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암각화의 현황과 보존대책한국 암각화의 현황울주 반구대 암각화-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의 사연대 상류에 있는 반구대 마을에서 대곡천을 따라 1킬로 내려가면 암각화가 세워진 절벽이 보인다. 한국 암각화를 대표하는 반구대 암각화는 거의 북쪽을 향하고 있어 낮에는 해가 잘 들지 않는다. 하지만 여름철에는 아침햇살이 동쪽으로 비스듬히 들기 때문에 이 암각화는 여름철에 제의를 올리기 위해 제작되었다고 보여진다.이 암각화의 방향은 우리에게 제의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동북 아시아 일대의 암각화들처럼 우리 암각화들 또한 태양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반구대 암각화에서 주로 다루는 소재는 동물이며 그 밖에 인물상과 배, 사냥이나 수렵 용구, 그리고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호 등도 섞여 있다. 새김법은 면각과 선각의 두 가지 기법을 모두 사용하고 있으며 겹쳐진 상태로 보아서 면각법으로 새겨진 것이 선각법의 것보다 앞서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바위면 중심에서 약간 동쪽으로 간 곳에 면각으로 새겨진 고래의 몸통을 가로지르는 선각으로 덧 새겨진 표범의 꼬리를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바위면 왼쪽의 사냥용 그물이 면각의 고래 위로 깊숙이 새겨져 있는 것 등 면각 위로 덧새겨진 선각화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이처럼 면각화를 새기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선각화를 새겼겠지만 면각화를 새긴 사람들과 선각화를 새긴 사람들은 같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추정된다. 그것은 선각화가 면각화를 최대한 살려가면서 새겨진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림의 구도를 보면 면각화는 대체로 일정한 구역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선각화는 되도록 중복을 피하며 면각화가 없는 곳에 산만하게 흩어져 있다. 되도록 빈 공간을 찾아 서로 훼손하지 않으면서 새겨진 것이다. 제작 시기는 다르지만 모두 새끼 밴 동물을 새겨서 생산의 풍요를 기원하고 있다. 한편 면각과 선각이라는 표현 기법도 완전히 분리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면각에서도 선각 기법을 이용한 그림들이 쪼아파기와 긋기 수법으로 새겨져 있다. 글씨와 선각화가 있는 부분은 바위면이 여러 군데 깨어져 없어졌다.그런데 이 바위면은 처음에는 지금처럼 매끈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글씨가 새겨진 바위면의 아래 부분을 자세히 보면 본래의 바위면이 깨어져 나간 자리에 선각의 글씨와 그림들이 새겨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글씨 등을 새기기 위해 바위를 평면으로 다듬은 것임을 말해 준다. 이 때문에 울퉁불퉁하던 바위면이 깨어지면서 동물 및 인물상이나 선각의 추상적인 도형들이 많이 파손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동물들과 사람들은 면각으로 새겼는데, 동물상은 쪼아파기로 매우 얕게 새겨져 있다. 비바람으로 마멸이심하여 지금은 바위면의 오른쪽과 왼쪽 끝에 약간 남아 있고 중심부에는 비교적 깊게 새겨진 것들만 몇 개 보일 뿐이다. 따라서 현재 남은 것만으로는 전체 규모를 알기 어려우나 양쪽 끝과 중간 군데군데에 보이는 그림들로 미루어 처음에는 바위면 상반부 전체에 가득히 새겨졌으리라 추정된다. 바위면 왼쪽은 가장 풍부한 그림이 남아 있는 부분으로 종류도 가장 다양하다. 사람 얼굴 1점, 사슴 종류 10점, 고래 비슷한 물고기 2점 등 약 40점 가까운 그림이 있다. 바위면 가장 왼쪽에는 꼬리를 위로 치켜 올린 면각의 동물 몸체에 선각의 사람 얼굴이 붙어 있는 그림이 있다 얼굴은 사람 모습이고 몸은 호랑이와 비슷한 동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그렇게 보는 것은 사람 얼굴과 사슴으로 보이는 동물이 겹쳐져서 그 동물의 머리 부분에 얼굴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머리를 마주 대고 있는 여러 쌍의 사슴들이 있는데 대체로 한 마리만 긴 뿔이 있어 암수 한 쌍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암수 한 쌍이 묘사된 것 역시 새안의 풍요와 관련된다고 볼 수 있으며 몽골이나 중국 북부 등지에서도 많은 동물들이 쌍으로 표현된다. 중심 위쪽에 팔을 허리에 대고 서 있는 인물상이 있으며 이와 거의 유사한 인물상이 그 아래에 또 하나 있다. 바위면 가장 중심부에는 크기가 매우 작은 동물 두 마리와 작은 꽃 암각화-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는 규모와 내용면에서 우리나라 최대의 암각화 유적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두 유적에서 보이는 동물이나 인물, 추상적 도형 암각화 등은 다른 유적에서는 전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어 규모에 비해 매우 특수한 유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암각화는 어떤 형태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신상 암각화들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15곳의 주요 암각화 유적 가운데 여덟 군데의 유적이 형태가 유사한 신상 암각화들 이다.신상 암각화들은 반구대나 천전리 등의 동물 및 인물 암각화와는 달리 구성하고 있는 내용이 획일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고령 양전리 유적을 비롯한 신상 암각화들은 대부분 한 가지 형태의 도형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것들은 정해진 바위면에 중복되어 새겨져 있으며 한 번 새긴 것이 오랜 기간이 지나고 풍화 작용 등으로 마멸되어 잘 보이지 않으면 다시 그 위에 새기고 하는 작업이 반복되어 온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이 바위면을 신성하게 여기면서 그들이 숭배하는 신상의 모습을 새기고 의식을 올렸을 것이다. 바위들은 칠포리 유적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고인돌 등의 작은 바위를 제외하면 강가에 자리잡고 있다.신상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는 반구대나 천전리 등지의 동물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처럼 규모가 크지 않다. 암각화 전면에는 몇 사람이 서서 의식을 거행할 공간이 약간의 층단을 이루고 있다 암각화 자체의 크기나 전면의 공간 등으로 미루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의식을 치루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자신들의 문제 해결 기원을 드리기 위해 개별적 또는 소집단적인 의식을 거행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고령 양전리 유적의 암각화 형태가 가장 복잡하며 그 밖의 것은 양전리의 도형이 간략하게 처리되거나 약간씩 변형된 형태로 볼 수 있다. 양전리 유적에도 완전한 형태와 생략된 형태가 섞여 있는데 완전한 형태를 중심으로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첫째, 전체적인 윤곽은 사다리꼴이것이 대표적인 예이다.그런데 암각화는 앞으로도 새로운 유적을 발견할 가능성이 많이 남아 있다. 한국 암각화는 대부분 한 곳에 대규모로 새겨진 것이 아니라 작은 크기의 바위에 소규모로 새겨져 있어 그 동안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또 현지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고 해도 암각화에 대한 지식 없이는 알아보기 힘든 실정이었다.우리나라의 암각화에는 동물이나 인물을 새긴 것보다는 신상을 획일적으로 새긴 것이 훨씬 더 많다. 그래서 동물 암각화인 울주 천전리 암각화의 일부나 반구대 암각화는 그 규모에 있어서 한국 최대의 유적이지만 분포 수에서는 오히려 특수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우리의 암각화가 시상 위주인 것은 시베리아나 중국 북부 또는 몽고릐 암각화들이 동물이나 인물 또는 신상들이 한 곳에 섞여 새겨진 것과 비교된다.이러한 사실은 북쪽의 암각화들이 유목민들에 의해 남겨진 것과 달리 우리나라의 암각화들은 농경 정착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측면이 고려되어야 한다. 또한 북쪽에서 남으로 전파되면서 점차 종교 의식의 정형화가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정형화된 신상들이 숭배의 대상으로 자리잡은 것으로도 풀이될 수 있다.한국의 선사 암각화에 대한 관심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15,6곳의 유적이 조사되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유적들이 발견될 것이다. 여러 편의 논문들이 발표되었지만 그 수는 매우적으며 실제로 연구를 위한 기초 조사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그러나 아직 시작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기왕의 유적들을 답사해 보면 상당수의 암각화들이 인위적인 마멸 등으로 심각하게 훼손되어 제대로 보존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발견된 지 10여년이 지나도록 문화재 지정조차 되지 않은 곳도 있다.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한국의 암각화는 동북 아시아 암각화, 넓게는 세계 각국에 분포하는 암각화들 가운데 한 부분으로, 암각화를 새긴 사람들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문화 유산을 지키고 보존하여 후대에 물려주어야변색되었으며 탁본 흔적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교수는 표면박리 절리, 균열을 따라 스며 나오는 습기, 절리와 층리면을 따라 올라오는 토양수, 사람의 접근의 의한 훼손, 전면의 모래바닥의 먼지, 암벽 위에 쌓인 흙·낙엽·생물 등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이상헌 교수는 그 대책으로 반구대 암각화에 대해서는 표면박리 및 박리된 곳에 대한 정밀조사 후 보강처리해야 하며 절리와 균열에 대한 접착조치, 절벽 위의 흙, 식생 등 환경정비, 위로부터 빗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배수로 설치 및 지하수 유입 차단조치, 물에 잠기지 않도록 수계에 대한 적절한 조치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천전리 각석에 대해서는 빗물, 흙 및 토양수의 흘러내림 방지를 위하여 차양설치, 지표면과의 접촉부의 정비, 암벽 위의 흙·낙엽·식생의 제거, 탁본 금지, 전면의 모래바닥 정비, 관람객에 대한 적절한 조치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그러므로 지금 현재 남아있는 한국 암각화를 조금이라도 온전하게 보존하기 위해서는 관광객을 배제하는 한편, 암각화를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는 것 보다는 그 비용으로 암각화 보존을 위한 공사를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2. 선사 예술론에 대해서우리나라에서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선사시대 그림은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그려온 것으로 보이는 울산 대곡리의 반구대 암각화이다. 유감스럽게도 아직 우리나라에는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 같은 고도의 희화적 표현력을 지닌 진정한 선사시대 대가의 그림은 발견되지 않은 상태이다.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신석기시대에 그려진 암각화들에선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에서 볼 수 있는 그 뛰어난 대가의 솜씨를 발견할 수 없다.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오면서 천재나 거장의 솜씨는 사라져버리고 평범한 화법의 그림들만이 넘치게 되는 것이다.물론 이러한 평범한 화법의 선사시대 그림들조차 우리에겐 그 건강한 생명력과 독특한 주술성으로 깊은 감동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도대체 어떤 이유로 신석기시대에 들어서면서 미술의 수준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