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인해 우리는 첨단의 시대에 첨단의 사고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30년 전에 비해 1인당 GDP가 무려 20배 이상 향상됐으니 그야말로 기적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차도에 넘쳐나는 자동차들, 사무실이나 관공서 그리고 학교마다 비치된 최신의 컴퓨터,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정보화 사회의 첨병 휴대폰 등 도처에 산재한 문명의 이기 속에, 삶은 그것들에 의해 풍요와 편리를 보장받고 있다. 문명의 연장들이 제공하는 그러한 풍요와 편리를 남보다 더욱 그리고 꾸준히 보장받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효율의 시대에 경쟁의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며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가고 있는 그 길이 명확하지도 않는, 그저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 남들이 가는대로 발걸음을 옮기며 우리는 또 하루를 살아간다.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빠르게.디지털 시대라 명명하는 요즘, 세월은 강물처럼 흐른다는 말은 고전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하고 사람들은 그에 상응한 빠른 리듬으로 자신의 생활을 맞춘다. 남보다 한발이라도 앞서기 위해 빨리 보고, 더 빨리 정보를 얻고, 더 빨리 반응하려고 한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들을 채우기 위해 자기의 의지와는 독립되어 남보다 먼저 빨리 움직이도록 강요하는 가혹한 시간의 종용에 수동적으로 따를 뿐이다. 어쩌면 속도 경쟁의 시간의 메커니즘 속에 자신을 일부러 적응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생의 목표마저 상실한 마냥, 정체성을 잠식시키는 무표정 속에 고유한 자신의 일마저 그 중심에서 주체가 되지 못하고 문명의 노예로 전락한 이들에게 필요한 건 더 이상 채우기 위한 빠름 이 아니다. 의미없는 분주함 속에 잠시 등을 돌려 비우기 위한 느림 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우리의 불행이 물질적 빈곤에서 연유된 게 아니라면, 혹시 그 이유를 주위의 것들에 대한 무관심과 그로 인한 보듬는 여유와 따뜻한 마음의 상실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삶의 이유를 풍부하게 소유하는데서 찾을 게 아니라 풍성하게 수용하는 곳에서 문제의 해답을 찾는다면 우리는 좀 더 한가로울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의 척도를 더 이상 필요한 것을 얼마나 빨리 갖고 있느냐에 맞출게 아니라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여유를 가지고 벗어나 있는가에서 그 중심을 잡을 경우 더욱 윤택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빠름 과 채움 을 미덕으로 간주하기 보단 느림 과 비움 을 통해 삶의 여유를 가져보는 게 필요하다. 느림 은 물리적 개념으로 정의된 시간의 관념과는 다른 영역이다. 무위(無爲) 와 불위(不爲) 가 엄연히 다르듯, 느림 을 단순히 물리적 동작이나 지적 인식 능력의 게으름 과 부족함 과도 구별해야 한다. 느림 은 선택의 문제이다. 느림 은 그 자체로는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다만 불필요한 계획들로부터, 무의미한 분주함으로부터 허둥지둥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조금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 줄 뿐이다. 느림 에는 목표를 향한 추진력은 결여되어 있지만 뒤를 보고 옆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민첩한 토끼보다 느릿느릿 기어가는 거북이를 상기하며 문명의 변화 속도가 인식의 능력을 넘어서기 이전의 한가로움으로 잠시 회귀해보는 것이다.
♤ 들어가며오늘날 디지털 혁명을 바탕으로 한 컴퓨터와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보급 그리고 이용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새로운 기로에 다다랐다. 전자 민주주의 , 사이버 민주주의 , 인터넷 민주주의 등 정보통신의 기술적 요소와 관련해서 다양한 이름의 민주주의가 새로운 담론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기술이 제공하는 낯선 사이버 공간에서의 민주주의 에 대한 사그러들지 않는 욕망의 발로가 지난달 막을 내린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참여경선의 과정 속에서 본격적으로 빛을 내뿜기 시작하였다.지난달 27일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참여경선의 마지막 종착지인 서울 경선장에 노무현 후보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눈물을 쏟으며 환호성을 지르는 1천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정가의 애초 예상을 뒤엎고 이인제 대세론 을 노풍 으로 잠재우면서 노무현 후보가 승자로 자리매김을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이들. 이들이 바로 노풍 의 진원지로 알려진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후 노사모) 이었다.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정치문화의 새로운 현상이 미미하게 감지되고 있었으나 그 변화의 징후는 정치발전의 촉매제일지 아니면 걸림돌이 될지 판단이 보류된 상태였다. 그러나 지난번 국민참여 경선제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노사모를 중심으로 한 사이버상의 정치폭발은 더 이상 이러한 변화에 관망의 자세를 허용치 않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정치적 담론이 현실정치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때, 또한 그 원동력의 생성 자체가 권력의 기제로서가 아닌 자발적인 모임을 통한 보통 사람들에 의해 생성될 때, 이는 참여 민주주의의 잠재적 가능성을 현실태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사이버 공간이 이러한 인간의 만남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라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장래를 논하는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된다. 이제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시민참여로 인한 현실 정치의 변화와 이 변화가 진정 민주주의의의 발전에 거름이 현실에 있어서 누가 역사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하는 질문은 제1미디어 시대의 발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부적합한 의제이다. 그는 사이버 공간의 발전이 전통적인 정치학적 개념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의미의 정치를 출현시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본체크와 포스터가 주목하는 사이버 공간의 탁월한 잠재성을 누구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어느 테크놀로지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기술적 잠재성의 사회적 실현은 테크놀로지와 인간의 상호작용이 전개되는 결과이다. 즉, 사이버 공간의 정치는 사이버 공간의 속성 뿐 아니라 현실세계의 정치문화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물론 가상이지만 현실세계에 의한 사이버 공간의 식민지화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현실사회의 정치질서가 사이버 공간의 정치활동을 규정한다면 그것의 잠재성은 질식되고 말 것이다. 즉, 사이버 공간이 현실의 질서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한 사회적 공간이라면 사이버 공간이 현실의 정치발전에 기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사이버 공간과 현실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바라봐서는 사이버 공간의 진정한 정치적 잠재력을 이해할 수 없다. 사이버 공간은 현실의 사회질서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현실세계의 어느 공간보다 상대적으로 열려 있다. 사이버 공간은 결코 현실세계의 권력관계나 문화적 제약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으나, 적어도 현실의 질서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진원지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열린 공간이다.사이버 공간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함축성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 혹은 시민권력이라는 근대적 주제를 정치참여, 공동체, 공공영역 등과 같은 전통적 사회과학의 도구들을 사용해서 분석해야만 사이버 공간의 정치적 의미를 풍부하게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2. 사이버 공동체로서 노사모의 등장배경온갖 음모론과 색깔론을 무력화시키며 거칠 것 없이 휘몰아치는 노풍의 힘, 그 배후의 진원지인 노사모는 사이버 공간으로서 주목할 만한 연구 대상이다. 세계에서 유라인 네트워크가 스스로 또 다른 네트워크를 창출하며 자기 증식을 거듭하는 속도나 규모는 오프라인의 피라밋식 네트워크조차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다. 처음 약 6백 여명의 회원으로 단촐하게(?) 출범했던 노사모가 만 2년이 채 안된 현재 4만 여명의 대형 커뮤니티로 성장하고, 이번 경선 과정을 거치면서 하루 평균 수 백 명씩 신규 회원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바로 이같은 온라인 네트워크의 무한 확장성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정보·통신기술의 획기적 발달을 바탕으로 우직하리만큼 바보스러운 노무현 개인의 특성이 결합하여 오늘날 노사모가 탄생하게 하였다.3. 사이버 공동체 사회운동에 관한 논의사이버 공동체의 사회운동은 먼저 도구론적 입장에서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현실 사회운동을 지원하는 운동과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하는 이슈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운동으로 나눠볼 수 있다.{) 홍성욱·백욱인, 『2001 싸이버 스페이스 오디세이』(창작과 비평, 2001), 49쪽 참조.도구론적 입장에서 전개하는 운동은 사이버 공간을 커뮤니케이션이나 여론형성 및 저항의 효율적인 수단으로 활용하는 운동이다. 현실 사회에서 벌이는 사회운동은 사이버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여론을 형성하거나 현실에 개입할 수 있는 발판을 효과적으로 마련할 수 있다. 곧 현실사회에서 전개되는 모든 운동은 사이버 공간을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운동이나 노사모와 같은 사이버 공동체가 인터넷을 도입하여 이를 활용하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이런 경우 사이버 공동체는 현실 사회운동을 보조하는 도구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힘들다.둘째로 사이버 공동체 운동을 좀더 엄밀하게 좁혀서 보면, 사이버 공동체의 사회운동이란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운동 {) 같은 책, 50쪽 참조.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는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하는 이슈나 네티즌의 생활상의 요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운동이다. 이러한 운동으로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위한 운동, 지적 재산권을 시민의 차이나는 관여 수준의 정도가 사이버 공간 매개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성패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즉, 정치적 관여의 정도와 의사 소통적 관여의 정도 그리고 정치 커뮤니케이션 채널에 대한 평가 등을 포함한 시민적 관여의 정도가, 컴퓨터를 매개로 한 정치 참여는 물론 컴퓨터 네트워크를 정보 및 여론 탐지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정도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시민에 따라서도 정치적 이슈나 정치 일반에 대한 관심도가 높고, 자신의 정치적 행동이 정치 과정에 영향을 미치거나 미칠 수 있다고 느끼는 정도가 크며, 투표나 정치인에 대한 서신 발송 등과 같이 현실 정치에 대한 참여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컴퓨터를 매개로 한 정치 커뮤니케이션 채널의 이용에 더욱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결국 사람들 중에서도 시민적 관여의 정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컴퓨터나 컴퓨터 네트워크와 같은 새로운 정보 통신 기술 혹은 그로 인해 형성되는 사이버 공간을 정치 활동의 장으로 삼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한편, 새로운 정보 통신 기술과 민주주의의 실천 주체로서의 시민의 관계를 상정할 때, 민주주의와 언론의 관계 속에서 공중과 민주주의를 각기 유형화해서 살펴본 데이빗 알렌의 시도 역시 시사하는 바 크다고 하겠다. 그는 공중을 정보 습득형 공중(informed public) 과 행동형 공중(active public) 으로 구분한 바 있다.{) 크리스챤 아카데미, 『시민이 열어가는 지식정보사회』,(대화출판사, 1999), 145쪽 참조.그는 민주주의 이론을 이들 두 유형의 공중과 연관시켜 경쟁적·다원주의적·토의적·참여적 민주주의 등 네 가지로 다시 유형화하고 있다. 그리고 정보 습득형 공중 은 경쟁적·다원주의적 민주주의와 밀접히 연계되고, 행동형 공중 은 토의적·참여적 민주주의의 시민적 기반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보 습득형 공중 은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만을 필요로 하면서 상대적인 고립 속에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말하는 것이다. 이를 단순화시켜 표현하면, 사이버 공간에서의 시민적 참여란 컴퓨터 통신망을 통한 정보 습득, 의견 형성, 토론과 비판, 의사 결정 행위 등이 이루어지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엄밀하게 구분되거나 반드시 단계적인 것은 아니지만, 대개 정보 습득과 의견 형성은 개인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보다 집단적이거나 사회적인 수준에서의 토론과 의사 결정으로 확대 혹은 발전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수준참여유형유형별 형태정보통신서비스비고개인정보습득공공문제에 관한 정보 검색과 인지각종 정보 제공 사이트그밖에 시민운동 단체나 통신 동호외 등의 사이트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정치참여도 가능의견형성개인적인 숙고와 의견형성·표출전자우편전자게시판집단정치토론집단적인 토의와 여론형성공공게시판 토론방정치행동집단적인 의사결정과 실행전자우표/캠페인사이버 공간에서의 시민적 정치 참여의 단계별 유형{) 같은 책, 148쪽 참조.위의 은 컴퓨터 네트워크를 매개로 한 정치 참여의 경우, 개인적인 수준에서의 관련 정보 습득으로부터 각 개인의 의견 형성과 이를 기반으로 한 집단적 수준에서의 정치 토론 및 정치 참여 행동 등을 네 가지고 유형화시켜 본 것이다. 이는 결국 일반 의지로서의 시민 여론이 정치 과정에서 실제적인 힘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관련사안에 대해 개개인이 충분하고도 정확한 정보를 습득하고 이에 대한 주체적 성찰을 통해 시민 나름의 의견이 형성되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시민 상호간의 활발한 대화와 토론 과정을 거쳐 일정한 여론 형성은 물론 특정한 정치적 의사 결정 및 실천 행위로 진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이러한 사이버 공간과 시민적 참여의 단계별 유형을 노사모에 적용해 보면 노사모라는 사이버 공동체가 형성되고 또한 이번 민주당 국민 경선에서의 효과에 대한 과정을 논리적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노사모의 태동에서부터 이미 노무현이라는 관련 사안에 대해 각자의 개인들은 경험적·실증적 자료를 통해 충분한 정보를 가질 수 것이다.
♤ 프롤로그오늘날 우리는 한시라도 광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들의 삶 곳곳에 광고는 침투하여 우리로 하여금 광고를 전혀 낯설지 않게 만든다. 이러한 광고는 자본주의의 신화이다.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광고는 그 구조적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을 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문화 현상을 가장 적절히 설명하고 있다. 이는 광고가 자본주의적 지배 이데올로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이러한 광고의 신화에 바쳐지는 희생의 제물은 우리의 욕망이다. 광고는 욕망을 먹고 산다. 생의 지속을 위해 광고는 우리의 욕망을 먹어 치우는 것만이 아니라 나아가 우리의 욕망 자체를 조작한다. 이렇게 길들여진 욕망은 자본주의적 가치 증식과 시장의 원리에 의해 증폭된 물질의 신들에게 제물로 바쳐지고 있다. 광고가 우리의 욕망을 지배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광고는 우리의 시선이 닿는 어느 곳이나 펼쳐지며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광고에 반사되는 인간들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조작되고 가꾸어진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그 이미지들이 동시대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일 수 있다는 끊임없는 설득은 우리들의 모습을 광고 속의 이미지로 바꾸어 놓는다. 광고가 쉴 새 없이 제공하는 조작된 신화적 이미지에 동질화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광고가 움켜쥐고 있는 것이다. 그 수단으로 광고는 선택 , 기회 , 선택의 자유 라는 광고 특유의 논리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선택, 기회, 자유라는 광고이데올로기의 배후에는 소비 라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작용하고 있다. 우리에게 선택은 이미 광고에 의해 주어진 소비할 상품의 선택이며 기회 역시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한다는 식의 소비할 기회인 것이다. 또한 자유는 능력있는 자의 소비를 통한 욕망 충족의 자유인 것이다. 이러한 소비의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 광고는 소비자가 현재의 자연스런 생활에 최대한의 불만을 느끼게 한다. 이는 그 사회의 생활양식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활에 대한 불만이다. 그래서 광고는 불만의 해소를 위해 그리고 삶의 윤택함을 보장받기 위해 다이어트 상품이든 미용 상품이든 자신들이 제안하는 상품을 사용하라고 종용한다.소비사회의 메커니즘 속에서 우리의 욕망이 광고에 의해서 창조되고 조작된다. 개인의 현실생활에서 불만과 결핍의 강조를 통해 생성된 욕망은 허위이며 상상된 욕구일 뿐이다. 필요에 의한 욕구가 아닌 창조된 허위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우리는 매일 소비하지만 결국엔 부족, 결핍의 메커니즘에 종속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자유는 의식의 저편으로 감금당해 버리고 요원한 것이 되고 만다. 오늘도 우리는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따라 먹고 마시고 옷을 산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멋지게 신용카드로 계산한다. 그러나 일상의 작은 선택에서 진정한 자유는 광고에 의해 잠식되어 버렸고 우리는 자유스럽다고 사고하도록 광고에 의해 길들여졌을 뿐이다. 계산의 순간 우리는 잠시 망설인다. 배용준 이 될 것인지, 아니면 정우성 이 될 것인지.♤ 본론Ⅰ. 광고 속의 기호학광고는 수많은 기호로 구성되어 있다. 광고 속에서 보여지는 광고 상품, 광고에 등장하는 모델이나 소품, 광고에서 흐르는 음악이나 음향 효과, 광고에서 강조하는 메시지 등 모두가 기호들이다. 즉 광고는 다양한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다양한 대치물들을 찾아 헤매인다. 마치 성을 상징하기 위해 미니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성을 등장시키듯이. 더불어 이러한 기호체계에 촬영 각도, 배경, 모델의 몸짓 표정 등의 기호 요소들을 교묘하게 계산하여 광고 수용자에게 전달한다. 결국 광고는 영상 기호와 음성 기호, 그리고 언어 기호로 구성된 하나의 텍스트인 셈이다.일반적으로 광고는 광고 커뮤니케이터가 광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특정 의미를 바탕으로 상징을 만든다. 즉 광고는 광고 상품에 상징적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다양한 기호를 광고 커뮤니케이터의 의도대로 구성한다. 따라서 광고는 기호학적인 분석 방법을 통할 때 의미를 생산해 내는 기호들의 구성체를 발견해 낼 수 있다. 특히 현대 사회의 광고는 그 의미가 모호한 경우가 많아 기호학적 분석 방법을 통해 광고에 담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유용하다.Ⅱ. 광고의 기호학적 분석기호학적 관점에서 광고는 그것 자체가 기호이며, 상품에 상징적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다양한 기호들이 의도적으로 구성된 텍스트이다. 즉, 광고 텍스트는 기표와 기의가 결합된 기호이며, 이것이 다시 기표가 되어 이차적 의미, 즉 함축적 의미를 가진다. 일차적 의미로는 기표의 직접적이고 객관적인 의미인 외연적 의미인 반면, 이차적 의미인 함축적 의미는 일차적 의미와 연계된 광고 수용자의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개입에 의해서 해석된다. 이러한 일차적 의미에서 이차적 의미로의 발전의 순간 신화와 이데올로기가 작용한다.Ⅲ. 사례분석1. LG 카드 TV광고노트북이 놓여있는 데스크 위로 바람에 날려가는 서류뭉치들을 배경으로 탤런트 배용준이 사무실을 뛰어 나오고는 장면이 등장한다. 곧이어 윤도현 밴드가 부르는 강렬한 락비트의 배경음악이 깔리며 배용준은 해안선을 끼고 도는 도로를 멋진 스포츠카를 몰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달리고 있다. 그리고 최고이기에 최선을 다할 겁니다 라는 멘트와 함께 화면에는 수영장에서 물살을 가르며 수영하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뒤이어 한아름의 꽃다발을 들고 함박 웃음을 지어보이며 어딘가로 향하고 이후 검은색 가죽옷을 차려입고 부서지는 파도에 흰포말을 일으키는 바닷가에서 오토바이를 등받이 삼아 한껏 여유를 부리는 모습이 날라드는 갈매기들과 함께 보여진다. 그리고선 어느 째즈바에서 트럼펫을 부는 장면으로 옮겨진다. 난 LG카드만 써요 라는 멘트를 마지막으로 LG 레이디카드와 LG2030 카드가 화면을 채우며 CF는 끝난다.이 15초짜리 광고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아직 해가 떨어지기도 전에 업무를 마치고 스포츠카를 타고 수영장에 가서 수영도 하고 한적한 바닷가를 찾아 시원한 바닷바람에 몸도 맡기고 저녁엔 어느 분위기 좋은 째즈바에서 트럼펫도 연주하는 배용준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내게 힘을 주는 LG 카드가 있기 때문에 난 이러한 모든 여가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즉, 이 CF의 구성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최고이기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일하는 나 와 업무가 끝났을 때 최고의 수준에 걸맞는 여가 활동을 즐기는 나 가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이 CF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은 후자이다. 지긋지긋한 직장을 벗어나서 즐길 수 있는 여가는 무엇에 의해 보장되는가. 바로 최고이기에 최선을 다하는 당신은 LG카드를 사용함으로써 그 모든 여가 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즉, LG카드를 사용하는 당신은 최고라는 의미임과동시에 최고가 될 수 있는 힘을 준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그렇다면 이를 좀더 기호학적으로, 구체적으로 접근해보자.먼저 이 CF에서 사용된 기표를 크게 영상 기표, 음성기표, 문자기표로 분류해보자.{영상기표배용준, 노트북, 스포츠카, 수영장, 바닷가, 갈매기, 째즈바, 날아가는 서류뭉치, 검은색 가죽옷, 오토바이, 부서지는 파도등등음성기표배경음악: 누군가 내게 말했어 이건 바로 내가 세상을 당당하 게 살 수 있도록...내게 힘을 주는 나의 LG카드야.파도소리멘트: 최고이기에 최선을 다할 겁니다.난 LG카드만 써요.문자기표LG카드위 표에서 나열된 기표가 나타내는 기의를 중심으로 LG카드 CF가 기호로서 의미를 가지기 위해 필요한 이항대립의 구조를 파악해 보자.{배용준(꽃미남)LG카드최고스포츠카LG카드가 있는 나수영장/바닷가/째즈바여가활용 가능힘당당함자유非배용준(추남)他카드최저無승용차LG카드가 없는 너사무실 등 직업전선여가활용 불가능힘없음비굴함구속이상의 형식적 이항대립 구조를 통해 우리는 이 CF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즉, 최고인 사람들은 LG카드를 통해 각종 여가생활을 당당하게 향유할 수 있는 자유와 능력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생계에 얽매여 여가생활을 누릴 자유와 능력도 없다. 당신은 어느 쪽에 속하길 원하는가? 이러한 광고에 노출된 수용자들(잠재적인 소비자)은 그들의 욕망과 자존심에 신화적으로 호소하는 이 메시지를 잠재의식 차원에서 분명히 알아차리고 있다. 그러나 잠재적인 자각이 의식적 차원으로 발전될 경우 이러한 CF의 의도는 망각되어 버리고 오로지 소비의 가능성만을 타진하게 된다. 이 점이 바로 광고의 위력이다. 우리의 욕망에 대한 호소와 조작은 이러한 광고의 잠재적 구조 속에서 신화와 연계됨으로써 이루어진다. 결과적으로 광고의 형식적 구조 속에서의 의미는 쉽게 발견되어질 수 있지만 이러한 구조를 바탕으로 하는 궁극적인 의미는 광고 제작자에 의해 잠재적 구조에 갇혀 버림으로써 표면적으로 우리가 눈치챌 수가 없게 된다.2. LG카드 광고의 이데올로기적 기능광고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꽃이라는 등식을 앞서 언급한 바 있다. 광고가 상품구매자를 설득하고 소비자의 행동을 규정하는 선전이듯이 광고는 끊임없이 상품을 선전한다. 상품을 사서 쓰고 소비하라고 하는 것이 광고지 상품을 만들고 생산하라는 것이 광고가 아닌 것은 광고가 생산보다는 자연스럽게 소비를 강조하는 것과 통한다. 그래서 광고는 생산과 소비의 원활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소비 에 대한 어떠한 거부의 몸짓을 행할 수 가 없다. 광고는 이렇게 소비 라는 말과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차라리 현대 자본주의의 정신을 맹종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광고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허용하지 않고 자본주의의 소비정신에 모든 사람들이 순응하고 굴복하게 만든다. 물론 그 순응과 굴복의 결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은 불행과 궁핍이 아니라 행복과 풍요라고 광고는 꾸준히 이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강조가 실질적으로 행복을 가져오지 못하고, 행복을 가져온다 하더라도 소수에게 한정된 행복과 풍요란 점에서 광고는 이데올로기 기능을 하고 소비 이데올로기의 파수꾼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