 매일 비슷한 생활의 반복이잖아요. 얼마가 지나면 내 모습이 어떻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런 게 없잖아요. 애 는 크고 남편은 자기 일이 있고, 그러니까 자기 일이 없 음으로 인해서 굉장히 공허감이랑, 내 자신이 뭔가 하는 그런 질문을 자꾸 하게 될 것 같은데, 그에 대한 마땅한 해답을 못 찾을 것 같애요. 존재이유나 그런 거에 대해서. 내 일이 있으면은 엄마 역할이나 아내 역할도, 내가 일을 하면서도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