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제 & 불가촉천민제 카스트 제도1. 와르나와 자띠2. 철의 제도3. 규제와 규율4. 세습적 직업5. 상 하향운동6. 도전과 응전7. 카스트 제도의 현대적 의미 불가촉천민제1. 아추뜨2. 사회의 낙후계급3. 변하지 않는 인식 카스트 제도1. 와르나와 자띠카스트(Caste)라는 단어는 포르투갈어의 가스따(Casta: 혈통)에서 유래한 것으로 계급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도에서 전통적으로 카스트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어져 온 것은 와르나(Varna)와 자띠(Jati)이다. 와르나와 자띠는 계급제도를 표현하는 거의 같은 뜻의 단어로 사용되어지고 있지만 좀더 자세히 구분하자면 와르나는 카스트를 광범위 하게 구분하는 인종적, 문화적인 분류이고 자띠는 카스트를 기능적, 직업적으로 분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4가지의 와르나 즉, 브라만(Brahman), 끄샤트리아(Kshatrya), 바이샤(Vaisha), 수드라(Sudra) 와 약 3000개의 자띠 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카스트 제도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이론이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종적인 원인에서 그 기원을 찾는 것이다. 와르나 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는 ‘색깔’ 이다. 인도대륙에 대한 아리아인의 침입이 시작된 후 지배자로 등장한 아리아인들의 피부색은 백인에 가까웠던 것으로 믿어진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지배자인 아리아인들은 지배계급으로서의 우월성과 혈통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피부색에 의한 계급제도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시카스트제도에는 아리아인과 비 아리아인의 두 계급만이 있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 이다. 이와 같이 극히 단순했던 계급구분이 종교의 발전, 유목생활에서 농경생활로의 변화, 아리아인과 비 아리아인의 혼혈 등으로 사회생활이 복잡해지자, 그 혈통 그리고 사회적 기능에 따라 여러 부분으로 분화되어 갔다고 추정하는 것이다.카스트 제도에 대한 언급이 인도의 성전에 등장하는 것은 리그 베다 가 처음이었다. 리그베다 중에서도 비교적 후기에 속하는 기원통시켜 사회를 유지하고, 마지막으로 수드라는 발이 전체 몸을 받치지만 항상 마음이 명령하는 대로 움직이듯이 다른 계층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것이다. 카스트의 기원이 기능적 분화의 결과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위와 같은 리그베다의 상징적 표현을 자주 이용한다.2. 철의 제도사실상 베다 이후에 등장한 마하바라따 에도 각 카스트가 가지고 있는 다르마 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순수하고, 출생과 다른 의식에 의해 정화되었으며, 베다를 완전히 연구하고, 정화의식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봉헌물의 남은 것을 먹고, 스승을 존경하고, 종교적 수행을 계속하고, 진리를 위해 헌신하며, 진리, 공평무사, 비공격성, 불상해, 겸손, 연민, 금욕주의를 지키는 사람이 브라만 통치자의 집무실에서 직무를 수행하고, 베다의 연구에 골몰하고 주고받는데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끄샤뜨리아, 무역, 목축에 종사하거나 농업에 헌신하고 베다의 연구를 수행하는 자는 바이샤 , 모든 종류의 음식을 먹고 ,모든 종류의 일을 하며, 불결하고 베다를 공부하지 않으며, 종교적 명상을 하지 않는 자는 수드라’ 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마하바라따의 정의와는 달리 바가와드 기따 에서는 ‘각 계급의 의무가 운명적으로 결정되어있다.’ 는 숙명론이 등장한다. 바가와드 기따 의 18장 41~44를 보면 각 계층은 원래 태어나기를 그것에 알맞게 태어났다고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마누 법전에는 각 카스트의 의무를 우주적인 법칙 즉, 업(業 : Karma)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마누 법전에 의해 카스트 제도는 철(鐵)의 규칙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초기에는 일반적인 원시사회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극히 단순한 계급 구조가 종교적 승인을 받음으로써 하나의 종교적 윤회법칙으로 확고하게 된 것이다. 즉, 현재의 자신의 카스트는 전생의 업에 의해 정해진 것이므로 조금도 슬퍼하거나 기뻐할 이유가 전혀 없다. 만약 현재의 상태가 불만족스럽다면 현재 카스트에 규정된 다르마를 준수하여 살아가는 기능적인 면에서의 교류가 활발했었고, 서북 인도지방에서는 이 경향을 기원 후 10세기경 까지 남아있었던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마누 법전이 공포된 이후에는 카스트 제도는 경직화 되어 이 전통이 현대에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현재에도 인도에는 약 3000개의 카스트가 각기 고유의 관습, 규칙, 협동생활, 집단정신 그리고 소속의식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한 개인의 카스트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출생에 의해 결정되고 그의 카스트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은 그가 근본적인 규칙을 지키는 한 지속된다. 각 카스트가 특히 강조하고 있는 규율은 식사와 사회관계이다. 예를 들면 어떤 카스트는 소고기를 제외한 모든 고기를 먹어도 좋다고 하지만, 어떤 카스트는 생선은 되지만 고기는 안된다. 또 생선과 고기는 안 되지만 달걀은 되는 카스트가 있는가 하면 달걀마저도 안된다 는 카스트 가 있다. 이외에도 각 카스트가 목욕하는 방법, 이를 닦는법, 의상,앉는 법, 눕는 법, 종교관습, 종교의 의식체계 등에 대해서 독자적 규정을 갖고 있다. 결혼문제에 있어서 같은 카스트 내의 특정한 혈통관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허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카스트에서는 친사촌간의 결혼은 금지하고 있다. 남부인도 에서는 외사촌 간의 결혼이 다른 어떤 형태의 것보다 좋은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반면에 북부 인도에서는 금지되고 있다. 이 규율상의 문제가 카스트 사이의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한 카스트의 구성원이 지켜야 할 규율이 다른 카스트의 그것과 위배되는 경우가 있다.4. 세습적 직업이론적으로 말하자면 인도의 모든 카스트는 그 자신의 세습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실상, 이발사, 농부, 정원사, 금세공사, 대금업자, 목수 등 일반사회에서 필요한 모든 기능의 카스트 들이 존재하고 있다. 과거부터 일부 특수직업을 제외하면, 카스트의 직능상의 세습제는 강제적 규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현대 인도에서 무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직업이 있다면, 그것은 정부공무탁부 카스트는 독점적으로 지위를 누리고 있다. 또 종교의식의 경우는 브라만만이 주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직능상의 이유 때문에 인도의 농촌마을 에는 보통 20~30개 이상의 카스트들이 카스트 간의 폐쇄성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밀접한 의존관계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하나의 카스트는 보통 한 개의 언어군 내에 존재한다. 따라서 지역의 크기, 인구의 비율에 따라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한 개의 카스트는 한 개의 빤츠야뜨(평의회)를 가지고 있다. 이 위원회는 주로 카스트 구성원간의 분쟁해결과 카스트 자체의 이익과 구성원의 복지향상을 도모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이 카스트 빤츠야뜨 에서는 다른 나라에서라면 법정에서 다뤄야 할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다. 영국이 들어오기 전 인도의 왕들은 사실상 카스트 빤츠야뜨에게 사법권을 인정했었다. 왕들이 사법권을 행사한 것은 카스트 간의 분쟁에서 뿐이었다.5. 상하향 운동카스트 간의 상대적 지위가 지난 수천년 간 항상 고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네 가지의 기본형태의 순위는 그대로였지만 바이샤 계급의 한 자띠가 끄샤뜨리아 계급으로 향상되었거나 브라만계급의 한 자띠가 끄샤뜨리아 나 바이샤 로 하락하는 등의 변화가 자속적 으로 있어왔다. 이 카스트 간의 변화는 Twice Born Group 에서는 상 하향 운동이 함께 일어났었지만 수드라 계급 에서는 상향 운동만이 주로 있어왔다. 이와 같은 상대적 지위의 변동은 주로 경제활동이 활발하거나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 일어났었다. 특히 어느 한 카스트의 기능이 그 시대의 수요에 비해 부족할 때 그 카스트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유력하게 되고 그에 따라 그 상대적인 지위를 향상시키려고 노력한다.이와 같은 카스트의 상향운동은 경제적 변화가 많지 않았던 과거에 비해 기회가 많은 현대에 더욱 활발해 졌다. 이에 비해 하향 운동은 상위 카스트가 경제적, 정치적 이유로 더 이상 자신들의 지위에 합당한 생활을 할 수 없을 경우나 전통적으로 천하다고 생각되어지는 직업에 종사할 경우에 발생한다.6을 배출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혁운동이 가진 아이러니는 반 카스트 운동이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카스트를 창설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는 나나끄 가 창설한 시크(Sikh)교의 신자는 끄샤뜨리아 계급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까비르가 이끈 운동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바이샤계급화 되었다. 또 인도 외부에서 유입된 종교에서도 카스트는 무시되지 않고 있다. 인도의 이슬람교에서는 현재의 아랍이나 이란방면에서 이주해 온 무슬림의 후손들과 인도에서 개종한 무슬림들은 서로 다른 카스트를 형성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도, 께랄라(Kerala)주의 경우에는 인도의 전통적인 상위 카스트와 하위카스트가 사용하는 교회가 다르다. 평등을 강조하는 이슬람교와 기독교도 인도에서는 카스트 의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카스트제도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면 그것은 영국 통치 하의 시기였다. 영국법정은 전통적인원칙, 즉, 상위카스트는 하위카스트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는 전통적인 원칙을 무시해 버렸다. 그리고 영국 통치 하에서 성장한 대도시는 카스트 간의 구분이 불가능 하게 만들어 버렸다. 대도시의 지식인들은 카스트 제도를 무시하고 그것의 중요성을 일반사회생활에서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경향을 나타내지만, 현재에도 결혼만은 같은 카스트 내에서 하려고 한다.7. 카스트 제도의 현대적 의미현대의 카스트의 위치를 논하려면 우리는 과연 카스트의 정의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베다 시대의 정의, 다시 말해 힌두이즘적인 정의를 내린다면 ‘까르마(Karma)에 의해 형성된 현세의 다르마(Dharma)' 라고 할 수 있다. 즉, 전생의 업에 의해 결정된 현세의 의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의는 너무 편협하고 너무 이론상만으로 가능하며 특히 그 직능상의 성격은 인구의 증가에 따라 매우 비실질적 인 것으로 변하였다. 예를 들어 브라만 가정의 아들이라고 할지라도 장자상속의 원칙에 의해 차남 이하는 브라만으로서의 즉, 한 마을 사제로서의 생활터전을 린다.
자아발달단계 이론에 따른 내 성격분석* Sigmund Freud 의 심리 성적 성격발달 이론을 통한 분석프로이드에 따르면, 각 단계마다 유아가 추구하는 만족을 충분히 얻을 수 있을 때에 그 다음 단계로의 이행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고 한다. 만일 충분한 만족을 얻지 못해 욕구불만이 생기던지, 혹은 그 시기에 유아가 느낀 만족에 지나치게 몰두하게 되면, 다음 발달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그 시기에 고착 된다고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나의 발달 단계에 있어서도 적용될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였다.1. 구강기(출생~1세) :구강기에 고착하게 되면, 리비도가 입에 집중되어, 입술이나 손가락 빨기, 과식이나 과음, 과도한 흡연 과 같은 특징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나는 구강기에 충분한 만족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보통 긴장하였을 때 손톱을 물어뜯는 행위를 하지만, 나는 평소에도 자주 손톱 옆의 살들을 무의식 적으로 물어뜯거나 오른 손 가운데 손가락의 굳어진 살을 물기를 반복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항상 무엇인가 깨물고 싶어 해서 주변사람들이 말린 적이 많았다. 그리고 가끔은 배가 부른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과식을 하게 되는 때가 많았다. 아마도 이 단계에 서 비롯된 구강기적 고착증세가 나타났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타인에게 의존적인 면에 있어서는 오히려 반대이다. 혼자서 해결해 나가는 것을 더 좋아하고 의존하기 싫어하는 면이 더 많은 것 같다는 면에서는 구강기적 고착증세가 있긴 하나, 그다지 심한 편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려본다.2. 항문기(1~3세) :항문기에 들어서면, 리비도가 항문에 집중되어 배변 훈련에 의한 부모의 태도가 성격발달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나는 비교적 자기주장이 강하고 약간의 고집도 있는 편이다. 그러나 이것이 항문기의 고착증세라고 할 만큼 의 비정상적인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쉽게 누그러질 때도 있고 그렇게 깔끔한 성격도, 그렇다고 매우 자유분방한 성격도 아닌 보통의 유동성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나는 항문기에 있어서 충분한 욕구의 만족을 하였고 부모님께서도 배변훈련에 지나친 욕심이나 방치를 하지 않았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3. 남근기(3~5세) :프로이드의 심리성적 발달단계 중 성격 형성에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도 하는 남근기는 리비도가 이성의 부모를 향한 근친상간적인 욕구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흔히 말하는 오이디푸스, 엘렉트라 콤플렉스 인데, 나에 경우에 있어서는 아버지께서 너무 엄격하셨던 탓인지 자식들에게도 무뚝뚝 하셨을 뿐더러 아내에게도 애정표현을 자주 하시지 않았다는 기억이 더 많이 든다. 오히려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적인 면을 갖추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결론적으로는, 남근기 고착증세로 드러났을지도 모르는, 어머니에 대한 경쟁심이나 적대감은 생기지 않았을 것 이라고 생각된다.4. 잠복기(6~12세) :프로이드에 의하면 잠복기에는 앞의 세 단계에서 가졌던 욕구들을 거의 잊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위험한 충동이나 환상이 잠재되어 버리기 때문에 비교적 조용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아동들은 주위 환경에 대한 탐색이 활발하고 매우 활동적인 시기이다. 이 시기에 나는 매우 활발하게 밖에서 뛰어놀았다. 공부 보다는 오히려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에 바빴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미술에 관심을 갖은 것이 이때부터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스스로 수채화의 기본적인 채색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발달 단계에 있어 제대로 된 촉진제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원하는 일들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모두 해주시려고 하셨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반대하지 않고 허락해 주셔서 이때에 특히 의존적이지 않고 혼자서 일을 잘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신 것 같다.5. 생식기(사춘기) :생식기에는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성적 에너지는 다시 분출되어 이 전시기에 억압 되었던 충동이 이 시기의 리비도인 성기에 집중되게 되면서 이성에 대한 관심과 성행위를 추구하게 된다고 하였다. 나의 경우에 있어서는 여중, 여고를 나왔기 때문에 이성에 대한 관심은 많았지만, 이성 보다는 주로 동성과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까지는 이성에게서 두려움을 가지고 낯을 많이 가리고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친 오빠로부터 이성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하고, 학원으로부터 이성 친구도 조금씩 생기게 되면서 두려움보다도 점점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 //* Erik Erikson 의 심리 사회적 성격발달 이론을 통한 분석프로이드의 이론에 비해 사회성을 고려한 에릭슨의 성격발달 이론은 전 생애에 걸친 심리 사회적 발달을 여덟 가지로 나누었다. 에릭슨에 의하면, 개인의 발달은 사회적 맥락에서 일어난다. 나의 과거, 현재, 미래에 에릭슨의 성격발달 이론을 적용해 보았다.1단계) 신뢰 대 불신(출생~1세) :유아가 처음으로 갖게 되는 신뢰감은 모성인물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라고 한다. 항상 부모님의 품에서 편안한 유아기를 보낸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에 대한 믿음은 강해진 것 같다. 이에 반대로 유아에 대한 모성애가 일관성이 없고, 적절하지 못하고, 거부적이면 아동은 불신감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어려움을 겪으면 이후에 낮은 자존감, 우울증 등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도 한다. 지금까지로 보면, 부모님을 항상 믿고 순종하는 편인 것으로 보아 유아기 때 충분히 신뢰감을 쌓아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2단계) 자율성 대 수치심과 의심(1~3세) :이 시기에 유아는 자기 통제가 가능하게 되는데, 이때 부모가 과도하게 유아의 행동을 통제하게 되면 유아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심이나 수치심을 갖게 된다고 한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부모님께 여쭤본 결과 이 때 부모님께서는 내가 무엇을 잘했을 때 충분하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고 한다. 종이를 잘라서 무엇을 만든다고 집안을 어지럽혀 놓으면 방을 더럽혔다고 혼내기 보다는 종이로 만든 것을 잘 만들었다고 칭찬해 주셨다는 것이 한 예이다. 그리고 스스로 방을 치울 수 있게끔 조언을 하셨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에 있어서나 지금이나 나에 대한 믿음을 깨버리지 않고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면을 지니고 있다.3단계) 주도성 대 죄의식(3~6세) :다섯 살 이나 여섯 살 때가 유난히 호기심이 많고 말을 안 듣기로 유명한 나이라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역시 이 때에 하지 말라는 것은 골라서 하고 더 어렸을 때와 비교해서는 혼도 많이 났다고 한다. 주도성 대 죄의식이 형성되는 단계인 에릭슨의 3단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시기에는 스스로 무엇이든지 알려고 하는 주도성을 가지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하거나 혼이 나면 그 좌절로 인해 죄의식이 생겨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내 경우에 는 이 때에 옆집이 이사를 가고 빈 집으로 남아있는 것을 몽땅 태워먹은 일이 있었다. 소방차 까지 와서 겨우 불이 꺼졌지만 매우 심하게 혼난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것뿐만이 아니라 항상 어떤 문젯거리 들을 일으켜서 많이 혼이 났던 기억도 난다. 이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지만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것으로 보아서는 이 시기의 주도성 형성과 죄의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4단계) 근면성 대 열등감(6~12세)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시기인 근면성 대 열등감 단계에 공부는 안하고 매일같이 동네에서만 뛰어놀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때 근면성을 보였던 유일한 부분은 그림을 그릴 때 뿐 이었다. 한편으로는 공부를 안 해서 초등학교에서 다른 학급 아이들에 비해 열등감을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그림 그리는 데에서 오는 성취감과 근면함이 동시에 존재했던 것 같다. 친 오빠와 2살 차이가 나는데 오빠는 공부를 무척 잘 하고 영재 소리를 듣는 데 비해서 나는 항상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나에게 오빠와 비교도 하지 않으시고 공부를 하라는 압박을 전혀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느끼는 열등감 이외에는 부담감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부모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항상 내가 필요하다고 스스로 느끼고 하고 싶을 때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어느 정도까지는 정말 공부에 관심이 없다가 점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열심히 하는 습관을 기르게 되면서 열등감이 사라지게 된 것 같다. 지금에 와서는 이런 도전의식과 격려가 나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가 하는 데에 있어 많은 것을 느낀다.5단계) 정체감 대 역할혼미(12~18세) :청소년기인 정체감 대 역할혼미 단계에서는 사춘기를 동반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자아 정체성을 찾는데 있어 많은 혼동이 있을 시기이다. 나의 경우에는 사춘기가 조금 늦게 오기는 했지만 확실히 이 때에 방황을 많이 했다. 학업에는 충실히 임했지만 항상 고민에 빠져 있었다. 특히 고 3 때는 정말 실의에 빠져 세상이 다 끝날 것처럼 좌절 해 있었을 때도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모두 금방 극복하고 자기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 때에는 모든 것이 다 심각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괴로워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결론적으로 이 시기에는 여지없이 정체감 과 역할 혼미의 경계에 놓여서 고민을 한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좌절로 끝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긍정적인 자아 정체감을 확립하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고민이 있으면 혼자서 일기를 쓰거나 나 스스로에게 편지를 씀 으로써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갖으려는 노력을 많이 했던 것이 그 예이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도 어떤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늘 상 희망을 먼저 갖고 시작하는 자신감이 여기에서 오지 않았나 하는 물음을 갖게 된다.